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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橋)가 되라며 다리(脚)를 주었건만
다리는 놓지 않고 담을 쌓는 사람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양다리 걸쳐가며
편견과 독선의 벽과 담 쌓고 있네
웅켜쥔 사람들, 거머쥔 사람들
다리는 놓지 않고 탐욕을 쌓고 있네
담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가 두려워
쌓아도 쌓아도, 만족할 수 없었네
허기진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벽과 담 쌓아가며 앞만 보며 달렸네
달리다 지쳐서 넘어지고 말았네
피곤하고 지친 몸, 가눌 수가 없었네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에게
당신이 찾아와 나를 붙드네
두려워 말라며 나의 손 붙잡고
막힌 담 부수라네, 다리가 되라 하네
사다리 타고서 오르려 하지 말고
험한 세상 다리 되어, 나누면서 살라네
나눌수록 커지는 기쁨도 있다면서
다리 되어 소통하는 참된 자유 누리라네
소통의 부재 때문에 발생하는 매몰비용이 너무 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면 생각도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자기 뜻에 맞게 개조시키려는 사람들은 계몽주의적 사고관에 익숙해 다른 이들을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개조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다름이 곧 틀림’이라는 편견으로 문제를 양산한다.
인간은 훈련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오만이 그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동기부여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 과시욕과 열등감으로 분열을 조장, 사회를 어지럽게 만든다. 일찍이 예수님은 보여주기 위한 외식주의에 자기의(自己義)가 선(善)으로 포장돼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먼저 사랑하고, 먼저 섬기고, 먼저 나누라”고 말씀하셨다.
사랑해야 할 존재로 상대를 바라보는 자의 자유는 마중물이 돼 기쁨의 생수를 분출시키지만 개조돼야 할 대상으로 상대를 바라보면 종국에는 개조자 이익에 부합한, 기쁨 없는 타율의 관계로 귀착되고 만다. 다리(橋) 건설은 불특정 다수인을 위한 공공선을 위한 투자행위다. 다리 건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단절된 지역과 사람들의 소통에 있다.
사람들의 다리(脚) 또한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도구다. 소통의 도구인 다리가 변질돼 벽과 담을 쌓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사회. 공간을 분할해 담과 성을 쌓고 안주하면서, 소통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번영과 소통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다. 계획이나 개조를 통한 소통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공산주의 몰락 과정에서 증명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많은 지도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계획이나 개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소통되지 않는 번영은 썩기 마련이다.
소통과 나눔의 인프라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아니다. 동기부여를 통한 기쁨이 있는 자율적인 나눔행위는 종교단체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사명 중 하나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줘라’라는 황금률에서 용기를 얻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다리가 돼주면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꿈을 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