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레 영상수필 - 고린도운하
고린도(코린토스 / Ancient Corinth)는 코린트, 고린도, 코린토스라고도 부른다. 이곳을 부르는 지명은 시기에 따라, 또는 언어권에 따라, 또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이러한 명칭으로 불리는 곳은 모두 동일한 곳이다.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하는 지점에 위치한 코린트는 아테네에서 버스로 1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코린트 유적에 닿기 전에 만나는 곳이 코린트 운하이다. 이오니아 해의 코린트 만과 에게 해의 사로니코스 만을 연결하는 6km가 넘는 길이의 운하로 수천 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운하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이오니아 해와 에게해 사이를 배를 타고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따라 돌아가야만 했다. 고대부터 수많은 최고 통치자들이 이곳에 물길을 내려고 애를 태웠고, 로마의 네로 황제 네로황제(기원후 37~68) - 로마제국의 제 5대 황제.(재임기간-기원후 54~68) 가 대역사의 첫 삽을 떴다.
네로 황제는 6000여 명의 유대인 노예를 동원해 78m의 돌산을 파내려 갔으며, 수많은 유대인이 굶주림과 중노동에 의해 쓰러져 갔다고 한다. 그러나 물길을 내기 직전까지 진행되었던 공사는 네로 황제의 죽음으로 인해 중단되었고, 물길을 내기 직전까지 진행됐다가 중단된 공사는 19세기 들어 프랑스 자본에 의해 재개되어, 길이 6.3km, 너비 25m에 이르는 지금 사진에 보이는 운하가 1893년 완공되었다고 한다.
코린트 운하에서 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크로코린토스 언덕 주위에는 고대 도시의 유적지가 자리 잡고 있다. 도시 유적지에서 미케네 시대 전기의 도기가 발견되었고, 지리적으로 지대가 높고 펠로폰네소스로 들어가는 육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먼 옛날부터 상업 ·무역으로 크게 번영을 누려 왔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는 기원전 6세기경에 태양신 아폴론을 모시기 위해 세운 아폴론 신전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리스 신전들 중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 다음으로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신전 남쪽으로는 극장, 상점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 도시는 로마 시대의 식민지로 재건되면서 번창 했고, 비잔틴 제국 시대까지 어느 정도 번영을 누렸지만 지진과 약탈 등으로 인해 파괴되었고, 중세 이후 점차 쇠퇴하면서 하나의 지방 소도시로 몰락했다. 고대 코린트 시가 지진으로 무너진 후 1858년에 북동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곳에 현대의 코린트 시가 건설 되었는데, 현재는 그리스의 북부와 남부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코린토스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코린트 지협(地峽)에 있었던 고대 폴리스 였으나 지금은 규모가 축소된 현대적 도시로 변해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 코린트(Corinth)로 분류되던 이 지역은 그리스 남북육상교통의 요지인 동시에 이오니아해(海)와 에게해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호메로스의 시(詩)에는 중요한 도시로 되어 있지 않으나, 시(市)의 유적에서 미케네 시대 전기의 도기(陶器)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먼 옛날부터 번영해 온 도시임을 알 수 있다.
시는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상업 ·무역으로 크게 번영을 누려 왔으며,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가 쇠퇴한 헬레니즘시대에도 상업도시로서 번성하여 '헬라스의 별'이라고 일컬어졌다. 일찍부터 그리스 제일의 도기제조 중심지가 되어 코린트식 도기를 생산하였으나, 나중에는 그 지위를 아테네에 빼앗겼다.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에 고대에는 여러 차례 국제회의의 개최된 요충지였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스파르타가 주도권을 잡았다가 곧 쇠퇴한 이후 코린트에서 주도권을 잡았으나, 코린트마저 쇠퇴한 이후 알렉산더를 낳은 마케도니아에 의해 복속되면서 그리스 폴리스들은 서서히 도시국가로서의 모습을 상실해가게 되었다.
마케도니아가 로마에 의해 정복당하면서 코린도는 로마에 복속되었다가 폰토스왕국과 연합하여 로마에 대항하였는데, 이로 인해 BC 146년 '술라'가 이끄는 로마군에 의해 철저히 파괴된다. 이후 BC 44년에 로마에 의해서 재건되어 다시 번영하였으며, 신약성서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고린도書). 그러나 521년에 지진으로 큰 타격을 입어 중세 이후 쇠퇴하다가 1858년 지진으로 다시 파괴되었다고 한다.
이 곳에는 운하와 사도 바울의 초대 교회(겡그리 항구), 고린도 아크로 폴리스, 아폴론 신전, 비마터(사도 바울이 재판 받던 곳), 피래네의 샘, 박물관(인류 최초의 모자이크인 디오니소스에 상이 있음)등이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솝 우화의 이솝과 괴짜 철학자 , 통 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도 고린도 출신이다. 사도바울이 전도했던 고린도는 그리스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 중심지로국제적인 도시였다. 고린도는 천혜의 지리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었는데 즉 서쪽에는 이오니아해와 이탈리아로 향하는 레카이온 항구를 품고 있었고 동쪽으로는 아테네를 바라보면서 에게해로 나아갈수 있는 겐그레아 항구를 품고 있었다. 아카지방의 수도였던 고린도는 번창한 항구 도시였으나 심한 빈부의 차이와 매춘 등 퇴폐적인 윤리 생활로 악명이 높은 곳이기도 했다(에베소서 전서인가 어느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다.
사도 바울은 제 3차 전도 여행중 에페소에 3년동안 머물면서 고린도 전서를 집필했고, 57년경 그리이스의 북부 마케도니아에서 후서를 써 보냈다. 아테네에서 펠로폰네소스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정착한 곳이며 이마을은 지진으로 2번이나 파괴되어 한번은 땅딸막한 콘크리트 건물로 재건되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