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문기행

난징 대학살 / 저자 : 나이절 존스

高 山 芝 2015. 7. 22. 14:07

난징 대학살

연도 1937년 12월 13일
저자 나이절 존스

일본군이 중국 민간인을 학살하고 여성을 무차별 강간한다.

20세기는 참극으로 점철된 세기였지만, 당시 중국의 수도였던 난징이 함락된 뒤 일본군이 저지른 학살은 전시에 민간인을 상대로 자행된 단일 대량 학살로는 최악의 야만적 범죄로 손꼽힌다.

항구 도시인 상하이를 함락시킨 마쓰이 이와네 휘하 일본군은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 수도였던 난징으로 진군했다. 장제스는 후퇴하면서 시가지를 초토화할 것을 명했다. 이에 대해 일본군은 양쯔 강 계곡에서 중국인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것으로 응수했고, 12월 13일, 난징 시가 저항 없이 투항하자 전례가 없는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중국군 병사들이 목표였지만, 곧 민간인들까지 닥치는 대로 죽이기 시작했다. 특히 여성들을 어린아이건 노인이건 가리지 않고 강간해 2만~8만 명의 여성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처형 방법도 집단 총살, 참수, 생매장, 십자가에 매달기, 혀에 매달기 등 다양했다. 갓난아기를 공중에 던진 뒤 총검으로 찔러 꿰어 죽이는가 하면 가족을 죽이기 전에 근친상간을 강요했다. 서방의 선교사들과 언론인들이 이 끔찍한 만행의 증인이었다. 독일 지멘스사() 상하이 지사장이었던 욘 라베는 난징 시 서쪽 외곽에 안전구역을 설정하여 서양인은 물론 수많은 중국인의 목숨을 구했다. 학살과 집단 강간은 1938년 2월까지 6주 넘게 계속되었으며, 약 30만 명이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전 후 마쓰이와 두 명의 중장이 전범으로 교수형을 당했지만, 그 외에는 거의 책임 추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일본군이 난징에서 저지른 짐승만도 못한 범죄에 대해 일본 정부에게 공식 사과와 배상을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은 여전히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