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표작품 ]

스페인 포르투갈 문학기행 - 세르반테스와 돈 키호테 편 - <작렬하는 태양과 열정이 만들어낸 신화(神話)를 찾아서 * 8>

高 山 芝 2019. 2. 24. 20:16

    

* 본 기행문은 주간한국문학신문에  연제되었읍니다


       <작렬하는 태양과 열정이 만들어낸 신화(神話)를 찾아서 * 8>

                  - 스페인 포르투갈 문학기행 * 세르반테스와 돈 키호테편 - 고 산지

 

콘수에그라의 라 만차 지방은 톨레도 산악지대에서 쿠엥카산맥의 서쪽 지맥까지, 라알카리아에서 시에라모레나까지의 사이에 펼쳐진 불모의 해발고도 680~710m의 고원지대로, 황량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마드리드와 안달루시아 사이의 지방을 지칭한다. ‘라 만차’란 아랍어로, ‘마른 대지, 건조한 땅’이란 뜻이다. 보라색으로 뒤덮은 사프란 꽃, 올리브, 그리고 일직선으로 늘어선 포도밭이 눈 길을 끄는 라 만차의 풍경. 이러한 단조로운 풍경이 투명한 하늘에 치솟은 하얀 풍차 때문에 달라진다. 가끔 정적을 깨고 나타나는, 목에 걸린 방울을 울리는 양떼를 몰고 가는 목동과 개의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넉넉하게 한다. 라 만차는 에스파냐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모험무대로 이 지역을 선택하여 유명해졌다.

 

세르반테스(1547~1616)는 마드리드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가난한 시골 귀족이자 외과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22살 되던 해인 1569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추기경의 수행원이 된 그는 이탈리아 각지를 여행하는 동안, 이탈리아어를 배우면서 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1571년에는 세르반테스는 "일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웠던 활동"이라고 썼던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다. 이 해전에서 한 팔을 잃은 그를 사람들은 '레판토의 외팔이'라고 불렀다. 귀국 길에 해적선의 습격을 받아 알제리에서 5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던 세르반테스는 천신만고 끝에 삼위일체회 수도사들의 도움을 받아 돈을 주고 풀려났다, 마드리드에 정착한 그는 희극배우인 아나 프랑카 데 로하스와 사이에서 유일한 혈육인 딸 이사벨라 데 사아베드라를 얻었다. 37살의 나이로 18살 연상인 카탈리나 팔라시오스와 결혼한 그는 마드리드를 떠나 세비야로 이주하여 세금징수원이 되었다. 행정상의 실수와 공금 횡령 혐의로 옥살이를 하던 세르반테스는 옥중에서 ‘돈 키호테’를 구상했다. 1605년에 ‘돈 키호테’ 1부가 성황리에 출판되었으나 생계에 도움을 주지 못하자, 세르반테스는 세비야를 떠나 바야돌리드로 이주했다. 1605년, 나바로 사람, 가스파르 데 에스펠레타가 치정 관계인 듯한 일로 세르반테스의 집 문 앞에서 칼에 찔린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 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큰 곤욕을 치룬 세르반테스는 1606년, 왕실이 마드리드로 이주함에 따라 마드리드로 이주했다. 이 시기에 그는 가장 왕성한 문학 활동을 했다. ‘모범소설집’을 위시해서 1615년, ‘돈 키호테’ 2부 등 많은 작품을 쓴 후 1616년, 숨을 거두었다. 그 해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하다.

 

이룰 수 없는 꿈을 망상으로 맞서는 주인공은 현실과 망상이 다르기 때문에 늘 부딪히고 망가지고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자기의 의지를 실현시키려고 했다. 이 인물이 400년이 흐른 지금도 여러 형태로 변형되고 재창조되면서 세상 사람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세르반테스가 쓴 소설 “재기 발랄한 시골 귀족 라 만차의 돈 키호테”가 그 주인공이다. 소설이 발표된 이후 돈 키호테는 과대망상에 빠져 어이없는 소동을 일삼는 충동적 몽상가로, 다른 한편으로는 꿈과 이상을 위해 행동을 아끼지 않는 불굴의 인간형으로 평가받으면서,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한번쯤은 나도 그처럼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됐다

 

