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포르투갈 문학기행 - 가우디의 건축물 편 - <작렬하는 태양과 열정이 만들어낸 신화(神話)를 찾아서 * 14>
* 본 기행문은 주간한국문학신문에 연제되었읍니다
<작렬하는 태양과 열정이 만들어낸 신화(神話)를 찾아서 * 14>
- 스페인 포르투갈 문학기행 * 가우디의 건축물 편 - 고 산지
기계화와 근대화로 점차 타락해져 가는 도시생활을 정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의 집'뿐이라는 한 출판업자의 확신에서 출발한 「성가족 성당」은 명칭에서 의미하는 것처럼 가족들이 모여 기도할 수 있는 곳으로 계획되었다. 그래서 성당의 주제 또한 예수, 마리아, 요셉 세 사람의 성스런 가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1882년 설계를 부탁받은 건축가 빌랴르(F. de P. Villar y Lozano)는 좋은 취지의 계획이었기에 돈을 받지 않고 50명의 노동자와 함께 성당을 짓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성당을 무조건 싸게만 지으려고 하는 교구에 환멸을 느낀 빌랴르는 작업을 포기하고, 후임자로 제자인 가우디를 추천하였다. 공사를 맡은 가우디는 빌랴르의 설계를 폐기했다. 가우디의 머릿속에는 성스럽고 아름다운 성당이 그려지고 있었다.
“ 이 교회는 신이 머무는 곳으로, 기도하는 장소입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는 로마의 카타콤베에 있는 초기 교회에서 기도를 드렸던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크리프타 위에는 주 제단을 설치하고 평면도는 라틴 십자형으로 다섯 개의 회랑(回廊)과 바실리카 양식의 회랑 세 개를 만들 것입니다. 세 개의 정문을 갖추고 정면에는 마요르카 거리와 마주한 다섯 개의 회랑에 상응하는 다섯 개의 입구를 갖출 것입니다. 그리고 양 옆 문에는 다섯 개의 회랑에 상응하는 세 개의 입구를 만들 것입니다.……각 정문에 네 개의 탑이 설치되고 삼면에서 12사도를 표현해낼 것입니다.……교회는 돔에서 비추는 빛과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조합되어 아름다움이 넘쳐흐를 것입니다. 영광된 빛이 교회 안의 색채를 밝게 비추겠지요.……이 교회가 세워지는 중요한 이유는 신의 집과 기도와 명상의 집을 만드는 것입니다.……이 교회는 종교를 올바르게 볼 수 있는, 넓게 열려진 공간이 될 것입니다.”
1906년 건물의 설계도가 마무리되자 예수의 '탄생'과 '수난'과 '영광'을 의미하는 세 개의 정면 중 '탄생' 부분부터 작업하기 시작했다. 「성가족 성당」의 정면이 될 '탄생'은 하늘을 찌를 듯한 4개의 포물 첨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첨탑을 이루고 있는 돌 하나하나는 예수의 탄생을 의미하는 정교한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성가족 성당」은 돌과 종교와 예술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작품으로, 가우디 스스로 속죄사원이라고 칭하면서 건축하는 과정을 자기희생의 과정으로 생각했다. 성당 전체는 '돌로 만들어진 성서'로서 장인들이 직접 손과 연장으로 성서에 기록된 장면들과 가르침 등을 장식과 상징들로 구체화 하였다.
“탑에 성스럽도다(Sanctus, Sanctus, Sanctus)라고 새겨진 세 글자는 각각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게 봉헌한 말이다. 성부에게 바친 성스럽도다(sanctus)는 태양과 같은 노란색으로, 성령에게 바친 두 번째 글자는 오렌지색으로, 성자에게 바친 세 번째 글자는 순교자의 전례를 나타내는 진홍색으로 칠할 예정이다. 이 세 가지의 색상은 각각 대비가 되는 보라색, 청색, 녹색 바탕 위에 씌어지게 된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모두가 '성스럽도다'를 중얼거리며 성 삼위일체를 향한 찬미가를 부르리라. 그리고 찬미가가 사람들의 시선을 하늘로 인도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수난의 파사드(facade)가 전체적으로 돌출되어 보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경외감을 나타내고 싶었다. 그 때문에 빛의 명암, 요철의 모티프, 비장미를 나타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건물 자체가 희생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아치를 파괴하고 열주를 쓰러뜨리더라도 희생의 피흘림을 상기시킬 수 있다면.”
