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약수마을

제 2부 정화다소편(丁火茶所篇)

高 山 芝 2017. 5. 1. 22:55

제 2부 정화다소편(丁火茶所篇)

 

 

1] 다소(茶所)의 정의

소(所)제도는 염소(鹽所), 자기소(瓷器所)와 같이 서민집단이 거주하는 특수 행정구역으로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초기까지 있었던 지방제도이다. 고려시대는 금소(金所), 은소(銀所), 동소(銅所), 철소(鐵所), 사소(絲所), 주소(紬所), 지소(紙所), 와소(瓦所), 탄소(炭所), 염소(鹽所), 묵소(墨所), 곽소(藿所), 자기소(瓷器所), 어량소(魚梁所.) 강소(薑所) 등으로 소(所)를 구별하여서 각 지방의 특산물을 공급받았다. 이중 다소(茶所)는 차(茶)를 만들어서 나라에 바치는 지방을 말한다. 조선왕조실록중 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 권150 지리지(地理志)에 보면,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에 13개소, 무장현(茂長縣)에 2개소 동복현(同福縣)에 1개소 등 모두 16개소에 다소가 있었다고 전하며, 그 외 신증동국여지승람(新증東國輿地勝覽) 권36은 남평현(南平縣)에 1개소가 있고,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13에 1개소가 있다고 하였다. 세종실록지리(世宗實錄地理志)는 모두 36개 군(郡), 현(縣)의 토공(土貢)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그 중에서 무장현(茂長縣)과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 그리고 동복현(同福縣)에만 다소(茶所)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2]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와 13개소의 다소(茶所)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에는 13개소의 다소(茶所)가 있었는데, 요량(良饒), 수태(守太), 칠백유(七百乳), 정산(井山), 가을평(加乙坪), 운고(雲高), 정화(丁火), 창거(昌居), 향여(香餘), 웅점(熊岾), 가좌(加佐), 거개(居開), 안칙곡(安則谷)을 말한다.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는 지금의 전라남도 장흥군으로 본래 백제의 오차현(吳次縣)인데 신라 경덕왕때 오아현(烏兒현)으로 고쳐 보성군(寶城郡)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초에는 정안현(定安縣)으로 고쳐서 영암(靈巖) 임내(任內)에 속(屬)하게 하였다가, 인종이 공예태후(恭睿太后) 임씨(任氏)의 고향이라 하여 장흥부사(長興府事)로 승격하였다. 원종 6년(1265)에 회주목(懷州牧)으로 또 다시 승격이 되었다가 충선왕 2년(1310)에 강등하여 장흥부가 되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때문에 거주민은 전부 북쪽 다른 지방으로 옮겼다가 태조 1년(1392년)에 수령현(遂寧縣)의 중녕산(中寧山)에 성을 쌓고 치소(治所)로 삼았다. 태종 13년(1413)에 도호부(都護府가 되었고 이듬해 태종 14년(1414)에 성(城)이 좁다고 하여 수령현(遂寧縣)의 옛터로 치소(治所)를 옮겨 성(城)을 쌓았다. 세조 때 비로소 진(鎭)을 두었고, 고종 32년(1895)에 군(郡)이 되고 1914년에 약간의 변천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도처에 야생 차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장흥군은 차 재배의 적지로서 일찍부터 차산업이 정착한 곳이다. 6.25까지만 해도 이 고장에서는 돈차(錢茶)를 만들어 팔았다.

