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의 시학 2017년 겨울호 발표 / 친구. 익명(匿名) 2편
친 구
- 고 산 지
해닥사그리한 친구 그리워
청계천 뒷골목 찾아갔네
우럭우럭한 그 모습
소주잔에 띄어놓고
지난 날 함께 마신 정겨운 유희
간잔지런 그 얼굴 눈에 선하네
거나하게 취한 그는 얼근덜근 거리네
어깨동무하고서
골목길을 걷던 친구
해말간 그 친구
지금은 볼 수 없네
시신(屍身)을 기증한 후
장례(葬禮)조차 거절했네
그가 쓴 시(詩)만 남아
술잔 위를 넘실대네
- 필자와 함께 동인활동을 했던 박영웅시인이 암으로 소천한지 몇 년이 지났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함께 정보부의 내사를 받았기에 내게는 더욱 각별한 친구다. 그런 그가 장례식도 치루지않고 시신을 대학병원에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 소천하기 5일전 요양병원에서의 그의 얼굴은 그토록 평화로울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청계천을 휘젓던 그 때가 그 때가 그립다.
익명(匿名)
- 고 산 지
가상(假想)의 세계에서
가상의 가치(價値)를 찾던
익명(匿名)이 광장(廣場)으로 나와
목청을 높이네
익명 뒤에 숨겨진
음습(陰濕)한 욕망(慾望)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공격하고
책임보다 권리를 주장하는
패거리 함성 커지면
수단으로 전락하는
인간(人間)의 자유(自由)
어두운 그림자
가상의 세계를 넘어
현실 속에 드리우는데
사람들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 탓을 하고 있네
나무 탓만 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