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명(高敬命)의 이별 詩
고향집 앞 버드나무
고향 동네 어귀에 늙은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수천 갈래로 가지를 늘어뜨린 버드나무는 햇순을 밀어내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먼저 푸른 기운부터 띄운다. 그럴 때면 또래 친구들은 물오른 가지로 버들피리를 만들어 동네 고샅을 시끌벅적 불고 다녔다. 이 버드나무는 숱이 짙어 여름 한 철에는 살평상만 깔면 동리 어른들의 쉼터가 되곤 했다.
어릴 적에는 물론이고 나이가 상당히 들었어도 버드나무 한 그루가 왜 우리 동네를 수문장처럼 지키고 있는지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늦게나마 옛 시를 읽다보니 그 버드나무가 예사롭지 않은 나무임을 알게 됐다. 머리 속으로 고향을 그릴 때마다 아름다운 배경 속에 우뚝 서있는 동리 앞의 버드나무는 사실은 ‘이별을 위한’ 나무였다.
강가에 말을 세워 놓고 머뭇머뭇 헤어지지 못하여
버드나무 제일 높은 가지를 꺾어주네
어여쁜 여인은 인연이 옅어 자태를 새로 꾸몄는데
바람둥이 사내는 정이 깊어 뒷날을 기약하네
이 시는 조선조 선조 때 의병대장이었던 고경명(1533~1592)이 지은 시다.
아비를 닮아 풍채와 용모가 남달랐던 고경명은 젊은 시절 황해도에 놀러 갔다가 한 기생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 기생은 어느 모임 자리에서 관찰사의 눈에 들어 사랑하는 청년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청년은 헤어짐이 아쉬워 여인의 속치마에 시 한 수를 써주었다.
관찰사 앞에서 술을 따르던 기생의 치마폭이 바람에 날리자 애틋한 이별의 사연이 드러나고 말았다. 관찰사는 연유를 물었고 기생은 숨김없이 대답했다. “뛰어난 풍류객이로다.” 관찰사란 권력의 힘으로 쟁취한 사랑이 기생의 순정 앞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관찰사는 나중 고경명의 아버지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아들을 두었더군요. 재주와 용모는 뛰어나지만 행실은 좀 그렇습디다” 농담 반 진담 반이었다. 그 아버지는 “내 아들의 용모는 제 어미를 닮았고 행실은 이 아비를 닮았소이다”라고 응수했다. 관찰사는 겉으로는 빙그레 웃었지만 고씨 부자에게 연 타석 안타를 얻어맞아 기분이 몹시 언짢았을 게다.
그러나 젊은 한 시절 두루 풍류를 즐긴 고경명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60노구에도 불구하고 종후 인후 두 아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금산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장본인이다. 기생의 치마폭에 일필휘지, 헤어짐의 애틋한 정을 노래할 수 있는 장부의 기개가 있었기에 전쟁이 일어나 나라의 존망이 기로에 서자 자신과 두 아들의 생명 까지도 초개같이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진짜 풍류객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처신이다.
옛날 벼슬아치들은 풍류라는 허울로 기생을 노리개 감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기생도 기생 나름이긴 하지만 대다수가 인격체로서 인정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런 풍조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기생의 입장에선 그런 현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해 내려오는 기생들의 시편 속에 적혀 있는 인간적인 사랑이야기를 접하면 가슴 찡한 감동을 느끼곤 한다.
“묏버들 가지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잠자는 창 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 나거든 나인가 여기소서”(기생 홍랑의 시조) 기생인 그녀에게 이렇게 사무치는 그리움이 없고서야 어떻게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
최근 발견된 19세기 초 한재락이 쓴 평양 기생 67명을 인터뷰한 ‘녹파잡기’(綠波雜記)를 보면 기생들도 그녀들 나름대로 순정을 지키려는 노력이 대단했음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열한 살 어린 기생 초제는 비 오는 날 벼슬아치 행차에 따르려다 가죽신에 구멍이 나있는 것을 늦게 발견했다. 망연자실 서있는데 더벅머리 소년이 자신의 신발을 벗어주고 맨발로 뛰어 가버렸다. 기생은 소년의 신발을 감싸 쥐고 말했다. “처녀의 몸으로 다른 이의 신발을 신었다. 규방 여인의 행실이 변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그와 인연을 맺게 되면 오늘 일 때문일 것이다.”
기생 나섬은 아름다웠지만 도도했다. 준수하게 생긴 남정네와는 하룻밤 정을 나누기도 했지만 천박한 사내와는 백 꿰미 금전을 준다 해도 쳐다보지 않았다. 지금은 초제나 나섬과 같은 기생 같은 기생은 없고 꿰미 돈만 셀 줄 아는 몸팔이 아가씨뿐이다. 그녀들은 고상함과 천박함을 구별하는 감식안이 없기 때문에 지켜야 할 스스로의 자존과 존심을 포기한 것이다.
고향집 앞에 서있는 버드나무를 생각하면 갑자기 내 의식이 눈뜨기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이 버드나무 가지를 몇 번이나 꺾었을까. 싱거 미싱을 사 준 초선이란 기생을 떠나보낼 때는 ‘날 본 듯’하라며 분명 한 가지 꺾은 것 까지는 알겠는데. 나중 저승에서 만나면 손수 꺾은 버드나무 가지 숫자부터 먼저 물어봐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