 

3] 청태전(靑苔錢)

 

차(茶)에는 추차(秋茶)·산차(散茶)·말차(末茶)·병차(餠茶)가 있었고 그중에서도 주류를 이루는 차는 고형차로 모양새에 따라서 병차(餠茶, 떡차)·단차(團茶, 덩이차)·전차(磚茶, 벽돌차) 등으로 불리어졌다. 이런 고형차들이 전래되어서 뇌원차(腦原茶)와 유차(孺茶), 전차(錢茶, 돈차) 등 우리의 차(茶)로 토착화되었다. 이 중 전차(錢茶, 돈차)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청태전(靑苔錢)'이다. 청태전의 어원을 최규용은 『금당다화(錦堂茶話)』에서 차에 녹색 곰팡이가 피어 있고 아무리 파삭 마른 것이라도 이 곰팡이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청태전(푸른 곰팡이가 슬어 있는 돈차)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전차를 만들면 그 색이 푸른 이끼처럼 푸르다 하여 붙여진 것이라는 설도 있고, 차(茶)를 우리면 찻물이 파란색을 띤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청태전이라는 이름의 생성기는 1920년대이고, 청태전의 이름은 전남 장흥(長興)지방에서 만들어진 고유의 토속어(土俗語)이자 비유어(比喩語)였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지방에서는 김의 원조(原藻)를 흔히 청태(靑苔) 또는 녹태(綠苔), 파래라고 하여 바다에서 자라는 이끼라는 뜻으로 불러왔다. 김과 전차의 자연스러운 만남은 전차(돈차)를 흡사 청태로 빚어 만든 구멍 뚫린 동전과 같다 하여 청태전이라 부르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청태전(이하 청태전이라 한다)이 우리의 차사(茶史)에 극명하게 드러나기는 『조선의 차와 선』을 저술한 모로오까 다모쓰(諸岡 存)와 이에이리 가스오(家入 一雄) 두 사람의 일본인 연구에 따른 것이다. 특히 1932년 전후해서 이에이리가 전남 일대의 산야와 촌락을 찾아다니면서 우리의 토산차인 청태전을 탐사하고 연구한 기록은 놀라운 집념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누구의 손에 의해서든 역사적으로 청태전의 본원지로 지목되는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 부근에서의 청태전과의 만남은 어쩌면 우리 차문화사에 일대 쾌거가 아닌가 한다. 다만 천여 년의 문화가 1960년대 부산면관한(夫山面觀閑) 마을을 끝으로 자취를 감춰버린 허전함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 정 병 만의 글에서 발췌 -

 

4] 차뜽(茶嶝)과 습독공(習讀公)의 산정재(山亭齋)

 

차뜽(茶嶝)이라 일컫는 평화촌(平化村) 다산등(茶山嶝)에는 장흥위씨(長興魏氏) 오현조(五顯祖)의 위패를 모신 하산사(霞山祠)가 자리하고 있다. 장흥위씨(長興魏氏)의 본래 세거지는 장흥읍 동동리 장원봉(壯元峯)자락의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 치소(治所) 자리였다. 고려 말 판사공(判事公) 위충(魏种)은 이성계세력을 뒤엎으려다 적발돼 고초를 당했다. 설상가상으로 중령산(中寧山) 인근에 있던 장흥부(長興府)가 도호부(都護府)로 1414년 승격되면서 치소(治所)가 비좁다는 이유로 선조들이 살고 있던 터를 내주고 나와야 했다. 판사공(判事公)의 아들 통선랑공(通善郞公)은 우여곡절 끝에 장원봉(壯元峯)에서 평화촌 다산등(茶山嶝)으로 거처를 옮기었다.

 

판사공(判事公)의 현손인 습독공(習讀公) 휘 유형(由亨)은 조선이 건국한지 한 세기에 가깝거나 넘을 때의 인물이었으나 관(官)을 의식하여 다산등(茶山嶝)에 산정(山亭)을 짓고 주변에 동백(冬栢)과 대(竹)를 심어 정자(亭子)를 가리었다. 건너편에 있는 치소(治所)에서 보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묘소 좌향(坐向)은 유향(酉向)으로 강진 화방산(華坊山)이 정봉이나 제대로 분간하기 어렵다. 묘소의 방향도 식별하기 어렵게 만든 것은 지방관료들의 핍박이 심해서 자기방어를 위한 방편들로 보인다. 습독공(習讀公)은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1454∼1492)과 영천자(靈川子) 신잠(申潛·1491∼1554)과 같은 인물들과 산정재(山亭齋)에서 수작하며 지냈다.

