[ 숲 의 사 계(四季) ] - 서정윤시인의 "사랑은 기적을 일으킨다 "에 수록
숲 의 사 계(四季)
< 봄 >
예감(豫感)과 함께 햇살이 돌아오면
멀리서 들려오는 우렛소리
돌밭에는 따스한 정령(情靈)들이 뒹굴고
잠에서 깨어난 시냇물은
메마른 강둑에 욕망을 일깨운다
메아리와 함께 마파람이 불고
황토 빛 벌판이 들뜨기 시작한다
개암나무 뿌리는 달콤한 수액에 취해
여린 빛을 터뜨리고
가지가지마다
투명한 쾌락이 소름처럼 돋아난다
< 여름 >
작렬하는 계절이
빗발을 후득이며 찾아오면
떠깔나무 이파리의
빛나는 청정(淸淨)함
마른 번개
묻어있는 애욕(愛慾)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관능의 숲
푸른 이끼는
바위에 생명을 불어 넣고
무성한 잡목림(雜木林) 속
거친 꿈, 꾸는 그늘이다
< 가을>
소슬바람에 쫒기어 여름이 사위어 간
자작나무 숲은
찰진 햇볕으로 나뭇잎이 붉게 타오르고
스스로를 태우다
흔들리며 떨어지는
입새의 침묵은
소진(消盡)한 날들의
장엄(長嚴)한 성찰이리니 .....
< 겨울>
고샅길을 구르던 가랑잎
개울물에 떨어져
차거운 숨결 내 품고
나이테에 둘러싸인
견고한 시간을
음각하던 겨울 철새 울음
나뭇잎의 찬란한
이야기를 거두어들이면
앙상한 은사시나무 가지 끝
말갛게 맺힌 햇살 여운이
거부하지 않는 은백색 꿈은
지고의 순수 때문이다
" 계절의 시작을 가을에서 해본다
가을. 겨울. 봄. 여름.
아니면 겨울에서 이 계절을 시작해도 좋다
겨울을 봄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본다면
오히려 '이것이다'는 생각이다
말갛게 맺힌 햇살 여운이
거부하지 않는 은백색 꿈은
지고의 순수 때문이다 - 서정윤 - "
[ 서정윤시인의 "사랑은 기적을 일으킨다 "에 수록 2010년 9월 1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