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조사할 때만 해도 대부분의 부조 설화도 힌두교였으며 간간히 섞힌 관세음보살에 대해 알기까지는 시간적 갭이 있었기 때문이다. 1925년에 들어서야 2층 상인방(문 윗쪽)에서 불교의 관세음보살(Bodhisattva Avalokiteshvara)과 관련된 내용들을 인식함으로서 시대적 착오임을 알게 되고 새로운 각도로 바이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오늘에 이른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다. 바이욘 건물은 그 양식이나 설계, 구조 등이 한 시기에 일정한 계획 하에 건립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모든 학자들이 공감한다. 그리고 일부 학자들은 아마도, 원래부터 위치하던 힌두교 사원을 기반으로 하여 자야바르만 7세가 확장과 증축을 거듭했을 것으로 추측하며 실제로는 이 이론에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또 그의 치세에 챰족과의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하는 동안 수도가 침범 당해 왕은 쁘레아칸으로 이궁(移宮)하여 지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간적 갭을 두고 공사의 전개와 중지를 거듭하였다는 점에서도 건물 구조의 복합성을 이해할 수 있다. 또 하나, 만약 바이욘이 전체적으로 자야바르만 7세의 기획 아래 동일 시기에 건립되었다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가설로 들 수 있다. 그는 불교 신도였으나 뿌리깊게 이어져 온 힌두교 정서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힌두교 위에 불교를 가미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시대적 배경 어찌되었던 바이욘은 자야바르만 7세의 일대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쟈야바르만 7세는 한마디로 종교개혁가이다. 그는 정통 왕위계승자가 아니라 지방사령관으로 챰족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그 명성으로 비어있던 왕위에 즉위했다. 따라서 바이욘의 부조에도 새겨져있듯이(1층 갤러리, w-2, 3, 4번 부조) 그의 즉위를 반대하는 무리들이 주도한 내란이 빈번했을 것이다. 오랜 전쟁은 겪었지만 그토록 골치아파하던 챰족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역대 최번성기를 맞아 주변 국가들로부터 엄청난 조공을 받던 그로서는 자신의 모든 업적을 한자리에 모울 건축물을 필요로 했었고 이 바이욘에 그 뜻을 새겨 넣었다. 왕국의 안정과 번영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스스로를 자화자찬하기 위해, 또 신의 음덕으로 승리함을 축하하기 위해 헌납한 바이욘에 마지막으로 관세음보살로 화(化)한 자신의 이미지를 넣음으로서 오늘날 바이욘의 꼭대기에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관광객을 맞이하는 신격화된 그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바이욘에서 본 쟈야바르만 7세의 업적 고대 크메르 왕국의 가장 골치는 챰파족이었다. "크메르의 왕들"에서 보다시피 수세기에 걸쳐 끊임없이 침범하고 퇴각하기를 반복하면서 크메르 왕조를 자극했던 챰파족을 완전히 무찌르고 크메르 최고의 번영기를 갖게된 시기. 지방 호족들의 난도 평정하고 이제 쌓이는 건 부(富)밖에 없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왕은 쉬지 않았다. 이제 그는 백성들을 위해 헌신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쪼옥 곧은 도로는 인근 국가로부터의 조공을 실어오는데도 무리가 없었고 백성들이 생산한 물건을 배분하기에도 좋았고 또 전국 곳곳에 병원을 짓고 길가는 행인을 위한 쉼터를 수 없이 만들고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백성들이 사계절 농사 짓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거대한 저수지(쟈야타타카 바라이)도 건립해주었다. 그러나 이토록 국가와 백성을 위해 노력한 왕이지만 문둥병(으로 추정되는)에 걸려 사망하고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황금의 도읍지를 건설하는데 지나친 재정을 쏟아부어 후대의 왕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한 채 결국 크메르의 번영은 일순에 무너지고 만다.
형태 앙코르의 신전들을 보면 네 개의 탑(신화의 4대륙)의 가운데 성소탑(메루산)을 배치한 퀸큉스 구조를 취한다. 지도를 보면 바이욘은 그 자체가 메루산의 위치에 놓여져 있다. 즉 바이욘은 거대한 앙코르톰 도시 중앙에 선 중심 신전인 셈이다. 그 중심 신전을 자야바르만 7세는 자신의 평생 업적을 고스란히 담아 두었다. 앙코르와트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만든데 반해 바이욘은 자연미를 쌓아올린 신전이다. 크기가 서로 다르고 형태도 다른 바위들을 하나씩, 마치 블록놀이를 하듯 20만개가 넘는 바위들을 끼워맞춰 형상을 만들고 거기에 부조를 새기고 얼굴을 새기고 신화와 업적을 새겨 넣는 놀라운 기법을 도입했다. 이러한 기법은 앙코르의 수많은 신전 중에서도 유일하다. 거대한 신전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뭉퉁거리진 구조물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숱한 바위들이 포개고 끼워맞춰진 세계 최대의 블록이다. 유럽인도 감탄하는, 유럽의 건축전성기보다 훨씬 이전에 어떻게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었는지 그 기술과 노력과 완성도에 감탄한다.