 

 

 

상선약수(上善藥水) 마을

 

차(茶)는 물의 정신(精神)이요

물은 차(茶)를 닮는 몸이니

참물(眞水)이 아니면

차(茶)의 정신(精神)은 나타나지 않고

참다(精茶.眞茶)가 아니면

차(茶)의 몸 또한 제대로 볼 수 없네

 

무릇 참물(眞水)이란

가볍고(輕) 맑고(淸) 시원하고(冷) 부드러워야 하며(軟)

맛있고(美) 냄새가 없으며(無臭) 비위에 맞아(調適)

마시면 탈이 없어야 하나니(無患)

8덕(八德)을 가진 여덟 개의 샘(八泉)이

옛적부터 평화(平化)마을 지키고 있었네

 

억불산 자락의 동사천(東寺泉)과 서당샘(書堂泉)

마을 안에 있는 윗샘(上泉), 아랫샘(下泉), 담안샘(內泉),

가운뎃골 대밭의 제2의 서당샘,

차뜽(茶嶝)의 산정천(山亭泉)과

우복동(牛腹洞)의 우복천(牛腹泉)은

정화다소(丁火茶所)의 보물(寶物)이었네

 

팔덕(八德)을 가진 여덟 개의 샘(八泉)과

주위에 산재한 야생의 차나무로

선차일여(禪茶一如)를 구현했던

정화다소(丁火茶所) 정화사(淨化寺)

지금은 정화사(淨化舍)로 형체만 남았네

 

강산이 비뀌기 수십 번 하는 동안

우복동(牛腹洞), 우복천(牛腹泉)은 저수지로 변하고

차뜽(茶嶝)의 산정천(山亭泉)엔 공덕비만 서있네

윗샘과 아랫샘, 푸른 이끼 무성하고

서당샘(書堂泉)과 동사천(東寺泉)만 제몫을 하고 있네

 

풍파(風波)에 마모(磨耗)되어

평등(平等)하게 화(化)한 동네,

자미수(紫薇樹) 꽃이파리 송백정(松白井)에 내려앉자

세상을 이롭게 하되 다투지는 말라면서

물처럼 살라며 물이 된 상선약수(上善藥水)

이름처럼 흐르네, 평화(平化)뜰로 흘러가네

 

    

* 참물(眞水) - 다신전(茶神傳)에 보면 "차(茶)는 물의 신(神)이요, 물은 차(茶)의 체(體)이나 진수(眞水)가 아니면 그 신(神)이 나타나지 않으며 정다(精茶:眞茶)가 아니면 그 체(體)를 볼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산마루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맑고 가볍고, 산아래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맑고 무거우며, 돌틈에서 나는 샘물은 맑고 달(甘)며, 모래틈에서 나는 샘물은 맑고 차가우며, 흙 속에서 나는 샘물은 맑고 희며, 누런돌(黃石) 틈으로 흐르는 물은 좋으나, 푸른돌(靑石) 틈에서 나는 물은 쓰지 못한다. 또 흐르는 물은 고여 있는 물보다 좋고, 그늘에 있는 물은 햇볕에 있는 물보다 나으며, 진수(眞水)는 맛과 향기가 없는 것이다.

 

* 8덕(八德)

(1) 가볍고(輕), (2) 맑고(淸), (3)시원하고(冷), (4) 부드럽고(軟), (5) 아름답고(美), (6) 냄새가 나지 않고(不臭), (7) 비위에 맞고(調適), (8) 먹어서 탈이 없는 것(無患) 등 8덕을 지닌 물이 진수(眞水)이다. 

                                             - 서역기(西域記) -

    

 

청태전송(靑苔錢頌)

 

곡우(穀雨) 지나

물 오른 찻잎을 따

시루에 찌고 말리길 아홉 번

누렇게 변한 찻잎

목절구로 분쇄하네

 

빻아진 찻가루

반죽하여

무명천 깔아 논

고조리에 넣고 누루면

돈차되네, 떡차되네

 

표면 굳어지면

중심에 구멍을 내

대나무 작살에 끼워

처마에 걸어놓고

건조하네, 건조를 하네

 

바람과 햇볕 받아

장마가 지나고

가을, 겨울이 저물자

떡차 표면에 낀

푸른 곰팡이

 

청태(靑苔) 낀 청태전(靑苔錢)이라.

