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息影亭 -高峰 (奇大升) 과 霽峯(제봉)(高敬命)

高 山 芝 2011. 7. 26. 16:06

息影亭 -高峰 (奇大升) 과 霽峯(제봉)(高敬命)
             

前夜依俙杖屨陪 (전야의희장전배)    지난밤에 어렴풋이 스승을 모시었고
今宵款曲笑談開 (금소관곡소담개)    오늘 밤에도 정답게 웃고 말씀하시었네

分明一念猶憂世 (분명일념유우세)    분명한 생각으로 아직도 세상 걱정 하시니
可識先生不著梅 (가식선생불저매)    선생께서 매화에만  집착 않으심을 알 수가 있네.

천리 먼 길에 애도하는 말을 엮어서 한 술잔에 부치오니, 애통하여 저의 정을 다할 수 없사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선생의 영령께서는 행여 저의 작은 정성을 굽어 살피소서. 아, 애통하옵니다. 흠향하소서. < [제문]에서 > 

    *  感欽 (감흠)-1 

先生厭世白雲鄕  (선생염세백운향)    선생은 세상이 싫어 백운향에 가셨는데
賤子含哀在一方  (천자함애재일방)    천한 제자는 슬픔 머금고 이곳에 있네 
遙想佳城今日掩  (요상가성금일엄)    멀리서 생각하니 오늘 무덤에 묻히실 텐데
四山氛霧轉茫茫  (사산분무전망망)    사방의 궂은 안개가 차츰 아득해 지네.

백운향은 장자의 [천지]에 나오는 글이다. ‘저 흰 구름 타고 상제의 고을에서 놀리라’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흰 구름 타고 가는 고을이 바로 백운향이다.

    * 感欽 (감흠)-2


一氣悠悠往又回  (일기유유왕우회)    한 기운이 유유하게 갔다가 돌아오니
可堪華屋落泉臺  (가감화옥낙천대)    화려한 집에서 황천으로 떨어짐을 어찌 견디랴
山頭不覺中心痛  (산두불각중심통)    산 머리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 속이 아프다
衰白餘生踽踽來  (쇠백여생우우래)    쇠약한 몸 백발 여생이 외로워 졌네.   

    * 감흠 (감흠)-3


多病年來效括囊  (다병연래효괄랑)     병이 많아 근년에는 몸 조심을 하니
偶隨春色到禪房  (우수춘색도선방)     우연히 봄빛 따라 선방에 이르렀네
傷心吾道今墜地  (상심오도금추지)     우리 도학이 땅에 떨어짐을 상심하노니
敬爲何人更畜香  (경위하인갱축향)     누구를 공경하며 다시 향기 기를꼬. 

<息影亭>:金成遠의 장인인 石泉 林億齡을 위해 지은 정자이름이다.   息影亭에 다닌 人物로는

면암(송순). 沙村(金允悌). 霞西 (金仁厚). 高峰 (奇大升). 松泉 (양응정). 棲霞堂 (金成遠).

松江 (鄭澈). 霽峯 (高敬命). 옥봉 (백광훈) 등인데  특히  石泉 과 霞西.  高峰 과 松泉.은< 성산 四仙>

이고  石泉 과 棲霞堂.  松江 과 霽峰.을 <息影亭 四仙> 이라 하였다.

<息影亭20詠>은 息影亭과 성산 근처의 이름난 20곳의 풍경을 쓴 시 로서 瑞石 閑雲. 蒼溪 白波.

碧梧 凉月. 釣臺 雙松.  환벽 영추.  노伸巖 (노신암).  紫薇灘 (자미탄).   桃花徑.  芙蓉堂.   仙遊洞.

등  20곳이다.                         *(敬+魚)

<棲霞堂  金成遠>: 1525~1597년. 자는 剛叔.   호는  棲霞堂.  忍齊 이다. 아버지 金弘翼 과 어머니

海州 崔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金成遠이  息影亭 옆에  자기의 號를 따서 棲霞堂을 지었고

環碧堂 主人인 沙村 金允悌의  조카 이고  林億齡의  사위로  성산 別曲의  첫 머리에  나오는

隱者(은자)가  바로 金成遠 이다.   


 *1571년  3월 21일에 고봉 (기대승)은 무등산{無等山} 규봉{圭峯}의 문수암 {文殊菴}에서 쓰다.

   이날 退溪 李滉 先生의 葬禮가 있었다.  
 * 文殊菴은 지금은 무등산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霽峰 (高敬命)[1533-1592]의 무등산 기행문

   [유서석록(遊瑞石錄)]에서  문수암 기록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 [圭峯] 狂石臺의 서쪽 길에는 문지방 같은 돌이 가로질러 있는데 이들을 넘나들면 文殊菴이다.

  암자 동쪽 기슭에 오목하게 패인 돌이 들어 있  어 그 중앙에서 샘이 솟아나오며 돌 틈에는 石蒼포가

  수북이 피어 있고 그 앞에는 높이와 넓이가 수십 척 되는 바위가 있다
* 이 날 무등산 규봉에 오른 高峰 (奇大升)은 제자들과 함께 그날 밤을 담양 식영정에서 보낸다. 그리고 고봉은

  息影亭에서 霽峰 (高敬命)을 만난다. 이 당시에  高敬命은 파직되어 광주에서 벼슬 없이 지내고 있었다. 

