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선정 명시인展 - 2
송백정 찬가(松百井 讚歌) * 1
바람불자
나그네 가슴
흔들리네
구불구불
메끄러운 손 끝
뿌리치고
연못에
떨어지는
백일홍 꽃이파리
조각달
거룻배 삼아
용궁 구경 떠나는가
하늘 여행 떠나는가
송백정 찬가(松百井 讚歌) * 2
송백정(松百井) 가운데
송백정(松柏亭)이 있었네
지금은 덩그라니
기둥만 남았네
우람한 적송(赤松)이
하늘을 가리고
동백(冬柏)나무 가지에
산비둘기 쉬어가는
섯달 열흘 꽃이 피는
송백정(松百井). 송백정(松柏亭)에
백일홍 꽃이 지면
올벼가 익는다네
송백정 찬가(松百井 讚歌) * 3
오뉴월 무더위에
속살을 드러내고
간지럼을 태우자
웃슴을 터뜨리네
꾸불꾸불 뒤틀린 나무
부끄럼이 묻어나
차마 바라 볼 수 없는 임
물을 통해 바라보네
송백정 찬가(松百井 讚歌) * 4
바람기 참지못한
산들바람 찾아와
겉옷을 벗기고
속살을 만졌네
수줍은 배롱나무
하얀 가지 뒤틀며
간지럼 참지못해
간당거리네
백일홍 꽃송이
누어 조울던 햇살
경끼 일으키며
방죽에 떨어지네
송백정 찬가(松百井 讚歌) * 5
백일홍(百日紅) 꽃잎파리
버물러진 연못자락
하얀 나비 붉은나비
너풀 너풀 춤을 추네
유치찬란한
꽃들의 향연(饗宴)에
방죽의 수초들
넋을 잃었네
모듬지에 걸린 하늘
물풀 사이 끼어들자
일렁이는 수면 위로
온갖 색(色) 일어나서
햇살 향해 노래하네
노래를 하네
송백정 찬가(松百井 讚歌) * 6
송백정(松栢亭) 작은 섬에
소나무가 독야청청(獨也靑靑)
엄동설한(嚴冬雪寒) 삭풍(朔風)에도
거칠 것이 없다네
민감한 기상(氣象)은
불의(不義)를 참지못해
적송(赤松)의 붉은 기개(氣槪)
하늘을 찌른다네
송백정(松百井) 방죽 가
백일홍(百日紅)이 독야홍홍(獨也紅紅)
자미수(紫薇樹) 붉은 마음
태양 보다 뜨겁다네
미끄러워 오를수 없는
겉과 속이 같은 나무
자잘한 마음들이
무리 되어 꿈을 꾸네
송백정(松栢亭) 작은 섬
독야청청(獨也靑靑) 적송기개(赤松氣槪)
송백정(松百井) 방죽 가
독야홍홍(獨也紅紅) 만당홍화(滿堂紅花)
“태극은 그 색이 청과 홍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 청홍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식물이 소나무와 배롱나무이다.
소나무는 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식물로 겨울에 독야청청하며, 배롱나무는 홍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식물로 여름에 독야홍홍한다.” 청에 소나무, 홍에 배롱나무를 비유할 정도로 배롱나무의 기품이 소나무에 버금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 방외거사 조용헌 -
다른 꽃이 별로 없는 한여름에 독특하게 붉은 꽃을 피우는 특성 탓인지
식물의 품격을 1품에서 9품으로 나눈 강희안(1417~1464)의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는
백일홍이 매화, 소나무와 함께 1품으로 가장 위품으로 등재되어 있다.
송백정 찬가(松百井 讚歌) * 7
울퉁 불퉁
메끈한 가지에
붉은 꽃술 하얀 꽃술
어우러저 피어있네
타고난 자태
원래 부귀한데
해 주변(紫薇省)에 심어주길
어찌 기다릴까 !