 

건조된 청태전(靑苔錢)

노릿하게 구워

끓는 불에 우려 마시니

정신이 맑아지고

열기가 가라앉네

 

      

다송(茶頌)

 

야생의 찻잎 따다가

햇볕에 말리네

 

지나치면 바스러지고

미치지 못하면 풋내가 난다면서

 

대나무발 위에

널어놓은 찻이파리

 

위조(萎凋)된 찻잎을 손으로 비벼서

따뜻한 방안에서 건조를 하니

 

그윽한 차향이

방안에 가득하네

          

* 위조(萎凋) -차(茶)의 생엽(生葉)을 시들게 하는 것이다. 식물체의 수분이 결핍하여 시들고 마른다. 홍차 또는 부분발효차 제조공정의 하나로서 독특한 향기를 생성시키고 잎의 촉감을 부드럽게 하기 위하여 생 찻잎을 시들게 한다. 실내위조와 일광위조가 있다.


 

선(禪)

 

바람 잔잔한 청명 아침

 

이슬 사라진 찻잎을 따

 

묵은 잎 골라내어 살청(殺靑)을 하네

 

덖기고 비비길 수차례

 

유념을 거쳐 건조를 하니

 

맛있는 작설차 되었네

 

맑은 샘물 길어다

 

은근한 불로 차를 끓이네

 

하얀 찻잔에 홍매화 꽃잎 띄우고

 

차(茶) 한 잔 들이키자

 

마침내 선(禪)이 되었네

      

* 살청(殺靑) - 가열하여 찻잎의 산화효소의 활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살청(殺靑)의 청(靑)은 차의 생잎을 의미한다.

 

* 유념(揉捻) - 찻잎을 비벼서 찻잎 각 부분의 수분함량을 균일하게 하고 세포조직을 적당히 파괴하여 포함된 성분이 물에 잘 우러나게 하는 과정이다.

 

 

평화다원(平化茶園)에서

 

저수지에 걸린 달

찻잔에 띄우고

죽봉(竹峰)을 바라보며

차(茶) 한 잔 마시게나

 

댓바람 소리

솔바람 소리

맑고 청량한 기운 만끽하며

함께 어우러져 차(茶) 한 잔 마시게나

 

자네 없이도

세상은 돌아가니

좌(左)로나 우(右)로나 치우치지 말고

우리 함께 어우러져 차(茶) 한 잔 마시게나

 

삼매(三昧)의 기이한 향(香) 음미하며는

세상의 모든 잡념(雜念) 사라지나니

자네. 이리 와

차(茶) 한 잔 마시게나, 차(茶) 한 잔 마시게나.

 

   

차뜽(茶嶝)의 전설(傳說)

 

다산등(茶山嶝)에

산정(山亭)을 짓고

동백(冬栢)나무로

치소(治所)를 가리었네

 

적송(赤松) 그늘에 푸른 이끼

방천 뚝길따라

추강(秋江)의 깊은 수심(愁心)

하염없이 흘러가네

 

창현(彰顯)한 석양빛

기다리는 습독공(習讀公)

풀벌레 울음에도

마음이 상(傷)하네

    

   

차뜽(茶嶝) Elegy

 

봄 바람에 감꽃 흩날리면

하얀 감꽃이 흐드러지게 뜨던

 

산정천(山亭泉) 샘물 길어

차 끓이던 습독공(習讀公)

 

출사(出仕)하기 싫어서

다산제(茶山齋) 지어놓고

 

강호의 야인들과 어울리던

노옹(老翁)의 흔적

 

산정천(山亭泉)과 함께

사라져 버렸네

 

산정천 그 자리

후손들 이름 새겨진

커다란 비석 하나

덩그러니 서 있네

 

            

위씨(魏氏) 제각(祭閣)

 

안방문을 열고

제각(祭閣)을 바라보자

 

산정(山亭)의 샘터

늘어진 소나무 가지

 

학(鶴)들이 날아와

깃을 쳤다네

 

길조(吉兆)라면서

그 해 태어난 막내를

 

영송(永松)이라 부르며

기뻐하신 아버지

 

다섯 번이나 변한

강산(江山) 탓일까?

