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 복(回復) ] - 1996년 9월 2일 -
9월 첫날부터 야스미(쉼)다.
아침식사 후 작업복을 입고 나가려다 작업이 유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네모토와 아라이 등과 함께 변소청소와 소각기 청소를 한 후 숙소에서
박경리의 토지를 읽기 시작했다.
몰락한 지주 최참판이야기에, 참판할아버지 묘소가 오버랲 되더니
큰집(무계형님)의 비각과 빈터 그리고 방죽에서
뛰어놀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처갔다.
보름이면 차뜽의 동네대항 씨름은 한해의 이야기거리였다.
우리집에서 머슴살이 하던 양셉이아제와 일용이,이용이,삼용이
부억일을 도아주던 주던 오님이 누나,
양셉이 아제는 나를 무등때우고 동산을 오르내리곤 하였다.
큰비로 천강수에 물이 불어나면 느티나무 가로수에 뱀들이 또아리를 틀었다.
여름이면 소구와 만장을 앞세우고 큰집 작은집 일꾼들이 품앗이로 풀을 하였고
소매댁의 갑순이형은 정신이 이상하였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다정한 형이였다.
강진양반이 첩을 얻었다는 끈적끈적한 소문 때문 온동네가 떠들석했던 고향을 두고
이역만리 타국에서 노가다를 하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
순도와 읍내에서 약국을하던 해남형님댁에는 늘 사람들로 붐볐다.
위씨들 제각을 지키던 석수와 인수 정님이 소장수를 하던 들몰양반과 부산댁 용산댁도
내 기억의 편린 속에서 파득거리기 시작한다.
와세다 대학을 나온 장성아저씨가 언젠가 술에 취해 하신 말씀.
"우리 가문을 일으킬 사람은 영표 너와 영동이다" 그 말씀은 지금도 나의 귓전을 맴돌고 있다.
영조때부터 살아온 평화리, 지금은 타성바지가 많이 들어와서 정착을 고향을 못 가본지가
몇년째 되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귀양살이가 끝나면 돌아가야 한다.
내 아버지가 잠들고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는 그곳으로 돌아가야한다.
태풍의 영향으로 점심때부터 장대같은 비가 쏟아졌다.
여름의 마지막 그림자인 더위가 소나기에 씻겨가는 오후.
책을 1m 쯤 앞에 놓고 봐야하는 노안,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잠속으로 나는 빠저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