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자시편 * 8 / 불광불급(不狂不及) - 한국주간한국신문(2015.02.04)
맨 정신으로 살아가긴 너무나도 험한 세상
미친 개, 미친 소, 길길이 날 뛰더니
유행하는 구제역(口蹄疫)에 돼지 목숨, 파리 목숨
살(殺)처분 미명 아래 양돈업자 도산하고
조류독감 몸살 앓자, 생매장(生埋葬)된 오리, 닭들
문 닫는 치킨 집에, 양계농이 사라지네
의기소침 안절부절, 너무나도 힘든 세상
원통함과 두려움으로, 뒤숭숭해 험한 세상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
미치지 못한다해 포기할 수 없는 세상
끼리끼리 어울려서 미쳐보면 미치나니
끝장을 볼 때까지 미쳐가며 사는 세상
미치지 않고서는, 미치지 못하나니
하고픈 일 찾아가며 함께 미쳐 사는 세상
좋아서 미쳐보고, 흥겹게 미쳐보고
즐겁게 미쳐보고, 신명나게 미쳐보고
미치는 그 날까지, 우리 함께 미쳐보세
신명나게 미쳐보세, 기분 좋게 미쳐보세’
방역이라는 명목 하에 살아있는 가금류를 무더기로 살처분하는 기사를 읽다가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로 체포되어 교수형을 받은 ‘아돌프 아이히만’이 생각났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아이히만에 대해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던 평범한 가장이자 모범적인 시민’이었다고 주장하여 많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악의 화신이라 일컫던 자의 악마성을 부정하고 악의 근원이 평범한 곳에 있다는 그의 주장은 우리 모두가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아이히만을 조직화된 인간의 상징이라고 규정하면서 “조직화된 인간은 불복종의 능력을 잃게 되고 심지어 자신이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게 된다. 역사상 이 시점에서 회의하고, 비판하고, 불복종하는 능력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설파한 ‘에리히 프롬’.
살아있는 동물을 살처분한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 받고 있는 공무원들 또한 ‘관료주의 체제 하에서 조직화된 인간의 상징이 아닐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생명이 숫자로 격하되면 관료주의는 철저히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다. 관료는 새디스트(Sadist)보다는 덜 포악하지만 더욱 위험스럽다. 왜냐하면 그들은 양심과 의무 사이에 아무런 갈등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양심이란 바로 그들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정과 공감의 대상으로서의 인간이란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프롬의 경고가 생각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