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화월당(花月堂) 박혜남(朴蕙南) 여사의 여든여덟번째 생신을 축하드리며

高 山 芝 2015. 2. 6. 14:40

           화월당(花月堂) 박혜남(朴蕙南) 여사의  여든여덟번째 생신을 축하드리며
                                                                 고 산 지(長男·永表)


팔십팔(八十八)을 겹치면 쌀 미(米)자가 된다 해서 일컫는 미수(米壽).

화월당(花月堂) 박혜남(朴蕙南) 여사가 태어나신지 8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말로써는 표현할 수 없는 인고의 세월을 살아오신 화월당(花月堂) 박혜남(朴蕙南) 여사의 인생은

강산이 9번이나 변하였던 험난한 시대였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저희 5남매를 건강하게 양육, 성가시키신 제 어머님이 이제 미수(米壽)를 맞게 되었습니다. 여든여덟번째 생일에 자식된 도리로 무엇을 해 드릴까 고민 고민을 하다가 두 가지 선물을 준비하였습니다.
어머님 세대의 여자들은 결혼과 동시 본인의 이름 대신 택호를 사용하였습니다.

저희 어머님도 박혜남(朴蕙南)이라는 이름 대신

월호리댁(月湖里宅)이라는 호칭을 결혼과 동시에 얻게 됩니다.

어머님의 고향이 해남군(海南郡) 화산면(花山面) 월호리(月湖里)였기에 얻게된 택호였습니다.

제 고향인 장흥읍(長興邑) 평화리(平化里)를 떠날 때까지는 월호리댁(月湖里宅)이라는 택호로

서울에서는 영표(永表·필자) 어머니로 살아오시다,

이제는 당당하게 본인의 이름이 회복된 박혜남(朴蕙南) 여사.
박혜남(朴蕙南) 여사께 드리는 첫 번째 선물은 아들이 지어준 당호(堂號)입니다.

어머님의 고향인 화산면(花山面)에서 따온 꽃 화(花)자와 월호리(月湖里)에서 따온 달 월(月)자를 합하여

화월당(花月堂)이라는 당호(堂號)를 첫 번째 선물로 준비하였습니다.

화월당(花月堂)이라는 당호(堂號)를 드리자 빙그레 웃으시는 박혜남(朴蕙南) 여사,

싫지는 않으신 모양입니다. 두 번째 선물은 어머님이 처녀시절 학습했던 규방문집(閨房文輯)입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어머님이 쓰신 규방문집(閨房文輯) 2권을편철하여책으로만들어주셨습니다.

'규중보람(閨中寶覽)’과‘규중간독(閨中簡讀)’두 권은

당시 규방(閨房)에 전해오던 이야기 및 편지글 등을 엮은 것입니다.
본인의 성씨(姓氏)와 모국어(母國語)인 한글을 강탈당한 일제치하(日帝治下)에서도

사대부 집안에서는 우리글을 가르쳤던 모양입니다.

두권의 문집 중에는 아직까지 발굴된 적이 없는 규방가사(閨房歌辭)도 여러편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소중한 자료를 그대로 사장시킬 수는 없어서 문집으로 발간하여

어머님께 자그마한 선물로 드리고자 합니다.

 더구나 두 권의 문집 중에는 외할머님의 글씨와 화월당(花月堂)의 숙모되시는

지사할머님(朴哲洙전남도지사·부인)의 글씨가 포함되어있어서 저로서는 더 없는 영광이기도 합니다.
서울에 올라오신 후 교회에 다니시기 시작한 화월당(花月堂) 박혜남(朴蕙南) 여사는

화곡동에 있는 광음교회에서 권사임직을 받으신 후 지금은 은퇴권사로서

아들이 다니는 의정부영락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사시다가 건강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시는 어머님을 소망하면서

화월당(花月堂) 박혜남(朴蕙南) 여사님 !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