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자수필(戀子隨筆)

<고산지의 戀子隨筆> 기생충 - 금강일보 승인 2020.02.25 16:53

高 山 芝 2020. 3. 18. 20:16

<고산지의 戀子隨筆> 기생충 - 금강일보 승인 2020.02.25 16:53

 

광합성 명목으로

불공정행위를 하면서도

자신을 정당화하는

너는 배은망덕한 놈이다

 

약함을 내세워

의지할 곳 찾던 너는

약함을 핑계로 수액을 편취하는

사기꾼이다

 

어우러져 엉켜서

동귀어진(同歸於盡) 꾀하는 너는

벼랑 끝 전술에 능한

모사꾼이다

 

홀로 감아올릴 수 없어

버팀목 되어 주자

덩굴손 칭칭 감아 빨대를 꽂은

너는, 너는 기생충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4관왕(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을 차지해 한국 영화계의 금자탑을 이룩했다. 이 영화의 성공요인은 자본주의 체제의 극심한 불평등과 프롤레타리아의 진면목을 냄새와 선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각양각색의 관객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야기로 공감하게 했다. 봉 감독은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지극히 동물적인 욕망을 통해 기생충의 주인공들을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고 갔다. 그리나 기생충은 숙주 속에서 계속 살아남았다.

 

동물에게만 욕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식물도 지극히 이기적인 욕망이 있다. 다른 식물에 의지해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식물을 덩굴식물 또는 넌출식물이라고 한다. 길게 뻗어 나가면서 다른 물건을 감기도 하고 땅바닥에 퍼지기도 하는 식물의 줄기가 덩굴이다. 덩굴손은 잎과 마주나고 갈라져서 끝에 둥근 흡착근(吸着根)이 생기는데, 이것은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잎이 변태한 덩굴손은 잎덩굴손 또는 엽성 덩굴손이라고 하며, 줄기가 덩굴손으로 변태한 것은 경성 덩굴손, 식물의 뿌리가 변태하는 것은 근성 덩굴손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덩굴식물은 칡이다. 칡 줄기는 길게는 10m 이상 뻗고 넓은 잎이 촘촘하게 나있다. 무성한 칡잎은 크고 작은 식물을 덮쳐 햇빛을 독차지한다. 칡덩굴은 광합성을 왕성하게 한 넓은 잎 덕분에 주변의 영양분을 닥치는 대로 빨아들여 뿌리에 저장한다. 칡덩굴이 덮친 나무와 풀은 영양분과 햇빛을 뺏기고 비실비실 시든다. 2~3년을 넘기면 칡덩굴 아래 나무와 풀은 거의 다 고사하게 된다.

 

소나무처럼 강한 햇빛과 바람 없이는 살 수 없는 침엽수에게 칡덩굴은 특히 치명적이다. 그러나 몇 년 뒤 기세등등했던 칡덩굴이 보이지 않게 된다. 칡덩굴 아래서 시달리던 나무와 풀이 칡뿌리를 견제하기 위래 타감(他感) 물질을 일제히 발산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결과다. 타감 작용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식물학자 한스 몰리슈(Hans Molisch)에 의해 처음 사용된 식물 용어로 식물이 성장하면서 일정한 화학물질이 분비돼 경쟁이 되는 주변 식물의 성장이나 발아를 억제하는 작용을 말한다.

 

타감 작용은 상호 대립하는 식물끼리 땅속의 영양분을 빨리 또는 보다 많이 흡수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면서 진화했다.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식물을 함께 식재하면 서로 경쟁하기 때문에 성장이 빨라지기도 하며 대립식물을 고사시키기도 한다. 소나무도 타감 작용을 하는데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 다른 나무들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는 물질을 내뿜는다. 가을에 단풍나무의 잎이 붉은색으로 물드는 것에 대해 기존의 학설은 엽록소가 분해되면서 발생한 현상으로 설명했지만, 이는 타감 작용을 위한 것으로 밝혀졌다. 붉은색의 단풍잎에는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독소가 있어 잎이 땅에 떨어지면 단풍나무 잎에서 안토시아닌이라는 물질이 분비돼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한다. 살아남기 힘들게 된 칡은 다음해 덩굴 뻗기를 중단하고 뿌리에 저장한 영양분에 기대어 몇 년간 숨죽여 지낸다. 산림의 무법자 칡덩굴도 끝내는 타협을 선택하고 이웃 식물들이 살 공간을 열어준다.

 

출처 : 금강일보(http://www.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