 

산정의 샘터와 소나무

사라진 위씨제각(祭閣)

 

굳게 닫힌 붉은 대문이

나그네 추억(追憶)을 가로막고 있네

 

           

정화사(淨化舍)에서

 

아침 이슬 같은

영롱(玲瓏)한 싱그러움

 

일렁이는 찻잔을 들고

정화사(淨化舍) 마루에 앉았네

 

차(茶) 한모금

혀끝으로 삼키니

 

껄껄한 목젖에 가득한 청향(淸香)

비린 오장육부(五臟六腑) 씻어내네

 

왕대밭에 퍼지는

신령(神靈)한 기운(氣運)

 

흔들리는 달빛이 따라

신묘(神妙)한 충만(充滿) 정화사(淨化舍)를 채우네

      

* 정화사(淨化舍) - 무계(霧) 고영완(고(高永完)의 고택(古宅)으로 원래 정화사(淨化寺)라는 암자 터였다. 정화사(淨化舍)라는 글씨가 지금도 남아 있다.


 

다산옹(茶山翁)에게

        - 걸명소(乞茗疏)에 부쳐

 

아침에 달이는 차(茶)는

흰구름이 맑은 하늘에 떠있는 듯 하고

 

낮잠에서 깨어나 달이는 차(茶)는

밝은 달이 푸른 물 위에 잔잔히 부서진다 던

 

차(茶) 버러지 다산옹(茶山翁)은

좋은 차(茶) 얻기 위해 염치(廉恥) 마저 버렸네

 

물 끓이는 흥취(興趣)를

게눈, 고기눈으로 비유하며

 

옛 선비 흥취(興趣)를 부질없이 즐긴 사이

왕실의 진귀한 차(茶) 거덜났단 핑계로

 

부끄러움 무릎쓰고

차(茶)를 보내달라 애걸하네

 

새 샘물 길러다가 불 일어 달인 차(茶) 맛

신령께 바친 백포의 맛이라던 다산옹(茶山翁)

 

죽은 뒤, 고해(苦海)의 다리 건너는데

가장 큰 시주는 명산(名山)의 고액(膏液이

 

뭉친 차(茶)라면서

한 줌 몰래 보내주라 복걸하네

 

다산옹(茶山翁) 마음 병(病)을 뉘 아니 거절할까

곡우(穀雨) 전(前) 오일 안에 자줏빛 찻잎 따서

 

정성들여 제작한 우전차(雨前茶) 보내오니

승(勝)도 말고, 취(趣)도 말고, 범(泛)도 말고, 시(施)도 말고,

 

오롯한 신(神)이 되어

홀로 음미(吟味)하소서

      

* 다산(茶山)의 걸명소(乞茗疏)