구조 바이욘은 3층 구조로 이뤄진다. 일층은 8개의 고푸라문과 16면로 구획된 정사각형 구조를 취하며 2층도 정사각형이나 3층은 원형탑 구조의 지성소로 구성된다. 각 층과 면은 대단히 복잡한 복도(갤러리)와 문, 별실로 이어지며 갤러리의 길이는 총 1,200m로서 11,000여점의 섬세한 부조가 조각되어 있다. 일부 지워지고 알아보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미로같은 복도를 거닐며 아름다운 부조를 감상하다보면 몇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사원의 외곽은 54개(36개만 현존한다)의 크고 작은 탑들이 중상성소를 에워싸고 지붕에는 216개의 큰 바위 얼굴 즉, 자비의 관음보살이며 자야바르만 7세 자신의 얼굴이라 믿어지는 '앙코르의 미소'가 천년 세월 변함없이 자비로운 얼굴을 한 채 얹혀져 있다.
앙코르의 미소 1920년 Jennerat de Beerski란 사람이 3층 성소를 둘러 선 큰 바위 얼굴을 일컫어 "Smile of angkor"라 표현한 이래 우리는 자연스레 그들을 "앙코르의 미소라 표현한다. 외진 곳에서 문득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도 사원 곳곳에서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 때문이 아닐까. 신성함만 강조하는 앙코르와트와 달리 바이욘은 인간미가 느껴지기 때문에 훨씬 정감이 가는 곳이다.
각 층 갤러리의 부조는
일층 갤러리: 인간의 영역으로 인간인 쟈야마르만 7세의 전승과 훌륭한 왕의 덕치로 평화로웠던 시절을 섬세한 부조로 남겼다. 이층 갤러리: 신들의 영역, 신들의 전쟁, 신들의 업적에 대한 부조. 건물의 대부분은 힌두교 양식이며 부조의 등장인물 또한 힌두교의 신들이지만 한마디로 신들의 업적에 견주어 자신의 업적을 승화시킨 전승기념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내부 회랑은 자야바르만 7세 사후 자야바르만 8세에 의해 일부 조각되었다. 3층 : 갤러리는 없으며 지성소 부분이다.
Click 1, 2층 갤러리 지도와 설명 보기
바이욘, 방향 제대로 잡기 바이욘은 넓고 그 구조는 미로처럼 복잡하다. 먼저 앙코르톰의 관광편 설명을 참조한다. 앙코르 톰 내 제1 방문지인 바이욘 동쪽 입구에서 내려 걸어들어가면 지도의 동쪽 입구 고푸라문을 만나게 된다. 사실 지도에서 보는 것 처럼 8개의 고푸라문과 각 방향으로 난 테라스를 통해 바이욘을 무상출입할 수 있지만, 이 건물은 동문을 통해 들어가도록 되어 있으며(방향을 혼돈하지 않아 편리하다) 무엇보다 내외벽의 릴리프(부조)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차례대로 내용을 읽으려면, 역시 동문을 통해 들어가 왼편으로 방향을 잡아 시계 방향으로 뱅뱅 돌아 1층, 2층, 3층을 본뒤 마지막에 북쪽 계단으로 내려와 북쪽 테라스 밖으로 나가면 공터를 지나 바로 바푸온 쪽을 향하면 된다. 건물을 한 바퀴 도는 것도 만만찮지만 복잡미묘한 내부를 우왕좌왕하지 않으려면 익혀둔다. 절약 코스는 지도에 표기된 대로 화살표를 따라간다.
바이욘을 한 컷에 담아오기 갤러리 둘레만 무려 1,200m에 총높이 43m의 3층짜리 건물에 54개의 탑(36개만 현존)과 216개(원래의 갯수)의 얼굴을 가진 바이욘을 시행착오없이 내 앨범에 담아두기 위한 촬영장소 힌트. 관광 일정상 이른 아침에 바이욘을 첫 탐방하게 되는데 아침에 보는 바이욘은 거무튀튀한 돌의 집합체이다. 솜씨 좋은 사람들은 우중충한 윤곽도 멋들어지게 잡겠지만 일반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전경촬영은 밝은 해가 있을 때가 가장 잘 잡히고 해뜬 다음, 석양전의 붉은빛을 담을 때의 형태도 이색적이다. 반면 큰 바위 얼굴은 거무튀튀한 색채를 띄어 밝은 빛일 때가 훨씬 사진이 아름답다.
해서 알아두면 좋은 것. 톰에 들어서면서부터 감탄하여 촬영에 시간을 많이 뺏길 필요는 없다. 톰 관광을 마친 다음 되돌아 나올 때 햇살 가득 받은 전경을 촬영해도 되니까. 관광객의 걱정..... "놓치면 못찍을까봐...." 그러나 코스상 점심 귀가 시에도, 또 다른 지역 관광에도 이곳을 지나간다. 한마디로 바이욘은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해길이, 구름이 낀 정도에 따라, 나무 한그루 탑 하나의 가림에 따라 그 느낌, 찍혀지는 모습이 완연히 다르다.
⊙전경사진 : 남문 들어와 남쪽 전체 전경. 바푸온 입구쪽에서 본 북쪽 전체 전경. ⊙바이욘의 미소: 가장 아름다운 사진, 가장 앙코르 다운 사진인 "바이욘의 미소"는 2층 북쪽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잡히고 3층에선 다양한 미소들의 근거리 촬영이 가능하다. ⊙고푸라: 얼굴 조각이 얹혀진 고푸라문은 바이욘보다는 "우유바다 휘젖기"의 대장관을 연출한 톰의 남문이 최적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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