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일부분만 남동쪽 유럽에 걸쳐있고, 대부분은 서남 아시아에 속해 있는 중동 국가.
BC 7000년 이전에 정착민들이 자리잡았던 아나톨리아는 BC 1900년경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히타이트인들에 의해 점령되었다. 그들은 강성한 국가를 세우고 번성하다가 BC 1200년경에 무너졌다. 그후 프리지아인과 리디아인에게 점령되었으나 동부지역은 토착왕조인 우라르투(아르메니아) 왕국 통치 아래 남아 있었다. 페르시아 제국이 BC 6세기에 이 지역을 차지했으며, 그 이후 그리스 헬레니즘 세력권 안에 들어갔다가 BC 1세기경에 로마에 넘어갔다. 아르메니아 왕국은 양대 세력인 로마 제국(뒤의 비잔틴 제국)과 동쪽의 파르티아 제국(뒤의 사산 제국) 사이의 완충국으로 남아 있었다. 이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수도로 삼으면서 비잔틴 제국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
11세기에 투르크 유목민의 한 집단인 오구즈족이 동쪽으로부터 침입해 들어왔다. 12세기에는 오구즈족의 일파인 카이족이 아나톨리아의 동부와 중부를 차지하고, 카이족의 오스만 1세가 오스만 왕조를 세웠다. 그들이 영토를 확장하는 초기 단계에 오스만 일족이 투르크족의 가지스(ghazis:비잔틴 제국에 대항해 싸우는 이슬람교 전사들)를 지도했다. 13~14세기 오스만족은 마침내 서부 아나톨리아와 남동부 유럽의 비잔틴 영토를 차지하고 그리스도교를 신봉하는 발칸 국가들을 속국으로 삼았으며, 동부 아나톨리아의 투르크멘 공국을 점령했다. 15세기에는 더 나아가 발칸 속국들을 직접 통치하고,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여 유프라테스 강(동쪽)과 헝가리(서쪽)까지 영토를 넓혔다. 16세기말경에는 그 세력이 절정에 달해 발칸 제국과 중부 유럽의 헝가리,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 대부분을 포함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오스만 제국은 술탄 쉴레이만 1세(1494~1566)의 통치 이후로는 정치적·행정적·재정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1718년경 오스트리아가 헝가리에서 투르크족을 축출했으며, 러시아는 1783년에 크리미아를 합병했다. 오스만 제국은 19세기에 발칸 제국 대부분과 이집트의 통치권을 잃었다. 19세기말에는 소수 민족과 소수 종교분파에게 지방자치를 용인했던 밀레트(비이슬람 종교자치제) 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하여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가 시작되었고 결국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1908년에 젊은 투르크인들이 혁명으로 제국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발칸 제국에서의 군대와 영토 상실로 인한 어려움은 계속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중 터키는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편에 가담했다. 전후 아라비아의 여러 속주와 일부 지역을 잃었지만 격렬한 시민전쟁과 그리스와의 전쟁 결과 1923년 로잔 조약으로 지금의 국경선이 생겼고, 케말 아타튀르크를 대통령으로 한 터키 공화국이 탄생했다. 술탄제와 칼리프제는 폐지되고 아타튀르크의 지도 아래 현대화가 시작되었다.
아타튀르크는 터키의 정치·경제·사회체제 전반에 대한 급진적 개혁을 시도했다. 그는 이슬람의 지배적 역할을 축소하고, 터키어를 아랍 문자 대신 라틴 문자로 쓰도록 하므로써 터키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을 축소시켰다. 또한 이후 오랫동안 영향력이 지속된 국가통제 방식의 경제발전 정책을 마련했다. 1938년 아타튀르크 사망 후 불안정한 기간과 짧은 군부 통치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회정치 및 다당제가 정착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중립을 지켰으나, 전후 서유럽과 제휴하고 미국의 군사·경제 원조를 받았다. 1952년에는 NATO에 가입했으며, 1953년에는 발칸 협정의 조인국이 되었고, 바그다드 조약(1955, 후에 CENTO로 이름이 바뀜)과 유럽 경제협력기구(OEEC) 및 유럽 의회에 가입했다. 1959년에는 그리스와의 3년에 걸친 키프로스분쟁을 잠정적으로 해소했다. 1961년 터키 제2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새 헌법이 채택되었으며, 1963년에 유럽 공동시장의 준회원국이 되었다.
1963년말 키프로스에 거주하는 그리스인과 터키인들 사이의 분쟁으로 키프로스에서 내란이 일어나자 그리스와 터키 양국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어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으나 국제연합(UN)의 압력으로 전쟁이 억제되었다. 1987년과 1996년에는 영토분쟁으로 재차 갈등이 빚어졌다. 1974년 키프로스에서 그리스 군사정부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가 일어났다. 이에 맞서 터키군은 북(北)키프로스를 점령했다. 그후 국내정세 불안과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면서 1980년 군부가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2년 후 새 헌법이 대다수 유권자들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1983년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계엄령은 점차 해제되었다. 1983년 과격한 쿠르드족 분리주의 운동의 출현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지속적인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터키는 조국당의 투르구트 외잘 총리 재임기간(1983~89)중에 비교적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1990년대 들어서는 친이슬람계 복지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증가하는 가운데 중도파 정당들이 집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