마흔이 넘은 가정부, 그리고 스무 살이 채 안된 조카딸과 함께 라 만차 마을에 살고 있는 시골 귀족 알론소 키하노는 경작지까지 팔아서 산 기사소설을 읽고서 소설 속 이야기를 모두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기사가 되어 세상을 떠돌아다니기로 작정한 그는 집안에 있는 낡은 칼과 창, 그리고 얼굴을 가리는 아래 덮개가 떨어져 나간 투구를 손질하고, 자신은 ‘라 만차의 돈 키호테’, 자신의 말에게는 ‘로시난테’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같은 마을 농부인 산초 판사는 섬 하나를 정복한 후 그 섬의 영주로 앉혀주겠다는 돈 키호테의 약속에 솔깃해져 처자식을 남겨두고 험난한 모험의 길에 나섰다. 도탄에 빠진 세상을 구하고 가난하고 천대받는 자들을 도와주겠다는 돈 키호테. 비록 망상에서 비롯된 다짐이었지만 그는 약하고 상처받은 자에게는 부드럽고 겸손한 태도로, 악당처럼 보이는 상대에게는 불굴의 용기를 발휘한다. 평원을 지나던 중 멀리 풍차 30~40개가 나타나자 풍차들을 거인들로 착각한 돈 키호테는, 로시난테에 박차를 가하며 달려갔다. 산초 판사가 그건 풍차라고 만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풍차 날개에 부딪혀 로시난테와 함께 나둥그거진 돈 키호테의 기행. 장례를 집전하는 신부를 억울하게 죽은 자의 시신을 탈취한 악당의 무리로 착각하여 시신을 내놓으라며 생떼를 쓰기도 하고, 초원의 양떼를 적군인줄 알고 공격하다, 목동들에게 두들겨 맞는가 하면, 비를 피하려고 머리에 쓴 어느 이발사의 면도용 대야를, 황금투구라며 자신의 머리에 쓰고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동키호테. 한번은 양떼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구실을 부처, 밀린 품삯을 주지 않고 어린 목동을 학대하는 농부를 질타하여, 밀린 품삯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런 그의 기이한 모험은 서서히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조롱하기도 했지만,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지혜와 이해심이 그의 광기 이면에 숨어 있음을 인정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흥미 반 장난 반으로 돈 키호테를 자신들의 저택에 정중히 초대하여, 그의 망상에 맞장구치던 공작 부부는 산초에게 섬의 영주를 시켜주겠다는 돈 키호테의 약속을 듣고, 실제로 산초에게 바라따리아라는 섬을 다스리도록 해주었다. 섬으로 떠나기 전 산초에게 돈키호테는 다음과 같은 당부를 했다. “······행동으로 벌을 주어야 될 사람을 말로 학대하지는 말게. 그 불행한 자에게는 형벌의 고통만으로도 충분한데, 다른 나쁜 말까지 덧붙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자네의 관할 아래서 죄를 지은 사람은 타락한 우리 인간 본성의 양태를 벗어나지 못한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나.” 돈키호테와 같은 고향 사람인 학사 산손 카르라스코라와 신부는 돈 키호테가 제정신을 되찾아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다. 그런 그들에게 지체 높은 부자가 만류했다. “돈키호테가 그의 허튼 짓으로 우리 모두를 재미있게 한 그 즐거움에 비하면 그가 정신이 말짱해져서 얻는 이득은 그에 못 미칠 거라는 것을 모르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속임수를 써서 돈 키호테와 산초를 마을로 데려왔다. 고향에 돌아오자 돈 키호테는 제정신을 되찾고 며칠 후 숨을 거두었다.

 

세르반테스의 소설에는 고위 귀족, 하급 귀족, 상인, 성직자, 농부, 병사, 대학생, 방랑자, 범죄자, 공작 부인, 시녀, 농부의 아녀자, 창녀 등 1600년경 에스파냐 사회의 모든 유형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돈 키호테는 당시 영국의 경제적인 번영의 한편에서 힘없이 몰락해가는, 한때 유럽의 강국이었던 에스파냐라는 세계에 대한 빈틈없는 서술이다. 영국이 시민계급인 상인들에 힘입어 신흥 강국으로 부상한 것과 달리, 에스파냐의 봉건 귀족들은 계속해서 세상과 동떨어진 과거의 이념에 매달려 있었다. 돈 키호테가 기여한 특별한 공로는 무엇보다도 유럽 문학이 이 소설로 인해 한 단계 성숙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돈 키호테가 나오기 전까지는 소설에서 "허구냐 현실이냐?" 하는 질문은 제기되지 않았다. 돈 키호테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독자들은 자신들은 허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만 했다. 그러나 돈 키호테는 이런 도전에 대응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다. 돈 키호테는 현실과 허구를 별개의 두 세계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19세기까지도 사람들은 과연 독자가 두 세계로 이루어진 가상공간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늘 반복하며 불안해하곤 했다.

