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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산발목(散髮木) - 광개토대왕릉(廣開土大王陵)의 비가(悲歌) -

연자수필(戀子隨筆)

느릅나무 산발목(散髮木) - 광개토대왕릉(廣開土大王陵)의 비가(悲歌) -

高 山 芝 2015. 12. 2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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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산지의 戀子隨筆] 느릅나무 산발목(散髮木)
   - 광개토대왕릉(廣開土大王陵)의 비가(悲歌) -
데스크승인 [ 2면 ] 2015.12.21   금강일보 | admin@ggilbo.com  
   
      고 산 지 시인

평나(平那)를 침범해 우거(右渠)를 멸하고,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려던 한무제(漢武帝) 유철(劉徹)의 꿈, 고두막한(高豆莫汗)에 가로막혀 이룰 수 없었네.

전투에서 패한 장수 목을 베어 징벌하고, 우거 살해에 협력한 번조선(番朝鮮)의 배신자를, 제후(諸侯)로 봉(奉)한 후 귀국하는 한왕(漢王) 유철, 이 사실을 지켜본 사기(史記)의 사마천(司馬遷)은 한사군의 지명(地名)을 기록할 수 없었네.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 목청을 높이면서 사코 가게노부(酒勾景信)를 밀파한 일본의 군국주의(軍國主義), 광개토대왕비 비문을 훼손했네. 역사를 날조하네. 역사를 왜곡한 일본의 전쟁광들 예전에 다스리던 땅 회복한단 명분으로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設) 앞세워 조선을 침탈했네, 조선을 병탄(竝呑)하네.

우이(嵎夷) 땅에 나라 세운 주몽(朱蒙)의 붉은 꿈. 해를 향해 날아오른 삼족오(三足烏)의 붉은 꿈. 동북아를 호령하던 고구려의 붉은 꿈.

13세에 태자 책봉, 17세에 왕이 돼 영락(永樂) 연호(年號) 사용한 호태왕(好太王) 광개토, 거란을 공략한 후 동부여를 정벌하고, 후연(後燕)을 공격한 후 광활한 고조선(古朝鮮) 옛 영토 회복했네. 신라를 침범한 왜구를 격퇴하고, 관미성을 함락시킨 광개토 39세 젊은 나이 세상을 하직하네.

고조선 고토에 설치하려던 한사군. 한무제 못 이룬 꿈 이루려는 중국인들, 동북공정(東北工程) 책략으로 역사 왜곡하는 동안 임나일본부설 믿고 싶은 일본인들 군비 증강 획책하고 발톱을 세우네. 자국이익 보호 위한 주변의 열강들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는데, 남과 북은 분단돼 대치하고, 남마저 분열돼 하나 되지 못하네.

잡초 잡석 널부러져 황폐한 호태왕릉 눈 뜨고는 볼 수 없어 머리 풀어헤친 산발목(散髮木)이 되었네. 호태왕릉 지키는 시위(侍衛)가 되었네. 만주벌판 호령하던 우리의 개토대왕(開土大王), 호태왕 그리워 환생하는 고구려민, 대왕 앞 시립하는 느릅나무 되었네, 대왕릉 지키는 수호목(守護木)이 되었네.

통화(通化)에서 1박을 한 후 버스는 장군총(將軍塚)과 광개토대왕릉으로 유명한 집안(輯安)을 향해 출발했다. 장수왕릉(長壽王陵)으로 소개된 장군총은 인근 고구려고분군과 전혀 다른 피라미드식 무덤으로 고대 동이족이 세운 제단일 가능성이 크다. 427년 고구려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기고, 65년을 더 산 장수왕의 장례가 국내성에서 치러졌다는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장수왕의 첩의 묘로 소개된 고인돌 모양의 배총 또한 선사시대 유적처럼 보였다. 장군총을 관람하고 내려오자 ‘고구려 28대왕 박물관’이라는 간판이 보였고 내 마음은 심란했다. 중국이 장군총 앞에 고구려 28대왕 박물관을 설치한 배경엔 과거 고구려 땅이었던 한수 이북까지 자신들의 영토라는 뜻이 함축돼 있다. 고구려 역사에서 중국의 역사라 할 수 있는 기간은 30년에 불과하다.

668년 당(唐)이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나 699년 대조영(大祚榮)이 진국(震國)을 건립했고, 713년 국호를 발해(渤海)로 고쳤다. 따라서 고구려사가 중국사에 포함되는 기간을 굳이 따진다면 고구려 멸망에서 진국이 건립되기까지 30년이다. 일본이 한국을 36년 통치했다고 전체 한국의 역사가 일본의 역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당나라가 고구려 땅을 30년 지배한 것을 두고 고구려 전체 역사를 중국 역사인 것처럼 주장할 수 없다. 광개토대왕릉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좌우로 늘어선 느릅나무 산발목 사이를 10여 분 정도 걷자 장군총보다 훨씬 큰 무덤이 나타났다. 허물어진 채 방치된 황폐한 무덤에 들어서자 관이 놓였던 텅빈 공간이 을씨년스럽다. 울컥 화가 치밀며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데 있다”라는 토인비의 글이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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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2월 22일 금강일보2면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