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사랑
언제나 무성(茂盛)타 해도
사랑하다 사랑하다 멈추게 되면
푸른 잎 그대로 떨어집니다
찬 이슬 무서리를 견디어 내고
비바람 땡볕을 감내하면서
정갈한 이파리에 햇볕이 배어들면
천자만홍(千紫萬紅) 빛깔로 물이 듭니다
사랑 때문에 만나서
우리 서로 사랑을 한다지만
내 마음에 당신이 물들지 않으면
한 여름 단명(短命)한 햇빛일 뿐입니다
고통과 시련을 함께 하면서
거친 손, 잔주름에 밴 미운 정 고운 정
서른여섯 해 우러난 새하얀 뭉게구름
찰진 가을볕에 피어납니다
지나온 모진 세월 주마등 같지만
당신은 내 마음에 사랑의 물 들여놓고
천자만홍 빛깔로 사랑의 물 들여놓고
내설악 단풍으로 타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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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지 시인 |
“천리(天理)가 사람에게 부여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과 기(氣)를 합해 한 몸에서 주재가 되는 것을 심(心)이라 하니, 심이 사물에 응해 밖으로 발(發)하는 것을 정(情)이라 한다. 성은 심의 체(體)이고 정은 심의 용(用)인데, 심은 아직 발하지 않은 것과 이미 발한 것의 총칭이므로, 심이 성과 정을 통관(統管)한다. 성에는 다섯 조목이 있는데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며, 정에는 일곱 가지가 있는데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이다. 정이 발할 때 도의(道義)를 위해 발하는 것이 있는데 어버이에게 효도하려 하고, 임금에게 충성하려 하고, 어린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면 측은히 여기고, 의롭지 못한 것을 보면 미워하고, 종묘를 지날 때는 공경하게 되는 것들이 그것이니, 곧 도심(道心)이라 한다. 정이 발할 때 입이나 몸 따위를 위해서 발하는 것도 있는데 배고프면 먹으려 하고, 추우면 입으려 하고, 힘들고 괴로우면 쉬려 하고, 정(精)이 성해지면 여자를 생각하는 것들이 그것이니, 곧 인심(人心)이라 한다.”
이와 같이 율곡은 정(情)을 ‘도의(道義)에 의해서 발하는, 윤리나 도덕에 의한 도심(道心)의 정’과 ‘입과 몸을 위해서 발하는 인심(人心)의 정’으로 나눠 도심의 정은 지나쳐도 해가 될 것이 없으나 인심의 정, 곧 인정(人情)이 지나치면 방탕에 흐를 수 있음을 경계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 사람은 있어도 정 때문에 헤어졌다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능동태인 사랑과 달리, 정은 서로에게 우러나는 수동태이기에 ‘사랑은 하고, 정은 든다’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드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랑을 할 때 주체는 내가 된다. 내가 해야 하기 때문에 내 의지가 반영되고 내 의(義)를 드러내곤 한다. 그러다 사랑이 끝나면 본래의 나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드는 행위’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다. 나를 버리고 상대방으로 ‘물들어가는 행위’에는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담겨있다. 한 번 물이 든 천의 색상이 바뀌지 않듯 사랑의 물이 듬뿍 든 사람에겐 상대방에 대한 정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사랑보다 정을 앞세운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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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26일 금강일보3면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