1883년부터 1926년까지 43년간 가우디는 「성가족 성당」 공사에 메달렸다. 특히, 마지막 10년은 작업실을 아예 현장 사무실로 옮겨 인부들과 숙식을 함께했다. 이 당시 가우디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차례로 잃었다. 속세에 미련을 버린 듯 성당을 건설하면서 가우디는 종교에 모든 것을 의지했고, 이런 성향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가우디의 모든 열정이 승화된 곳은 바로 그의 작업실이었다. 그러나 가우디는 살아있는 동안 「성가족 성당」을 완성할 수 없음을 스스로 알았고, 가우디 자신도 알지 못할 먼 훗날을 기약하며 설계와 시공을 해야만 했다. 가우디가 죽은 지 3년 후에 그가 구상한 「성가족 성당」의 전체 도면이 확정 발표되었다. 그 후 「성가족 성당」은 가우디의 작업을 계승하는 건축가들의 기술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가우디의 경제적 후원자였던 카탈루냐 실업가 에우세비 구엘이 영국 런던의 정원을 모델 삼아 이상적인 전원도시를 조성하기 위해 가우디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1900년경 지중해가 보이는 바르셀로나 시내의 외곽 언덕에 신주거지 60호를 건설해 분양할 계획이었으나, 재정적 이유로 1914년까지 가우디가 기거하는 집(현재 가우디 박물관으로 사용)을 포함한 건물 두 채와 중앙광장, 타일 벤치 등만 지은 채 방치되었다. 1922년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이 땅을 사들여, 이듬해 시립 공원으로 꾸미고 일반인에게 공개한 이래 바르셀로나 시민들의 안식처가 되었고 현재까지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명소로 거듭났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엘 공원은 가우디의 작품 중 가장 색상이 화려하다.
주출입구는 입구에서 볼 때 오른쪽은 경비실이고, 왼쪽은 사무실인데 모자이크로 뒤덮인 외관이 독특해 '과자의 집'이라고도 불린다. 주출입구를 통과하면 계단 중앙에 화려한 색상으로 모자이크한 2개의 분수대가 눈에 띈다. 연금술을 상징하는 도롱뇽과 의술의 신 아이스쿨라피우스를 상징하는 청동 뿔이 달린 뱀 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1층은 중앙 광장 룸이고 2층은 중앙 광장이다. 1층은 유리와 세라믹으로 만든 86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지붕을 받쳐 주고 천장은 변화무쌍한 타일 조각, 파편된 병과 돌을 재료로 한 4개의 태양 모양(사계절을 의미)의 원반형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를 설계한 건축가는 가우디의 협력자인 조셉 후홀이다. 광장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모양의 경사진 통로로 올라가면 중앙 광장이 나온다.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물결 모양의 벤치는 형형색색의 부서진 타일을 이용해 뱀처럼 돌아가며 설치된 열린 공간이다.
가우디는 「구엘 공원」이 좋았다. 그래서 아버지와 죽은 누이의 딸과 함께 이곳에서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가우디는 「구엘 공원」을 신을 위해 만든 지상의 천국이라 생각했고, 그런 자신의 작품 속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을 가장 사랑한 아버지와 신을 느낄 수 있는 곳. 하지만 그곳에서 가우디는 아버지마저 하나님의 품으로 보내야 했다. 건축가의 재능을 물려주었고 자식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버렸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를 잃자 가우디는 더욱더 말이 없어졌고, 오직 일에만 파묻혀 지내게 되었다.
