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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때를 따라 비 내려
무성한 고욤나무
앙증맞은 실과들이
지천에 열려 있네
땡볕에 길들여진 맛
어찌 할 수 없더니만
잎 떠난 후 내린 서리
홍시가 되었다네
“고욤 일흔이
감 하나만 못하다”며
거북등 같은 나의 몸에
접칼을 들이대
연한 순 심어놓고
사랑으로 칭칭 감네
삼복(三伏) 염천(炎天) 비바람을
은혜인 양 견뎌내니
주렁주렁 맺힌 열매
단감이 열리었네
감쪽같은 사랑으로
단감이 열리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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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이 주어진 선물을 우리는 은혜라고 한다. 그런 은혜를 누리고 살다보면 선물로 주어진 은혜가 당연한 것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사무실 앞 정원에 몇 그루의 공작단풍이 신록 속에서 화려한 자색 깃털을 뽐내고 있다. 평범한 청단풍이 접붙임을 통해 공작단풍 행세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거듭남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청단풍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농장 주인의 접붙임에 의해 공작단풍으로 신분이 상승됐다. 세일단풍, 수양단풍이라 불리기도 하는 공작단풍은 이파리나 가지의 자태에 겸손함과 우아함이 배어있다.
작년 5월이다. 테라스 옆에 식재된 공작단풍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겸손하게 늘어진 가지 틈에서 새로 나온 가지 하나가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있다. 청단풍의 인자가 너무 강하면 청단풍의 가지가 튀어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50여 년 전 일이다. 마당 한 모퉁이에 있던 땡감나무에 아버지는 접칼을 들이대고 단감나무 순을 접붙이셨다. 그리고 몇 년 후 땡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단감열매, 서리를 맞으면 당도가 더 좋았던 사각사각 씹히던 단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꾸민 일이나 고친 물건이 알아차릴 수 없는 만큼 아무 표가 나지 않는 것을 우리는 ‘감쪽같다’고 한다. 그러나 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은 단어 ‘감쪽’은 어디서 유래된 단어일가? 감나무 가지를 다른 나무그루에 붙이는 접, ‘감접’에서 나온 건 아닐까? 감접을 붙인 것처럼 흔적이 없는 상태를 ‘감접 같다’고 한다. 접붙임의 한 형태가 감접인 셈이다. 성경은 접붙임을 거듭남으로 기록하고 있다. 땡감처럼 쓴맛이 가득했던 나의 성정을 예수의 이름으로 접붙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그분께 이 아침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금강일보 2014년 5월15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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