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자시편 * 2 / 네잎클로버 - 주간한국문학신문 2014 10월 29일 -
네잎 클로버
행운을 붙잡기 위해
클로버 언덕을 걷고 있네
지천에 깔린 것이
행복인데도
네잎 클로버에 눈이 멀어서
세잎 클로버를 보지 못하네
아직은 살만한 세상인데도
좋은 것이 널브러진 환경인데도
하는 즐거움에 길들여져서
보는 즐거움을 잃어버렸네
행운을 찾아서 헤매는 나에게
불안이 찾아와 손을 흔드네
조급한 마음에 뛰어 보지만
잡힐 듯한 행운은 잡히지 않고
세잎 클로버만
짓밟고 있네
지천에 깔린 것이
행복인데도
행복을 누리는 게
행운인데도
네잎 클로버에 눈이 먼 나는
오늘도 클로버 언덕을 누비고 있네
똑같은 사물을 바라보면서도 바라보는 것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 있고 바라보는 것 때문에 불행한 사람이 있다.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 인식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은 소유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불평하고 그 불만이 원망으로 바뀌어 불행의 원인이 된다.
존재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바라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다.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자체, 아침에 뜨는 태양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기 때문에 감사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행운을 붙잡고도 감사하지 못해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도 있다. 그들을 생각하면 지난날의 나를 떠올리게 된다.
행운(幸運)과 행복(幸福)의 한자적 의미를 살펴보면 그 차이가 뚜렷해진다. 두 개의 다른 뜻이 결합해 만들어진 다행할 행(幸)은 죽을 요(夭)자와 거스를 역(逆)자에서 쉬엄쉬엄 갈 착(辶)변을 생략해 만든 회의문자(會意文字)로 ‘요절(夭折)을 면해서 다행(多幸)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보일 시(示)자와 가득할 복(畐)자가 결합된 복 복(福)자도 회의문자다. 제사를 드리는 제단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象形文字) 보일 시(示)자와 잘 익은 술을 가득담은 술병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인 가득할 복(畐)자가 결합된 복 복(福)자는 감사가 전제된 문자다.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해준 절대자에게 감사해 제물을 바치는 행위를 행복이라고 우리의 선조들은 가르쳤다.
쉬엄쉬엄 갈 착(辶)변에 군사 군(軍)자가 합쳐진 운반할 운(運)자에는 군대의 이동이 군사기밀이듯이 하늘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다행스런 하늘의 비밀이 숨겨진 행운은 우리 모르게 쉬엄 쉬엄 움직이는 포르투나(Fortuna)의 수레바퀴다.
네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고, 세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다. 행운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믿고 일확천금을 얻기 위해 엘도라도로 떠나는 서부의 개척자들처럼 로또의 행운을 붙잡기 위해 오늘도 사람들은 세상을 누비고 있다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린 채 세잎 클로버를 짓밟으며 네잎 클로버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 행복의 정의를 ‘마음이 평온(Tranquility)한 것’으로 규정한 애담 스미스는 사람들이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린 이유는 허영(Vanity) 때문이라고 말한다.
“남의 눈이 없는 무인도에 산다면 몸을 가릴 옷, 비를 가려줄 집, 건강을 유지할만한 음식만으로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이 아침 음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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