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

김진우의 족보이야기-(85)제주고씨(濟州高氏

高 山 芝 2011. 5. 31.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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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에 두번 장원급제한 의병장 고경명
김진우의 족보이야기-(85)제주고씨(濟州高氏)
2010년 12월 10일 (금) 07:01:57 한국성씨연구소 김진우 sewoora@naver.com

 

   
뿌리공원에 조성된 제주고씨 조형물.전면/대전중구

 

 

  • 작품명

    탐라의 기상(氣像)

  • 조각가

    고창환

  • 작품설명

    본 조형물은 탐라왕국 역사인 제주도를 한라산 형태로 디자인 하였으며 고씨 종문을 상징하는 종문 심볼을 후손들이 화합과 단합으로 받들어 종문의 발전을 기원하고 받침대 구(球)는 3신인(神人)중 시조 고을나 왕을 추상적으로 표현함.

 

 

   
뿌리공원에 조성된 제주고씨 조형물.후면/대전 중구

 

 

<뿌리공원에 새겨진 제주고씨 유래>

 

우리 고씨는 제주도 고.량.부(高.良.夫) 삼성(三姓) 신화와 탐라왕국의 시조 고을나왕(高乙那王)의

역사가 있으니 자랑스러운 왕손(王孫)이다.

 고씨 왕세기(王世紀)는 당요갑자(唐堯甲子)에 탐라국이 건국되어 제45대 고자견왕(高自堅王)까지 왕치

(王治) 시대를 통치하고, 고려 태조(太祖21)때 병합됨에 제46대 왕자 고말로공(高末老公)이 초대 성주

(星主)로 작위(爵位)를 받고 탐라 민정을 조선태종 때인 제17대 성주 고봉례공(高鳳禮公)까지 다스렸다.

 이처럼 고씨는 상고시대부터 유구한 전통의 기반위에 고을나왕 제46세(世) 고말로 공을 중시조(中始祖)

로 모시고 아홉계파의 관향(寬鄕)으로 분파(分派)되고 있는데 각 파조(派祖)의 역사적 인물을 조감해 볼때

 최초에 고려국 재상반열에 출사한 중시조 제2세 장자 고유는 우습유(右拾遺), 차자 고강은 좌복야

(左僕射:정2품부총리), 삼자 고소는 도총독(開城府都摠督)을 하였으며

 

제3세손 고조기는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정2품부총리), 제4세손 고공익은 검교장소감(檢校將少監), 고영신은 이부상서(吏部尙書:정3품 장관), 제10세손 고인단은 운휘상장군(雲麾上將軍:정3품), 고중연은

호종공신(扈從功臣), 제11세손 고경은 국자감(國子監), 고인비는 병부시랑(兵部侍郞:정4품차관), 제13세손

고택은 판춘추관사(判春秋館事), 고신걸은 호조전서(戶曹典書:정3품 장관), 제15세손 고득종은 세종조

한성판윤(漢城判尹:정2품 서울시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선조(宣祖 25年)때 임진란에 순절한 의병장(義兵將) 충열공 고경명 3부자 공은 일문삼강

(一門三綱) 충효의 귀감이고, 또한 제주 삼성사(三姓祠)를 비롯한 각 파조 신위를 봉안한 사묘(祠廟)와

서원(書院)이 경향 각지에 36처소가 있으며 특히, 중시조를 비롯 13위(位) 조상님과 배위(配位)의

제향(祭享)을 군산 숭모사(崇慕祀)에서 그리고 제주 제궁지(濟州 劑宮址) 탐라원 성지(耽羅苑聖地)에

왕위전(王位殿)과 성주전(星主殿)을 창건하여 역대 선왕위를 봉안 매년 종묘대제향(宗廟大祭享)을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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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작가의 해설>

                                                    고씨(高氏)

  우리나라의 고씨(高氏)는  양씨(梁氏).부씨(夫氏)와 함께 제주도의 대표 씨족이다.

이들 삼성(三姓)은 시조의 탄생에 대하여 제주도에는 삼성혈(三姓穴)전설이 유명하다.

