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영상수필 - 골로새교회
이번 일정에서 골로새교회만 방문을 하지않았다
Colossae
오늘날 파묵칼레에서 19km 떨어진 카드무스(Cadmus:해발 2571m) 산 기슭에 있는 이 도시에 대해서 각종 고대 역사책에 부분적으로 언급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진 바 없다.역시 리쿠스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어서,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Xerxer)장군이나 원정기를 쓴(아나바시스 Arabasis) 크세노폰(Xenophon) 그리고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황제등이 B.C 5세기의 원정도중 이 도시에서 휴식을 취했다고 전해진다. 플리니(Pliny the Elder)에 의하면 콜로새는 자주색으로 염색된 부드러운 양모의 산지로 유명해서, 이 양모를 '콜로시누스(Colossinus)'라고 불리웠다 한다. 그러나 인근의 신도시 라오디케이아 나, 히에라폴리스에 위축되고, A.D 60년의 지진이후 점점 쇠락해 오을날은 흔적도 없는 작은 언덕만이 있을뿐이다.사도 바오로가 에폐소 감옥에서 이곳의 교우들에게 보낸 콜로새서가 있고, 이 도시의 교회의 중요한 인물이었던 필레몬에게 필레몬의 집에서 도둑질을 하여 로마로 도망쳤던 오네시모(Onesimus)에 대한 당부하는 말를 적어 보내 쪽지 필레몬서가 있다. 그러나 역시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사도 바오로 제자 에바프라(Epaphras)이다. 그는 이 도시를 중심으로 인근의 라오디케이아와 히에라폴리스에 전도를 하여 교회를 세웠다.
관련성서:콜로새 1장 3-8절
현재명은 Honas이다. 바울 당시보다 수 백년 이전에, 골로새는 소아시아(현재의 터어키)의 주도적인 성읍이었다. 골로새는 루카스 강가에 위치해 있었으며, 에게해 해변이 에베소에서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동서의 큰 무역로 상에 위치해 있었다. 주후 1세기에 이르러 골로새는 제 2류의 상업 도시로 축소되었으며, 그 이웃 도시인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4:13 참조)에게 세력이나 중요성에 있어서 오랫동안 눌려왔었다. 주요 산업은 직물업으로 '골로시누스(colossinus)'라는 직물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였고 해안에서 동쪽지방으로 이어주는 무역로는 이도시가 지속적인 발전을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많은 유대인들이 이 주변에 살고있었다(성전세를 낸 수치를 기준하면 약 7,500명의 유대 자유인이 이 주변 지역에 있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골로새가 중요시된 것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간 전도하는 동안 에바브라가 회심하여 복음을 골로새에 전달한 사실 때문이었다(1:7,8; 행 19:10 참조). 이때 아직도 연륜이 오래 되지 않은 이 골로새 교회는 이단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에바브라가 로마에 있는 바울을 방문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결국 바울이 골로새서를 쓰게 되었던 것이다. 에바브라나 바울에 의해 개종된 다른 어떤 신자의 노력 결과로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도 교회가 이미 세워졌었다. 그 교회들 중의 어떤 것들은 가정 교회였다(4:15; 몬 2절 참조). 그런데 그 교회 구성원 대부분은 이방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