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뿌리

고오진(高五鎭)의 연자시 감상문

高 山 芝 2011. 6. 2. 20:22

 

익진, 오진, 의진 3형제는 연자시의 저자 고만거의 증손자입니다.

연자시에 대한 감상문을 한자로 작성했지만 여기에는 9세손인 고영국의 번역한 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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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世上)에는 자손(子孫)을 위하여 계획(計劃)을 세운 사람이 많다.

어떤 이는 집을 화려하게 하고 어떤 이는 재물(財物)을 풍요(豊饒)하게 하는 데, 그 자손이 잘 지켜서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혹(或)은 1대(代) 혹(或)은 2대(代) 못 가서 끝내 타인(他人)의 소유(所有)가 되어 버리고 말면 그 자손(子孫)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겠는가?

대저 후세(後世)에까지 남기는 법(法)은 천백(千百)세(世)가 되어도 없어지지도 썩지도 않는다는 것은 문자(文字)를 가리킨 것이 아닌가? 마(馬)씨(氏)의 계자서(戒子書)와 안(顔)씨(氏)의 가훈(家訓)이 소학(小學) 글귀 속에 소상(昭詳)하게 씌어져 있어 비록 8세아(歲兒)라도 읽고 외우게 되어 모든 사람의 이목(耳目)에 훤하게 들어 있으니 이것이 어찌 좋은 집이나 재물(財物)과 함께 비교(比較)가 되겠느냐?

 

우리 증조부(曾祖父)님 오언시(五言詩) 고풍(古風) 오십(五十)구(句) 또한 마(馬)씨(氏) 계자서와 안씨 가훈과 같이 오로지 조부(祖父)님을 위하여 계칙(경계할 戒 조서 勅)하는 말씀이다.

가만히 생각건대 조부(祖父)님께서 재경(在京)하신 날이 글을 받으셔 가지고 항사 날마다 보시고 자경(自警)하며 감(敢)히 잊어버리지 못하고 품에다 품고 가슴에 새기며 잠간 사이라도 몸에서 떠나질 않았다. 조부(祖父)님께서 불행(不幸)히도 돌아가신 후(後) 상자 속에 넣어둔 채 몇 해가 되도록 자손(子孫)들이 미처 모르고 있었으니 불민(不敏)의 책(責)을 면(免)치 못할 것이다. 다행(多幸)히도 장질(長姪) 제해(濟海)가 우연(偶然)히 휴지(休紙) 속에서 발견(發見)한 것은 할아버지 혼(魂)이라도 그 자손에게 감응(感應)되어서 그렇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지(詩紙)는 증조부(曾祖父)님께서 친필(親筆)로 친작(親作)하신 것이다.

후손(後孫)들은 눈 쓸고 보아 한 자(字) 한 구(句)라도 어느 것 하나 신상(身上) 절요(끊을 切 구할 要)한 말이 아닌 것은 없다.

다행(多幸)히 이 시(詩)를 얻은 후(後)로는 아마 가훈(家訓)이 걱정 없게 되었다.

 

우리 중형(버금 仲 형 兄)께서 먼저 기문(육발이 跂 문 文)을 만들어 위에다 붙이시고 또 4운(四韻)을 붙이셨으니 나도 또한 문(文)을 못하다 그만 둘 수 없다.

그래서 감(敢)히 두어줄 서투른 말을 쓰노니 우리 자손(子孫)들은 차차(次次)로 전가(傳家)하여 수백(數百)세(歲)가 되도록 자경(自警)의 훈(訓)으로 삼는다면 이것이 소위(所謂) 썩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詩)

손때는 오히려 새로운 채 백년(百年)이 넘었는데

훈사(訓辭)는 백금(百 날짐승 禽)을 매 때린 주(周)공(公) 못지않구나.

물려 내린 규모(規模)를 항상 눈여겨보아라.

서랍 속에 고풍(古風)이 있는 것을 이제야 얻었고

시(詩) 가운데 세보(世寶)를 간직했으니 다시 구할 것 없어라

물려받은 계칙(戒勅) 초연(超然)하니

필적(筆跡)은 어찌 장묵(휘장 帳 먹 墨)거둔 것에 견주리요.

 

*********** 불초(不肖) 증손(曾孫) 오진(五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