동국여지승람과 고려사에 의하면,오늘날 제주도인 탐라국에는 처음에는 만물과 사람이 없었는데 삼신인

(三神人),즉 고을나(高乙那).부을나(夫乙那).양을나(良乙那)가 한라산 북쪽 모흥혈에서 솟아

나왔다고 한다.

 

   
성주전(星主殿)

2004년 4월 9일 제주시 아라동 고씨 선영 재궁동산에서 고씨(高氏) 종문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고씨종묘 성주전(星主殿) 준공식을 가졌다.


성주전(星主殿)은 탐라국 역대 성주(星主)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고씨가 고려에 처음 입조한 1대성주 고말로(髙末老) 공(公)부터 마지막 성주 고봉례(髙鳳禮)성주(星主)까지 17위의 성주를 모신 사당이다.

고려사()(1451) 권57에..."이들 3신은 수렵을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동쪽 바다에 자주색 흙으로

봉 한 나무궤짝이 떠내려오길래 건져서 열어보니 일본국()에서 왔다는 푸른 띠를 맨 사자

(使)가 푸른 옷을 입은 아름다운 세 공주를 데리고 나왔는데, 3 신인(神人)이 각각 이 공주들과

혼인하고 이들이 가지고 온 오곡()종자의 씨앗과 송아지,망아지로  목축과 농사를 짓기

시작하여 탐라국의 지배씨족이 되어 태평성대를 이루며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고씨는 한자

표기를 높을 고(高)자가 아니라 성 고씨로 씀)

 

"일본국"은 신화적인 용어로 구체적인 국명이라기보다는 '해가 뜨는 나라'로 이해된다고 하며,고씨가전

()에서는 "벽랑국()"이라 하였는데 "푸른 바다 저쪽의 나라"라는 뜻이라 한다.

 3신인은 혼인후 화살을 쏘아 각각 영역을 정하였는데,양을나는 첫째 터전(제일도 :)을

본거지로 삼았다고 고려사(高麗史)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양()은 후에 양()으로 고쳐졌다.

 

제주에는 이들 신인들이 솟아 나왔다는 삼성혈(:사적 134호)과  세 공주가 타고 온 나무궤짝이

발견된 해안황루알,삼신인이 세 공주와 혼인한 혼인지(:제주기념물 17호), 이들이 화살을

쏘았다는 삼사석(:제주기념물 4호)등이 전한다.

 

   

삼성혈(三姓穴)-제주시 이도1동 1313번지

이곳 3개의 구멍속에는 빗물이나 눈이 스며들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주변의 수백년 이상된 고목들은 3개의 구멍(혈)으로 향하고 있으며 마치 절을 하고있는 모습이다.

   
                                       삼성혈(三姓穴) 입구

삼성혈(三姓穴)은 제주특별자치시 이도1동 1313번지에 있는데, 이곳 3개의 구멍속에는 빗물이나 눈이

스며들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주변의 수백년 이상된 고목들은 3개의 구멍(혈)으로 향하고 있으며 마치

절을 하고있는 형상이다.

 3신인(三神人)중에서 고을나(高乙那)가 고씨의 연원을 이루었으므로 고씨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있으며 탄생 설화의 본거지인 제주를 본관으로 하여 오늘날 현달하는 세계(世系)를 계승하고 있다.

 

탐라국(耽羅國)은 시조 고을라왕(髙乙那王)이 제주도에 세운 고대왕국으로써 삼국시대에는 구한(九韓) 중

네 번째 되는 나라로 불릴만큼 가장 번성 하였으며 섬나라 특유의 독특한 문화를 이룩하였다.

영주지에 탐라의 개국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삼신인이 인간세계를 이루고 9백년이 지난 뒤에 인심이 고씨(髙氏)에게 모아지니 임금이 되어 탁라국

(乇羅國:탐라국 耽羅國)을 세웠다. (厥後九伯年之後  人心咸歸髙氏  以髙爲君國號乇羅)"

이같이 탐라국을 세울 수 있었던 과정을 고찰하여 보면 최초의 사회구성체인 3성(三姓,부씨.양씨.고씨)의

각 씨족집단은 자연히  우세한 고씨(髙氏)의 씨족사회를 중심으로 뭉쳐지므로 대집단인 부족연맹사회

(部族聯盟社會)가 형성되고 부족국가(部族國家)를 이룩하게 되었다.(나라의 명칭은 처음에는

乇羅,毛羅,瀛州라 하였으며 일반적으로 耽羅라 통칭하고 있다.)