바르셀로나의 그라시아 거리에 카사밀라와 마주보고 있다. 카사밀라의 테마가 '산'이라면 카사바트요는 '바다'를 형상화한 건물이다. 직물업자 바트요를 위해 지은 저택으로, 외관은 바르셀로나의 수호성인인 성 조지의 전설(기사 게오르기우스가 악한 용과 싸우는 황금 전설)을 담고 있다. 벽을 덮고 있는 청록색 세라믹은 용의 껍질을, 발코니와 기둥은 시체의 해골과 뼈를 연상시켜 마치 판타지영화 속 무대 같은 느낌을 준다 카사바트요의 건물 정면은 색유리 파편과 원형 타일로 마감한 트렌카디스(Trencadis) 기법을 활용해 햇빛을 받으면 거대한 보석처럼 가지각색으로 빛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발코니에는 눈 부분이 숭숭 뚫린 괴물의 머리뼈가 돌출되어 있고, 2층에 튀어나온 창가엔 허벅지 뼈 같은 기둥이 흘러내릴 듯한 건물을 지탱해주고 있다. 가우디의 상상력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옥상에 동물의 척추 뼈를 연상시킬 듯한 지붕을 얹어놓았다. 물결치는 건물의 표면은 파도가 지나간 듯이 여러 빛깔의 모자이크로 덮여 반짝이고, 그 위엔 거대한 비늘의 아르마딜로(Armadillo)가 쉬는 듯 누워있다. 아침햇살을 받으면 건물은 온통 무지개 빛으로 반짝거려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 이 원색의 세라믹은 차가운 발코니의 돌과 대조를 이루면서 더욱더 돋보인다. 마리우스 아리 르블롱은 이 건물을 본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이 건축가는 햇볕 아래에서 그림을 그리는 수채화가처럼 집을 바라보았다. 건물을 햇빛의 반사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도자기나 유리자기처럼 여기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가?”
가우디의 작품을 좋아했던 페드로 밀라 이 캄프스는 「카사 바트로」를 보고 한눈에 매료당해 주저하지 않고 가우디에게 공동주택계획을 의뢰하게 된다. '라 페드레라(La Pedrera, 채석장)'로 더 많이 알려진 「카사 밀라」는 마치 인공의 건축물들로 채워진 도시를 비난이라도 하듯 거대한 돌덩어리의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서 있다. 어린 가우디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해주었던 몬세라도 산이 가우디의 손을 통해 새롭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거친 돌로 마감되어 있는 「카사 밀라」의 정면은 발코니 난간을 장식하고 있는 갓 뜯어온 듯한 해초 덩어리로 인해 더욱더 자연과 가깝게 느껴진다.
“고색창연한 돌은 담쟁이덩굴, 발코니의 꽃들과 어우러져 풍부한 느낌을 전해주고, 이 저택에 끊임없이 다양한 색조를 준다.”
「카사 밀라」의 거대한 덩어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당시에 건축된 스페인 도시의 주택들은 대칭, 직선, 직각이 특징이었다. 이와는 달리 「카사 밀라」의 외관은 '멈추지 않는 선(Endless line)'으로 묘사될 정도로 물결치는 듯한 리듬을 건물 전체로 표현하고 있다. 흐르는 선은 외관뿐 아니라 각 층의 내부에도 이어져있으며, 잔물결이 일렁거리는 호수 면과 같은 천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커다란 비누방울 속에 작은 비누방울들이 모여 각 방을 이루고 있는 것 같은 「카사 밀라」는 그야말로 거대한 유기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카사 밀라」의 기괴한 외관은 옥상을 지키고 있는 여러 수호신들로 인해 더욱더 신비로워 보인다. 가우디는 지붕 위에 솟아오른 굴뚝 하나, 환기탑 하나도 그냥 두는 법이 없었다. 가우디에게는 굴뚝도, 환기탑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이었고, 그래서 그것들은 하나같이 「카사 밀라」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어 우리를 초현실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어떠한 건축이나 어떠한 예술품과도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작품으로 평가된 「카사 밀라」, 1984년 유네스코는 이 위대한 건축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