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표작품 ]

[ 숲 의 사 계(四季) ] - 서정윤시인의 "사랑은 기적을 일으킨다 "에 수록

高 山 芝 2010. 10. 7. 15:21

    숲 의 사 계(四季)

 

< 봄 >

 

예감(豫感)과 함께 햇살이 돌아오면

멀리서 들려오는 우렛소리

돌밭에는 따스한 정령(情靈)들이 뒹굴고

잠에서 깨어난 시냇물은

메마른 강둑에 욕망을 일깨운다

메아리와 함께 마파람이 불고

황토 빛 벌판이 들뜨기 시작한다

개암나무 뿌리는 달콤한 수액에 취해

여린 빛을 터뜨리고

가지가지마다

투명한 쾌락이 소름처럼 돋아난다

 

< 여름 >

 

작렬하는 계절이

빗발을 후득이며 찾아오면

 

떠깔나무 이파리의

빛나는 청정(淸淨)함

 

마른 번개

묻어있는 애욕(愛慾)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관능의 숲

 

푸른 이끼는

바위에 생명을 불어 넣고

 

무성한 잡목림(雜木林) 속

거친 꿈, 꾸는 그늘이다

 

< 가을>

 

소슬바람에 쫒기어 여름이 사위어 간

자작나무 숲은

찰진 햇볕으로 나뭇잎이 붉게 타오르고

스스로를 태우다

흔들리며 떨어지는

입새의 침묵은

소진(消盡)한 날들의

장엄(長嚴)한 성찰이리니 .....

 

< 겨울>

 

고샅길을 구르던 가랑잎

개울물에 떨어져

차거운 숨결 내 품고

 

나이테에 둘러싸인

견고한 시간을

음각하던 겨울 철새 울음

나뭇잎의 찬란한

이야기를 거두어들이면

 

앙상한 은사시나무 가지 끝

말갛게 맺힌 햇살 여운이

거부하지 않는 은백색 꿈은

지고의 순수 때문이다

 

" 계절의 시작을 가을에서 해본다

  가을. 겨울. 봄. 여름.

  아니면 겨울에서 이 계절을 시작해도 좋다

  겨울을 봄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본다면

  오히려 '이것이다'는 생각이다

 

  말갛게 맺힌 햇살 여운이

  거부하지 않는 은백색 꿈은

  지고의 순수 때문이다  - 서정윤 - "

 

[ 서정윤시인의 "사랑은 기적을 일으킨다 "에 수록 2010년 9월 1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