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

<百祥樓次韻(백상루에서 운을 빌어)>

高 山 芝 2011. 6. 10. 20:15

평안남도 안주에는 빼어난 풍경을 지닌 북한의 국보 31호인 백상루 百祥樓 가 있다. 백가지 좋은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백상루는 평양의 연광정, 만포의 세검정, 의주의 통군정과 더불어 관서8경 중 하나로 꼽히며 누정들 중 으뜸이라 하여 '관서제일루 關西第一樓'로 불리기도 한다.

 

百祥樓 백상루

 

<百祥樓次韻(백상루에서 운을 빌어)>

醉躡梯飇十二樓   취섭제표십이루    
晴天芳草望中收   청천방초망중수   
水宮廉箔疑無地   수궁염박의무지    
蓬島煙霞最上頭   봉도연하최상두    
天外梅花飛玉笛   천외매화비옥적   
月邊蓮葉渺仙舟   월변연엽묘선주   
監風欲揖浮丘袂   감풍욕읍부구몌   
笙鶴飄然戱十洲   생학표연희십주   

 

 취한 채로 바람 타고 신선 누각 올라보니

 맑은 시내 꽃다운 풀 한 눈에 들어오네

 수궁 위로 드리운 발 아래로는 가물가물

 봉래도 낀 내와 노을 가장 높이 떠 있구나

 하늘 저밖 옥피리는 매화곡을 불어주고

 달가에선 신선배가 연잎처럼 아득하네

 바람 맞아 부구공의 소매 자락 잡으려니

 생황소리 학을 타고 훌쩍 십주 노니는 듯.



고경명(1533-1592)이 쓴 이 시는 누각이 한 폭의 선유도 仙遊圖 입니다. 십주(신선이 산다고 하는 열개의 섬)에서 신선들이 매화, 옥적, 연엽, 선주와 함께 신선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 이시는 제봉이 중국으로 사신 가는 길에 關西八景의 하나인 평안도 安州 淸川江가에 있는 百祥樓에 올라가서 읊은 시이다. 백상루는 중국 사신이 오갈 때 들르는 명소로

중국 사신과 우리 시인들의 시 작품이 많이 남아 있다. 수련과 함련에서는 백상루가

아주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였다.

즉 취해 회오리 바람을 타고 십이루를 올라가니 맑은 시내와 꽃 풀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고 하였다. 백상루 주변 수면 위로 발을 드리우니 높아서 끝이 보이지 않는

듯하고, 蓬萊島에 낀 안개와 노을이 가장 높이 떠 있다고 하였다.

경련과 미련에서는 현장의 공간을 仙界인양 표현하였고 작자 자신도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마음껏 느껴보고 있다. 하늘 끝에는 신선이 옥피리로 落梅花曲을 불어 보내는 듯 하고, 달가의 연잎인양 아스라이 신선이 탄 배가 떠 다니고 있다. 바람 맞아 皇帝 때 신선인 浮丘公의 소매자락을 잡으려니, 생황소리에 학을 타고 훌쩍 십주에 노니는 듯 하다고 하였다.

『國朝詩刪』에서는 ?이 작품이 江西派를 힘껏 씻어내고 唐詩의 경지에 들어서려 하였다. 그 때문에 자못 流麗하고 淸遠하다?고 하였다. 이 작품이 江西派를 힘껏 씻어

내려 했다는 것은, 故事 사용이 적절하게 이루어져 시상의 전개가 자연스럽다는 것을 의미하며, 唐律의 경지에 들어서려 하였다는 것은, 이 시의 律格과 風格이 唐詩風을

띠고 있다는 평이다. 그리고 이 시가 ?流麗?하다는 것은 시의 聲律이 잘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고, ?淸遠?하다는 것은 시에 표현된 내용들이 속세의 想念을 떨쳐버린 맑고 심원한 표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樓亭詩나 醉時歌는 시적 주체의 豪放한 심경을 표출한 작품이 많은데, 이 시에서 제봉은 백상루에 올라 ?望中收?하는 주변 시내와 섬과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거침없는 기상을 표출하였다. 특히

함련과 경련의 표현을 통해서는 백상루 주변을 仙界인양 표현하였고, 미련에서는

이러한 공간에서 자신이 신선이 된 듯 마음껏 기상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백상루에 올라가서 자신의 淸遠한 심경을 드러내면서 豪放한 기상을 마음껏 표출한 시이다.

(卞 鍾 鉉) -

 

 

 

 



소금장수의 백상루 구경


어떤 소금장수가 백상루를 지나게 되었다. 때는 겨울철로 아침 해가 아직 떠오르기 전이었다. 소금장수는 누각 아래 말을 세워 놓고 백상루에 올라서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그저 보이는 것이라곤 긴 강에 깔린 얼음장과 넓은 들을 뒤덮은 눈뿐이었다. 구슬픈 바람은 휘휘 몰아치고, 찬 기운은 뼈를 에일 듯 오싹해서 잠시도 머물 수 없었다. 그러자 상인은 "도대체 누가 백상루가 아름답다 했는가?" 라고 탄식하며 서둘러 짐을 꾸려서 자리를 떴다.

- 권득기(權得己 1570~1622)가 쓴 만회집(晩悔集)에 실린 《염상유백상루설(鹽商遊百祥樓說)》중에서 -

우리는 이 글을 보고 웃을 일이 아니고 이것이 바로 어리석은 우리들의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물상들이 다르게 보임은 빛의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므로 한마디로 빛의 요술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햇빛이 따뜻하여 초록잎들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 봄철에 저 소금장수가 백상루를 찾아왔더라도 그 날 마침 소금이 잘 안팔려서 괴로운 맘이었다면 천하절경이라는 백상루의 경치아니라, 그 어떤 절경일지라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의 근본 문제는 그래서 항상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내면에 있다는 사실을 입니다. 즉, 자기 마음이 시끄러우면 세상에 그 어떤 좋은 경치도 눈에 보이지 않고, 아무리 좋은 노래도 들리지 않는 것이며, 괴로움으로 입맛을 잃었으면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맛을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눈이 보고, 귀가 듣고, 입이 맛을 본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마음이 보고, 마음이 듣고, 마음이 맛을 본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얼굴이 다르듯, 살아온 환경과 경험이 다름으로 인해 삶의 방식이 다르므로 하나의 사물을 보고도 마치 저 소금장수처럼 보고도 스스로 못보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근본 잘못은 바로 자기에 대한 無知입니다. 자기를 모르므로, 남의 잘못만 보이고, 항상 남만을 탓하게 되며 진리를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마음을 열어, 보고 듣고 느끼려는 생각이 없이 스스로 마음의 벽을 더욱 견고히 쌓아서 자기를 가둔 채, 만물을 자기 방식대로만 보고 들을려고 고집하며 실제로 그렇게 길들여진 습관대로 점점 더 그렇게 보고 듣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삼라만상이 들려주는 無言의 가르침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눈과 귀를 갖출 수 있도록 날마다 자기내면의 소리를 보고 들으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실천해나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