* 고경명(高敬命) 1533-1592)에 대하여 알아보자. 1592년 7월 先祖修政實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義兵將 高敬命이 錦山의 敵을 토벌하다가 패하여 순절하였다. (중략)
처음에 임금이 敬命이 義兵을 일으켰다는 소문을 듣고 공조참의 겸 초토사에 제수하도록 명하고 글을 내려

칭찬하고 위로 하였다.(중략)

* 高敬命의 자 字는 이순 (而順), 호 號는 제봉 (霽峯)이다. 풍류와 문채는 세상에서 부러워하는 바였으며 중년에는

벼슬길이 막혔으나 조용한 생활을 하면서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난리에 임해서

절개를 드러냈으므로 조정에서는 그를 일찍 기용하지 못했음을 한스럽게 여겼다.

그는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기묘명현 고운이고 부친은 대사간 고맹영, 장인은 김백균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시문에 능하여 林億齡, 鄭澈, 金成遠과 더불어 息影亭 四仙으로 알려졌다.息影亭과 면앙정,

 瀟灑園(소쇄원)에는 그가 지은 詩가 걸려 있다.   
高敬命은 1558년 26세의 나이에  문과 갑과에 장원 급제한다. 이어서 호조좌랑, 사헌부 지평, 공조좌랑 등을 거쳐

명종의 총애를 받는다. 그는 시문으로 널리 조정에 이름을 날린다. 

*  식영정(息影亭)에서 술 취한 후에 고제봉(高霽峯)과 (김상사) 경생(金上舍景生)과 더불어 韻字를 부르다

 (김성원(金成遠)의 정자 오언 사운 3수)

       *息影亭五言思韻-1                             

物外情難盡  (물외정난진)     물 외에는 정 다하기 어려운데
人間事或乖  (인간사혹괴)     인간에는 혹 일이 어긋나네
杯盤賓主共  (배반빈주공)     술상은 주인과 손님이 함께 하고
談笑古今偕  (담소고금해)     옛, 이제의 이야기  함께 했노라
酒味傾還喜  (주미경환히)     술잔을 기울이면 기쁘고
歌聲聽卽佳  (가성청즉가)     노래 소리는 아름답네
星山此夜會  (성산차야회)     성산의 오늘밤 모임에서
消遣百年懷  (소견백년회)     백년의 회포 풀어 보리라.

     * 息影亭五言思韻-2                                     

 

瑞石纔探歷  (서석재탐력)     서석산 겨우 탐승 하니
松間意不乖  (송간의불괴)     소나무 사이에 뜻이 어울리네
酒多情自放  (주다정자방)     술 많으니 정 스스로 방랑 해지고
吟苦笑兼偕  (음고소겸해)     괴롭게 읊으니 웃음과 함께 했네
長笛風前好  (장저풍전호)     긴 피리소리 바람 앞에 좋고

華燈夜亦佳  (화등야역가)     등잔불 밤 되니아름다워라
棲霞成一宿  (서하성일숙)     연하속에 하룻밤을 자고서
明發有餘懷  (명발유여회)     날이세어도 남은 회포 있네.

 

    * 息影亭五言思韻-3

夜色深深好  (야색심심호)     밤 빛은 깊을수록 좋은데
往言事事乖  (왕언사사괴)     지나간 말은 일 마다 어긋났네
酒來曾不讓  (주래증불양)     술이오면 일찍이 사양하지 아니하고
醉去宿能偕  (취거숙능해)     취해 갈때는 진작부터 능히 함께하네 

爛爛情何極  (란란정하극)     무르익은 정 어찌 끝이 있을까?

追隨意更佳  (추수의갱가)     서로 따르는 뜻 다시 아름다워라
風煙迷洞壑  (풍년미동학)     바람과 연기가 동리 골짜기에 혼미하니
春酌遣幽懷  (춘작견유회)     봄 술로 그윽한 회포 보내리라.


 이로부터 1년 후인 선조 5년 (1572년)에 고봉 (기대승)은 별세한다.

반면에 제봉 (고경명)은 한동안 힘들었지만 1581년에 영암군수가 되어

다시 벼슬길에 오른다.

그리고 1591년에 동래부사를 마지막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인 광주에서 지낸다. 
그런데 1592년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이다.

60세의 노장인 그는 분연히 두 아들과 함께 의병으로 나선다.

의병장 고경명은 호남의 선비들에게 조선을 위하여싸우자고 격문을 보낸다.

이 격문이 오늘날까지도 일부 식자층에게 잘 알려져 있는‘마상격문( 馬上檄文)’이다.

이 격문은 최치원의 ‘황소격문 (黃巢檄文)’, 제갈공명의‘출사표 (出師表)’와 함께

3대 격문에 들어갈 만큼 명문으로 알려져 있다. “

옷소매를 떨치며 단상에 올라 눈물을 뿌리고 군중과 맹서하니,

곰을 잡고 범을 넘어뜨릴 장사는 천둥 울리듯 바람 치듯 달려오고,

수레를 뛰어 오르고 관문을 넘어가는 무리는 구름 모이듯 비 쏟듯 한다.”는 내용의

마상격문은광주, 남원, 전주, 여산을 비롯한 전라도 선비들의 심금을 울려

6천명의 전라도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