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표작품 ]

2015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선정 특선 - 현대시인전 / 좋은 시 명시인전 - 2

高 山 芝 2015. 9. 24. 16:11

 

 

알랑가 몰라

질 좋은

고려(高麗)상추

천금채(千金菜)라

부르는 뜻

혹시 알랑가 몰라

물 좋다고 탐닉(貪溺)하여

물 속에 빠저들면

연한 상추잎

녹아버린 줄

너는 알랑가 몰라

새벽이슬 머금은

싱싱한 잎을 따서

풋고추와 된장으로

상추쌈 하는 락(樂)을

너는 너는 알랑가 몰라

뜯어낸 상채기

젖 피 흐르면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는 사랑을

너는 정녕 알랑가 몰라

 

 

* 중국의 고서(古書)인 『천록지여(天祿識餘)』에 의하면, 고려의 상추는 질이 매우 좋아서 고려 사신이 가져 온 상추 씨앗은 천금을 주어야만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천금채라 했다

 

 

파 도 타 기

나 비록 가진 것 없어도

모든 것 즐기면서

살고 있다네

‘괜찮아, 괜찮아’ 다짐하면서

거센 세파(世波)에 몸을 맡기네

바람 불면

바람과 더불어 가고

파도치면

파도에 올라타네

거센 풍랑 두려워

움츠린 사람들

세상사는 재미

알 수가 없다지만

나 비록가진 것 없으나

거센 바람 따라

파도에 몸을 실고

바다 가르는 재미

즐기며 산다네

 

 

해 인 삼 매(海印三昧)

절로 흘러 찾아온 이,

거절하지 않았네

더렵혀진 탁류(濁流)를 외면하지 않았네

솟구치고 싶은 본능,

자제할 길 없어서

울부짓는 파도를 그대로 두었네

뙤약볕 견딜 수 없어,

모락모락 피어올라

구름이 된다 해도 붙잡지 않았네

세상 번뇌(煩腦) 어우러저,

난장(亂場)이 된다 해도

바다는, 바다는, 꿈쩍하지 않았네

온갖 상념(想念) 날아올라,

검정 구름 만들었네

광풍(狂風)이 몰아치네, 비 구름이 몰려오네

성냄도 부끄러움도,

불안함도 두려움도,

한줄기 비가 되어 쏟고 나니 개운하네

파란 하늘에

생각을 담구었네

바람 잔 바다, 바다가 나를 보네

맑은 바다에

마음을 비쳐보니

마음이 찍혔네, 마음을 찍었네

 

 

다산옹(茶山翁)에게

- 걸명소(乞茗疏)에 부처서 -

아침에 달이는 차(茶)

흰구름 맑은 하늘에 떠있는 듯 하고

낮잠에서 깨어나 달이는 차(茶)

밝은 달 푸른 물 위에 잔잔히 부서진다던

차(茶) 버러지 다산옹(茶山翁)

좋은 차(茶) 얻기 위해 염치(廉恥) 마저 버렸네

물 끓이는 흥취(興趣)를

게눈, 고기눈으로 비유하며

옛 선비 흥취(興趣)를 부질없이 즐긴 사이

왕실의 진귀한 차(茶) 거덜났단 핑계로

부끄러움 무릎쓰고

차(茶) 좀 달라 애걸하네

새 샘물 길러다 불 일어 달인 차(茶)

신령께 바치는 백포의 맛이라네

고해(苦海)의 다리 건너는 사람.

가장 큰 시주는

명산(名山) 고액(膏液) 차보시(茶布施)가 으뜸이니

적선(積善)하는 샘치고 차(茶) 좀 달라 복걸하네

다산옹(茶山翁) 마음 병(病)을 뉘 아니 거절할까

곡우(穀雨) 전(前) 오일 안에 자줏빛 찻잎 따서

정성들여 제작한 우전차(雨前茶) 보내오니

승(勝)도 말고, 취(趣)도 말고, 범(泛)도 말고, 시(施)도 말고,

오롯한 신(神)이 되어

홀로 음미(吟味)하소서

 

 

거리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다가서야 만

살아갈 수 있는

거리가 있지요

서로에게 다가가서

모음(母音)은 모음(母音) 끼리

자음(子音)은 자음(子音) 끼리 어우러져

삶이라는 무대를 연출하지요

먹거리를 가진 자(者)

먹거리를 나누고

일거리를 가진 자(者)

일거리를 나누고

근심거리 가진 자(者)

근심거리 나누면서

어우러져 부대끼며

살아가게 되지요

거리를 걸어가다

낯선 사람 만나면

서로의 거리를 좁혀가며

필요한 거리를

나누게 되지요

다가서서 나누면서

함께 걷는 거리에는

우리들의 꿈이 녹아 있지요

우리들의 삶이 녹아 있지요

 

 

민 들 레

민들레 꽃씨 하나

홀연히 날아와

겨우내 밭이랑에 뿌리 내리네.

아른대는 아지랑이

연한 순 돋더니

꽃샘 시샘 땅에 누운

안질방이 잎사귀

꽃 대궁 하늘로 올려 세우네.

총포 위 꽃눈 따라

혀꽃 통꽃 어우러져

햇귀에 피어나서

햇덧에 잠이드는

볕뉘 받아 함초롬히

하얀 꽃차례

꽃을 보낸 그 자리

그리움 솟아나네.

그리움과 허전함이

부풀리고 부풀려져

해무리 달무리

관모(冠帽) 쓴 포공구덕(蒲公九德).

민들레 꽃씨 되어

바람결에 날아가네.

 

 

토기장이 의 노래

힘 빼라 하네

힘 빼고 살라 하네

힘 준 만큼 힘이 드니

힘을 빼고 살라 하네

한 줌의 점토(粘土)도

힘을 주면 힘이 드니

힘 빼고 빚으라네

힘을 빼고 빚으라네

빈 그릇 누구나  갖고 있지만

아무나 그 그릇 채울 수  없다네

체우기 위해서 비워야 하나니

만들기 위해서 버려야 하나니

욕심(慾心)을 비우라네

욕망(慾望)을 버리라네

마음먹기 따라서는

세상도 변(變) 하나니

용을 쓰지 말라 하네

힘을 빼고 살라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