 

화가들에게 돈 키호테는 무척 탐나고 매력적인 소재였다. 프랑스 화가며 삽화가인 오노레 도미에(1808~1879), 귀스타브 도레(1832~1883)는 돈키호테가 벌인 갖가지 소동들의 장면을 생생하게 화폭에 담았다. 풍차에 달려드는 돈키호테와 실색하며 말리는 산초 판사의 표정. 기사소설에 파묻혀 공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 돈 키호테의 모습. 객줏집 주인에게서 엉터리 기사 서품을 받는 풍경. 산 속에서 고행하는 돈 키호테를 구출하기 위한 계책으로, 도로떼아라는 여성이 돈 키호테에게 자신을 미꼬미꼰국의 미꼬미꼬나 공주라고 속이고 위기에 처한 자신의 왕국을 구해달라고 하는 장면······. 등, 이 두 화가가 남긴 삽화와 그림들은 이후 돈 키호테를 다른 시각적 이미지로, 조각으로, 설치물로, 영화 속 캐릭터로, 그리고 인형으로 재현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비쩍 마른 체구에 덥수룩한 수염, 긴 창과 동그란 방패, 앞부분이 동그랗게 패어있는 투구 - 이발사에게서 빼앗은 면도용 놋대야이기 때문이다. 패어있는 부분은 면도할 때 목을 넣는 곳) 등은 굳이 그가 누구인지 말을 하지 않더라도 돈 키호테를 떠올릴 수 있다. 이후 돈 키호테는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들에 의해 새로운 인물로 탄생되었다.

 

돈 키호테는 스페인 전역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특히 그가 지나쳐 간 기나긴 여정 ‘돈 키호테의 길(La Ruta de Don Quijote)’ 곳곳에 마치 실존했던 인물처럼 돈 키호테가 당당하게 등장한다. 엘 토보소(El Toboso)에는 돈 키호테를 그토록 애태웠던 상상 속의 연인 둘시네아의 집이 있다. 또 돈 키호테가 둘시네아 공주의 궁궐로 생각했던 야고보 교회 앞에는 둘시네아와 그녀에게 사랑의 눈빛을 던지고 있는 돈키호테의 조형물이 마주보고 이렇게 말하고 서있다 “오, 둘시네아 공주님, 사랑의 포로가 된 이 마음의 주인이시여! 냉정하게 저를 버리고 떠나는 그대를 보고 이 마음은 무척이나 아팠습니다. 아름다운 그대 앞에 절대 나타나지 말라며 무섭게 훈계하고 나무라실 때 저는 한없는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그대를 향한 사랑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오직 그대만을 위한 이 가슴을 부디 잊지 말아주십시오.” 마드리드의 스페인 광장(Plaza de España)에 세워진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동상도 수많은 관광객들의 사진 속 배경이 되고 있다. 알칼라 데 에나레스(Alcalá de Henares)의 세르반테스 생가 앞에는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모습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1972년 피터 오툴(Peter O’Tool)이 돈키호테로,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이 돈키호테의 상상의 연인 둘시네아(Dulcinea)로 나온 뮤지컬 영화 “맨 오브 라 만차”는 큰 인기를 끌었다. 주제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으로도 널리 알려진 영화이다. 더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이상을 부르짖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일인가? 어두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헛된 망상일지라도 그 꿈을 간직해야 할까?.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이 아닌가? 이러한 세르반테스의 생각이 주제가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에 집약된다.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 이게 나의 가는 길이오.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걸으리라.” 이 곡은 엘비스 프레슬리, 다이애나 로스 등 유명 가수들의 의해 수차례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돈 키호테는 이 밖에 여러 나라에서 영화,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으로 다양하게 다루어졌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교향시 ‘돈 키호테’(1897), 프랑스 출신 무용가 마리우스 프티타(Marius Petita)가 안무를 맡고, 오스트리아 작곡가 루트비히 민쿠스(Ludwig Minkus)가 곡을 붙인 발레곡 ‘돈 키호테’(1896)는 지금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2002년 노르웨이의 노벨연구소(Nobel Institute)는 세계 54개국의 유명 작가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문학 사상 ‘최고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작품(Best And Most Central Works)’ 10편씩을 선택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 100편이 선정됐다. 이 작품들은 순위 없이 발표됐다. 노벨연구소는 그 100편들 중 ‘최고’로 꼽힌 작품을 발표했다. 세르반테스의 “재기 발랄한 시골 귀족 라 만차의 돈 키호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