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문기행 - 86 / 경성산 상사천(想思泉)
李白
출생 - 사망 |
701 ~ 7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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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盛唐) 때 농서(隴西) 성기(成紀) 사람. 선조는 수나라 말에 서역(西域)에서 유입되어 와 안서도호부(安徐都護府) 소속의 쇄엽성(碎葉城)에서 태어났다. 자는 태백(太白)이고, 호는 청련거사(靑蓮居士)다. 중종(中宗) 신룡(神龍) 초에 촉(蜀)의 면주(綿州) 창륭현(昌隆縣) 청련향(靑蓮鄕)으로 옮겨 산동(山東)에서 살았기 때문에 산동 사람이라고도 한다.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다. 1,100여 편의 작품이 현전한다. 생애는 분명하지 못한 점이 많아 생년을 비롯하여 상당 부분이 추정에 의존하고 있다.
남성적이고 용감한 것을 좋아했다. 25살 때 촉나라를 떠나 장강을 따라서 강남(江南)과 산동(山東), 산서(山西) 등지를 편력하며 한평생을 보냈다. 현종(玄宗) 천보(天寶) 초에 장안(長安)으로 와 하지장(賀知章)을 만나 인정을 받고 하지장과 오균(吳筠) 등의 추천으로 한림(翰林)이 되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권귀들의 모함을 받자 1년 만에 그만두고 장안을 떠났다. 천보(天寶) 3년(744) 낙양(洛陽)에서 두보를 만났다.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자 영왕(永王) 이린(李璘)의 막료가 되어 난의 평정에 참여했다
영왕의 군대가 패하자 야랑(夜郞)으로 유배갔다가 중도에 사면을 받아 동쪽으로 돌아와 친척 당도령(當塗令) 이양빙(李陽冰)에게 의탁했다. 얼마 뒤 병으로 죽었다. 전설에 따르면 장강(長江) 채석기(採石磯)에서 달을 따러 동정호로 뛰어들었다가 죽었다고도 한다. 기경인(騎鯨人) 또는 적선(謫仙), 시선(詩仙)으로도 불렸다. 젊어서부터 도교에 심취하여 산중에서 지낸 적도 많았다. 그의 시가 보여주는 환상성은 대부분 도교적 발상에 의한 것이며, 산중은 그의 시적 세계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했다. 가장 오래된 그의 시문집은 송나라 때 편집된 것이고, 주석으로는 원나라 소사빈(蕭士驞)의 『분류보주이태백시(分類補註李太白詩)』, 청나라 왕기(王琦)의 『이태백집(李太白集)』 등이 있다.
玉眞公主 /당[唐]나라 예종[睿宗]의 딸. 금선공주[金仙公主]와 함께 도사가 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