“제가 요즈음 차를 탐하게 되어 차를 약으로 마시고 있습니다. 글로는 중국의 육우의 다경 삼편을 다 통달하였고 병든 이 몸은 누에처럼 중국의 노동이 말한 일곱 잔의 차를 모두 다 마시고 지냅니다. 비록 기력이 쇠약하고 정기가 부족하지만 기모경의 말을 잊지 않아 차가 막힌 것을 삭이고 헌 데를 아물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마침내 이찬황 (당나라 재상)의 차 마시는 버릇을 갖게 된 것이지요. 아침 햇살이 막 비추기 시작할 때나, 뜬구름이 푸른 하늘에 피어 날 때, 또는 오후 낮잠에서 갓 깨어 날 때, 그리고 밝은 달이 시냇물에 비출 때가 차 마시기에 좋겠지요. 끓는 찻물은 가는 구슬이나 휘날리는 눈처럼 날아오르고 자순의 향이 나부끼듯 합니다. 깨끗한 샘물을 길어와 활활 타는 불로 마당에서 차를 달이니 그야 말로 토끼 고기의 맛 그대로 입니다. 꽃무늬 자기나 홍옥의 화려함은 북송 재상가인 노공에게 양보하겠지만 돌솥과 푸른 연기의 소박함은 한비자에게 가깝습니다. 옛 사람들이 즐겨 했듯이 끓는 물방울이 더욱 거세어 게눈과 물고기 눈 모양으로 바뀌더니 용단 봉단의 모습으로 곧 사라지고 맙니다. 이제 제가 채신의 병에 걸려 차를 구하고자 걸명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제가 듣건데 고해를 넘는 교량은 단나의 보시를 베푼다 하였고 명산의 고액은 서초의 괴를 보내 준다 하였습니다. 마땅이 목마르게 바라는 뜻을 생각하시어 차 보시의 은혜를 베푸소서”. - 장 문 철 역 (1997.12)

 

* 노동(盧同 / 唐나라 시인)의 다시(茶詩)

첫 잔은 갈증을 없애고, 둘째 잔은 외로움을 달래 주고,

셋째 잔은 황폐한 마음에서 수천가지 상념을 찾아내고,

넷째 잔은 땀을 내어 삶의 찌꺼기를 뱉어내고,

다섯째 잔에 정신이 정화되고, 여섯째 잔에 불사의 경지로 다가가고

일곱째 잔에 소매자락에 일어나는 미풍을 타고 극락세계로 가고 싶노라

 

* 음다(飮茶) - 다신전(茶神傳)

차를 마실 때 客(객)은 적어야 좋다. 객이 많으면 수선스러워서 雅趣(아취)를 잃게 된다.

신(神) - 혼자서 마시는 차(茶) : 신령스럽고 그윽하여 이속한 경지.

승(勝) - 둘이서 마시는 차(茶) : 좋은 정취와 한적한 경지.

취(趣) - 3-4 명이 마시는 차(茶) : 취미로 마시는 즐겁고 유쾌한 경지.

범(泛) - 5-6 명이 마시는 차(茶) : 평범하여 구속받지 않는다.

시(施) - 7-8 명이 마시는 차(茶) : 음식을 나누어먹는 박애의 경지.

* 탕변(湯辨) -물이 끓는 정도를 분간하는 탕변(湯辨)에는 형변(形辨)·성변(聲辨)·기변(氣辨) 등의 방법이 있다. 물거품이 일어나는 정도를 보고 구별하는 방법이 형변이다. 물거품이 게눈[蟹眼]·새우눈[蝦眼]·물고기눈[魚眼]·연주(連珠)와 같은 상태는 설끓은 물, 곧 맹탕(萌湯)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낮은 곳을 찾아

낮은 곳으로 내려가다

 

막히면 말없이

돌아서 흐르네

 

하해(河海)와 같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용납(容納)하며

 

자신을 규정(規定)하지 않고

흐름을 거스르지도 않네

 

먼저 가려고

다투지 않으면서

 

상황따라 다른 모습으로

만물(萬物)을 이롭게 하니

 

선(善) 중에 으뜸은

상선약수(上善若水)이라네

 

        

운화(雲華)

 

창공(蒼空) 떠돌던 하얀 구름

지상에 내려앉아

주렁주렁 차실(茶實) 곁

차(茶)꽃으로 피었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은

만질수도 없는 희미한 홀황(惚恍)

나무와 풀 사이

내게로 다가왔네

 

인색(吝嗇)하거나,

티 내지 않고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순백의 꽃잎에 싸인

구름의 정화(精華)

무서리 영롱한

황금의 꽃술

 

하늘 빚어 논 현주(玄酒)에

생명(生命) 우러나와

차(茶) 한 잔에 기운이 솟고

차(茶) 한 잔에 기분이 좋아

       

* 운화(雲華) - 차꽃, 가을에 꽃망울이 맺혀 초겨울까지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