국가란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그 개념(槪念)상 일정한 영토(領土)를 가지고 있고, 그곳에 거주하는 민족

(民族) 집단이 구성되어 있고, 그러한 모든 것을 관할하고 통치하는 정치제도가 있어야 성립할 수가 있다.

탐라(耽羅)의 건국연대에 관하여는 시조 고을나왕(髙乙那王)이 인간세계를 이룩한 후 9백년이지났다고

하였을 뿐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탐라국왕세기(耽羅國王世紀)에 의하면 기원전 2337년경이라

하였다.

그러나 탐라의 건국연대가 문헌상 뚜렷이 밝혀진 삼국(三國)의 건국연대 보다 훨씬 앞서 있고 오래된

것으로 보는 이유는 탐라의 건국을 부족국가(部族國家)로서 성립한 시대부터 보는데 비하여, 삼국(三國)의

건국은 고대국가(古代國家)로 성립한 시대부터 보기 때문이다. 국가의 발달 단계는 먼저 부족국가가 

형성되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나중에 형성된 것이 고대국가이다.부족국가(部族國家)의 특색은

부족연맹체로서 부족장의 지위가 독자적이었으며 사회적 형태는 혈연사회(血緣社會)였다고 한다.

고대국가(古代國家)의 특색은 왕권의 강화와 동시에 세습제도(世襲制度)가 이루어지고중앙집권 체제가

확립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국가형태의 변천과정을 통하여 본다면 탐라는 시조 고을나왕(髙乙那王)이 나라를 세운 것은 부족국가의 형태로써 그 후 신라초 15세손 고 후(髙厚) 왕에 이르러 고대국가(古代國家)로 발전하게 되었다.

 고씨(高氏)는 그후 후손의 주세거지 및 작호(爵號)에 따라 15개의 본으로 분파되었는데, 시조 고을나의

45세손 자수왕(自竪王)의 태자인 말로(末老)는 제주고씨, 말로의 증손 고공익(恭益)은 청주고씨,

또 다른 증손 고영신은 개성고씨,말로의 10세손 고중(高 仲,일명 봉림)은 장흥고씨,말로의 후손

고종필은 연안고씨 등으로 분관 하였고,옥구.용담.횡성.담양 등의 분파가 있으나 우리나라 모든

고씨(高氏)는 고을나(高乙那)를 도시조(都始祖)로 받들고 '제주고씨(濟州高氏)중앙종문회'로 통일하였다.

 합본된 고씨(合本高氏)는  개성,고봉(고양),금화,담양,안동,연안,옥강,용담,의령,장흥, 제주,청주,

회령,횡성고씨등이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는 본관을 개성, 안동, 장흥, 횡성, 회령 등 122본까지

기록되어있고,고씨는 2000년 인구조사때는 51개 본관에 총 인구는 435,839명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제주고씨>에서 분관된 것이며, 현재는 <제주고씨 중앙종문회>를 만들어 대동단결하고

있다.

개성고씨의 파조 고영신(高令臣)은 고려 예종때 참지정사(參知政事;종2품)를 지냈으며,현재는 본관을

제주로 단일화하여 제주고씨 양경공파(良敬公派)이다. 안동고씨 파조는 조선시대에 군수

(郡守;종4품)를 지낸 고응척(高應陟)으로 현재는 본관을 제주고씨로 단일화되어 제주고씨 중앙종문회를

만들었다.


또한 장흥고씨(長興高氏혹은 장택고씨 長澤高氏)는 고중연을 파조로 받들고 있다. 고중연은 고말로

(高末老)의 10세손으로 고려말 남쪽에는 왜구가 출몰하고 북쪽에는 홍건적이 침입해 오는 시대상황 속에서

활동했던 사람이다. 그는 1361년(공민왕 10)에 홍건적이 압록강을 넘어 2차 침입때 개경이 함락되는 지경에

이르자 왕을 모시고 복주(福州:안동)로 피난을 갔다. 이 때의 공으로 호종공신(扈從功臣)으로

장흥백(長興伯)에 봉하여져 본관으로 장흥으로 했다.
현재는 본관을 제주로 단일화하여 제주고씨 장흥백파(長興伯派)이다.

