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자수필(戀子隨筆)

사람다운 사람 - 금강일보 > 오피니언 > 칼럼 - 승인 2019.03.13 18:13

高 山 芝 2019. 4. 4. 12:19

[고산지의 戀子隨筆] 사람다운 사람

                         금강일보 > 오피니언 > 칼럼 - 승인 2019.03.13 18:13

 

사람다운 사람은 예의로 소통하지요

자신을 사랑하며 상대방을 예우하지요

 

윗사람은 의(義)로, 아랫사람은 예(禮)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 존중하지요

 

예(禮)가 아니면 보지 않고

예(禮)가 아니면 듣지 않으며

예(禮)가 아니면 말하지 않고

예(豫)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지요

 

사람다운 사람은

 

무례(無禮)하지 않으며

실례(失禮)하지 않으며

결례(缺禮)하지 않으며

비례(非禮)하지 않으며

 

사람 노릇 하면서 사람답게 살아가지요

 

예의 없는 사람 욕망에 눈이 멀어

책임은 지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고

 

수치를 모르니 사람 노릇을 할 수 않지요

사람 노릇 하지 않으니 사람답게 살 수 없지요

 

“예의도 모르는 짐승 같은 놈”이란 말처럼 동물과 인간의 다른 점은 예의에 있다. 상대가 호의를 베풀면 “고맙다”라는 말을 하고, 상대에게 폐를 끼치면 “미안하다”라는 말을 할 줄 아는 동물이 인간이다.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인 예의는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생명존중사상에서 출발한다. 내 생명이 귀한 만큼 상대방의 생명도 귀중하다는 뜻이 예의에는 함의돼 있다. ‘존경’, ‘존중’이란 말로 사용되는 영어 ‘respect’를 풀이하면 ‘re’는 ‘back’으로 뒷면, 이면, 숨겨진 면을 뜻하고, ‘spect’는 ‘보다’라는 단어 ‘look at’과 같다. 존재의 이면에 숨겨진 속성인 마음까지 바라보는 것이 존경의 진정한 의미다.

 

존경(尊敬)이란 한자도 풀이를 해 보자. 술잔(우두머리 추酋-추장, 묵은 술)을 손(마디 촌寸-손가락 하나의 너비)으로 받쳐든다는 뜻의 높을 존(尊 또는 술그릇 준)자와 등글월문(攵)자와 진실로 구(苟)의 합자인 공경할 경(敬)자는 삼가다, 조심하다를 나타낸다. 삼가 조심하며 술잔을 드는 뜻으로 고대사회에서는 신에게 술을 바치는 행위를 높을 존(尊)으로 표현했다. 같은 글자이나 신에게 술을 바치는 헌작(獻爵) 절차에 쓰이는 술을 담는 항아리를 말할 때는 항아리 준(尊)이라 한다. 종묘 제향에는 소와 코끼리 형상을 본 뜬 희준(犧尊)과 상준(象尊), 양과 음의 모양을 형상화한 착준과 호준(壺尊) 네 가지 종류가 쓰인다. 소는 큰 희생(犧牲)으로 기름이 향내가 나므로 봄에 알맞기 때문에, 봄 · 여름 제사에 소를 형상화한 희준을 사용하였다. 몸체에 뚜껑을 덮어 몸통에 술을 보관한 형태와 몸통 위에 항아리를 올려 항아리에 술을 보관한 두 가지 유형이 전해진다. 코끼리는 큰 짐승으로 남월(南越)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봄·여름 제사에 코끼리를 형상화한 상준(象尊)을 사용하였다.

 

논어의 안연(顔淵) 편에서 공자는 자신을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을 인(仁)이라 했다(克己復禮爲仁).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게 되면 온 천하가 이 사람을 어질다고 할 것이다. 인을 행하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지, 남에게 달려 있겠느냐?”라는 공자의 말에 안연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했다. 이에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非禮勿視),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非禮勿聽),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非禮勿言),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非禮勿動)”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공자는 예(禮)를 소극적으로 해석했지만, 예수는 예(禮)를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을 내가 존중할 것이고, 나를 멸시하는 사람들을 나도 멸시할 것’이라라는 구약 말씀을 예수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로 황금률로 바꿔 선포했다. 원하는 것을 얻고 싶으면 먼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하라는 말씀으로, 먼저 행하는 예(禮)를 인류 최고의 황금률로 만든 게 예수다.

 

‘닛코(日光)를 보지 않고는 일본을 논하지 말라’는 닛코의 도쇼구(東照宮)의 정문에 있는, 세 마리 원숭이가 각각 눈·귀·입을 가리고 있는 삼불원(三不猿) 상 앞에는 항상 많은 관광객이 모인다. 세 마리의 원숭이 상의 기원이 어디서 왔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일각에선 고대 이집트의 토트의 이미지가 동아시아에 전래됐을 것이라 추측한다. 이들은 세 원숭이가 각각 눈·귀·입을 가리고 있는 이유를 사악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르침으로 해석한다.

 

마하트마 간디 역시 비슷한 교훈을 남겼다. 간디가 힌두교 극단주의자 나투람 고드세의 총에 맞아 타계하기 전 남긴 유품 중 하나가 바로 삼불원 상이다. 그러나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으면 세상은 변화되지 않는다. 내가 먼저 행동해야 세상은 변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禮)는 내가 먼저 행동하는 인류의 보편적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