노옹(老翁)의 속삭임에
얼굴 붉힌 파양수(怕癢樹)
간지럼 타고 있네
부끄럼 타고 있네
허물 벗고
맨살 드러낸 수피(樹皮)
놀란 눈길에
붉은 속내 감추고
울퉁 불퉁
메끈한 가지
하얀 꽃술 붉은 꽃술
대롱 대롱 메달렸네
天姿元富貴
寧待日邊栽
夾岸紅霞漲
漁郞恐眼猜
-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자미탄(紫薇灘)」-
타고난 자태가 원래 부귀한데
어찌 해 주변에 심어 주기를 기다리랴
골짝 언덕에 붉은 노을 가득하니
고기잡이 시샘하는 눈길로 바라볼까 두렵네.
제봉의 시에서 말한 ‘해 주변’이란 임금이 사는 곳인 궁궐을 말한다.
타고난 자태가 원래 부귀하여 굳이 궁궐의 뜰에 심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 남부 원산의 배롱나무는 중국인들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중국 당나라의 현종은
배롱나무를 아주 사랑한 나머지 국가 차원에서 이 나무를 장려했다. 당 현종은 양귀비를 사랑한 만큼
배롱나무를 사랑한 황제였다. 당나라의 정책은 우선 황제의 조칙을 기초하는 중서성에서 출발한다.
중서성에서 기안한 정책은 문하성에서 심의하고, 문하성을 통과한 정책은 상서성에서 집행한다.
상서성 아래 이부, 호부, 예부, 병부,형부, 공부 등 6부가 있었다. 현종의 정책도 3성 6부를 통해 이루어졌다. 당현종은 여름 내내 배롱나무에서 꽃이 피는 모습을 보면서 정책을 구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중서성의 이름을 배롱나무와 관련한 이름으로 바꾸라고 명령했다. 누가 황제의 뜻을 거역할까.
중서성은 당 현종의 명령으로 다른 이름으로 탄생했다.
바로 자미성(紫薇省) 이다. 자미성은 배롱나무의 다른 이름인 자미화를 빌린 이름이지만,
이 이름에는 '엄청난' 뜻이 들어 있다. 황제의 뜻을 전달하는 중서성의 이름을 단순히 식물 이름만으로
작명할리 없기 때문이다
자미성은 자미성(紫微星;紫薇星) 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자미성은 북두성의 북쪽에 있는 별이다.
여기가 바로 천자가 거처하는 곳이다. 이런 연유로 자미성은 곧 천자의 대궐을 뜻하고,
자미성(紫薇省) 역시 천자가 거처하는 곳이란 뜻이다.
배롱나무처럼 식물을 관청의 이름으로 삼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우리나라의 고려와 조선시대 언론과 감찰기능을 담당했던 사헌부를 백부라 불렀던 것도
상록수인 잣나무(중국에서는 측백나무)의 특성에서 빌린 이름이다
송백정 찬가(松百井 讚歌) * 8
석달 열흘 꽃을 피어
올벼가 익던 날
한가위 보름달
송백정(松白井)을 찾아왔네
붉은 한과(韓菓) 하얀 한과(韓菓)
방죽에 차려놓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네
산들바람 시세움에
한과(韓菓)연못 출렁이면
교교한 달빛 따라
자미수(紫薇樹) 춤을 추네
동사골 맑은 물에
마음을 씻고보니
무계고택(霧溪古宅) 사랑나무
운우지정(雲雨之情) 한창이네
송백정 찬가(松百井 讚歌) * 9
연초록 푸른 잎
꽃바침 마다않고
떠난 임 그리움에
백일동안 피고지는
집착을 벗고 나니
속기(俗氣)마저 사라졌네
한 여름 땡볕속에
석달열흘 꾸는 꿈
두런두런 붉은 송이
꽃망울을 머금고
느릿느릿 쉬엄쉬엄
세상풍파 아랑않네
원추(圓錐) 꽃차례
순서대로 피어나
붉은 눈 꽃송이
바람에 흩날리자
자미화(紫薇花) 붉은 기운
송백정(松百井)에 가득하네
송백정 찬가(松百井 讚歌) * 10
달빛 젖은 배롱나무
송백정(松百井)에 출렁이자
심숭생숭 꽃잎들이
흔들리며 떨어지네
간지럼 참지못해
수줍은 꽃 그림자
바람난 바람결이
내마음을 훔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