 

용담고씨 파조는 고려때 삼중대광(三重大匡:정1품품계)에 오른 고여경(高餘慶)으로  제주고씨에서

분적되었으나, 현재는 제주고씨와 합본하여 제주고씨 중앙종문회를 만들었다.

청주고씨(淸州高氏,상당고씨)의 파조는 고려때 검교장작소감(檢校將作少監)을 지내고 상당군

(上黨君:상당은 청주고호)봉해진 고공익(高恭益)이다.현재는 제주고씨와 합본하여

제주고씨 상당군파(上黨君派)이다.

 

토산고씨(황해도 토산)의 파조는 조선조에 이조참판(吏曹參判:종2품 차관)을 지낸 고광인(高匡仁)이며,

현재는 제주고씨와 합본하여 제주고씨 중앙종문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횡성고씨의 파조는 고인비(高仁庇)이며,현재는 본관을 제주로 단일화하여

제주고씨 화전군파(花田君派)로 되어있다.

제주고씨는 고태정(高台鼎)이 1459년(세조5) 식년시(式年試:나라에 경사가있을때 보던 과거)문과

(文科:대과)의 을과(乙科)에  장원급제하는 등 문과(文科;대과)에 3명의 장원급제자를 포함 35명,

무과(武科;무관을 뽑던 과거로 시험은 무예와 병서)에 81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과거)에 56명,

역과에 38명,의과에 6명,음양과에 2명,율과에 9명 등 모두 227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했다.


제주고씨는 지난 2000년에는 총 100,954가구에 인구는 325,950명이었다.

 제주고씨(濟州高氏)는 조선시대에 장원급제자 3명을 포함하여,문과(文科:대과)에 35명,무과(武科:무관을

뽑던과거로 시험은 무예와병서)에 81명,사마시(司馬試:생원.진사를 뽑던 시험)에 56명,역과에 38명

,의과에 6명,음양과에 2명,율과에 9명 등 모두 227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모든 고씨(高氏)는 도시조 고을나를 받드는 같은 혈손으로 대표적 인물을 보면,

 고씨의 세계(世系)는 중시조 말로의 아들인 고유(高維),고강(高綱),고소(高紹) 3 형제가 모두

고려시대에 과거에 급제하여 사환(仕宦:청환요직으로 홍문관이나,예문관,사간원 등의 벼슬)의 길이 트여

이 무렵을 전후하여 탐라(제주)의 고씨가 잇달아 육지로 진출하게 되었다.

 

특히 말로의 큰 아들 고유(高維)는 고려 문종때 우복야(右僕射:상서도성의 정2품 부총리)에 올라

고려에 벼슬한 최초의 탐라인이되었으며,차자 고강은 좌복야(左僕射:정2품부총리),3자 고소는

개성부도총독(開城府都摠督)을 하였으며 이로부터 9상서(九尙書:정3품 장관),12한림(翰林:태학사)을

고려때 배출하였고 조선시대에도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제3세손 고조기는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정2품부총리), 제4세손 고공익은 검교장소감(檢校將少監), 고영신은 이부상서(吏部尙書:정3품 장관), 제10세손 고인단은 운휘상장군(雲麾上將軍:정3품),고중연은 호종공신(扈從功臣), 제11세손 고경은 국자감(國子監), 고인비는 병부시랑(兵部侍郞:정4품차관), 제13세손 고택은 판춘추관사(判春秋館事), 고신걸은 호조전서(戶曹典書:정3품 장관),15세손 고득종은 세종때

 한성판윤(漢城判尹:정2품 서울시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선조(宣祖 25)때 임진란에 순절한 의병장(義兵將) 충열공 고경명 3부자공은 일문3강(一門三綱)

충효의 귀감이고, 제주 삼성사(三姓祠)를 비롯한 각 파조 신위를 봉안한 사묘(祠廟)와 서원(書院)이 경향

각지에 36처소가 있으며 특히,중시조를 비롯 13위(位)와 배위(配位)의 제향(祭享)을

군산 숭모사(崇慕祀)에서 그리고 제주 제궁지(濟州 劑宮址) 탐라원 성지(耽羅苑聖地)에

왕위전(王位殿)과 성주전(星主殿)을 창건하여 역대 선왕위를 봉안 매년 종묘대제향(宗廟大祭享)을

봉행하고 있다.

