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문기행 - 61 / 경애당
帝典에 曰 克明峻德이라하니
제전에 이르기를 능히 큰덕을 밝히라하니
帝典은 堯典虞書라 峻은 大也라
제전은 요임금의 정치한 법이요 우나라의 글이다. 준은 큰 것이다 - 大學 傳文 제1장-
능연-각凌煙閣
당 태종(唐太宗) 때 공신 24명의 초상을 그려 걸어두고 기념하던 전각(殿閣).<당서唐書 태종기太宗紀>
凌煙功臣少顔色 將軍下筆開生面(능연공신소안색 장군하필개생면 ; 능연각의 공신 초상 오래되어 얼굴 희미하니, 조 장군이 붓을 잡아 그 얼굴들 생동하게 펼쳤네.)<두보杜甫 단청인증조장군패丹靑引贈曹將軍覇>
出武入文千態度 丹靑何樣畫凌煙(출무입문천태도 단청하양화능연 ; 무장과 문신으로 드나드는 천 가지 모습 보이니, 어떤 모양의 단청으로 능연각에 그릴꼬.)<최자崔滋 봉답김정당奉答金政堂>
중화설中和說
은 〈중용 中庸〉의 "희(喜)·노(怒)·애(哀)·락(樂)이 아직 발하지 않은 상태를 중이라 하고, 이미 발하여 모두 절도에 들어맞은 상태를 화라고 한다. 중은 천하의 대본(大本)이며 화는 천하의 달도(達道)이다
중화를 이루게 되면 천지가 제자리를 잡으며 만물이 육성된다"는 구절에 바탕을 둔 이론이다. 여기서 중이란 희·노·애·락 등의 감정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꼭 알맞은 것이다. 이러한 중의 상태를 유지한 마음에서 감정이 드러나게 되면 그것은 조화를 이루게 되어 개인과 사회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마음이 중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또 그 중의 상태를 기르는 수양이 필요한데, 〈중용〉에서는 그러한 도덕적 수양을 가리켜 신독(愼獨)이라 했다. 신독이란 홀로 있을 때도 언동을 삼간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내면에 도덕적 성실성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후 송대(宋代)에 이르러 성리학이 자리를 잡으면서 중화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이루어졌다. 정이(程頤)는 중을 적연부동(寂然不動)으로, 화를 감이수통(感而遂通)으로 해석했는데, 이를 계승한 주희(朱熹)는 중과 화를 각각 마음의 정(靜)과 동(動)의 상태로 설명하면서도 정 속에는 동이 포함되어야 하며 동 속에는 정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중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존양(存養)과 성찰(省察)의 경(敬) 공부가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穆穆文王 於 緝熙敬止(목목문왕 오집희경지 ;
깊고 큰 덕을 지니신 문왕이시여, 오오! 광명을 이어 공경하시도다.)<시경詩經 대아 문왕大雅文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