 

   

포충사 소장 고경명 문적(교지)-광주시 남구 원산동 947-4 시도유형문화재 제21호

숭정대부(종1품)로 좌찬성(종1품벼슬) 겸 판의금부사.세자이사.지경연춘추관.성균관사.홍문관.예문관(양관대제학)대제학에 추증하고 고경명에게 시호를 충렬로 한다.( 서기 1643년  3월28일)

제봉 고경명(1533∼1592)의 아들 고인후, 고종후 그리고 포충사와 관련된 문적으로 사우 관리를 위해 충신과 효자를 예우하기 위한 문서이다.

고경명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58년 왕이 직접 성균관에 나와 실시한 시험에서 수석으로 급제하였고, 같은 해 다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여러 곳에서 도망쳐온 관군을 모아 왜적과 싸웠으며, 다시 의병을 일으켜 6천여명의 의병을 모아 항전하였다.

명문 2점, 입안문 1점, 교지 4점, 유묵 2점으로 되어 있다. 명문은 1601년 나라에서 고경명 부자를 위해 포충사를 지어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사액까지 내리니 고경명의 아들들이 감격하여 자신들의 논밭과 노비를 영원히 포충사에 헌납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입안문은 보통 논밭이나 노비를 사고팔 때 관청에서 인가하는 문서인데 이 문적에 포함된 입안문은 나라에서 충신인 고경명 가문에게 5결의 논밭을 내리는 것을 관청에서 인가한다는 증명서이다. 교지는 고경명이 문과에 급제했을 때 받은 교지, ‘충렬공’이라는 시호를 받을 때의 교지, 고인후와 고종후가 증직될 때의 교지이다. 유묵은 고경명이 직접 쓴 격문과 ‘세독충정(世篤忠貞)’이라는 휘호의 2점이다. <문헌참고>

고씨는 중흥시조 말로의 증손인 고영신(高令臣) 때부터 20여 파로 나뉘는데, 그 중 제주고씨(濟州高氏)

영곡공파(靈谷公派:고득종),장흥고씨 장흥백파(長興伯派:고 중),옥구고씨 문충공파(文忠公派:고경),

개성고씨 양경공파(良敬公派:고영신),청주고씨 상당군파(上黨君派:고공익),제주고씨 성주공파(星主公派:

고인단),제주고씨 전서공파(典書公派:고신걸),횡성고씨 화전군파(花田君派:고인비)등의 후손이 많고 특히

그 중에서도 영곡공파가 가장 많아 현재 모든 고씨의 약 20%가 영곡공파에속한다.


고씨(高氏)는 조선시대에 총 277명의 과거급제자를 배출하였는데 이 중 장흥은 문과에 29명, 제주가

28명, 개성이 8명이었다. 1960년도 국세조사에서는 4만 2676가구에 인구는 23만 3311명이었으며, 이 중

전남이 4만여 명,전북이 3만 2000여 명, 제주 2만 7000여 명, 경기 2만 4000여 명,서울 2만 3000여 명이

었으며 지난 2000년 조사에서 제주고씨는 100,954가구에 인구는 325,950명이었다.

 

 고씨문중에서는2004년 4월 9일 제주시 아라동 고씨 선영 재궁동산에서 고씨(高氏) 종문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고씨종묘 성주전(星主殿)준공식을 가졌다.

성주전(星主殿)은 탐라국 역대 성주(星主)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고씨가 고려에 처음 입조한 1대

성주 고말로(髙末老) 공(公)부터 마지막 성주 고봉례(髙鳳禮)성주(星主)까지 17위의 성주를 모신 사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