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표작품 ]

[고산지의 戀子隨筆] 역사(History) - 금강일보 승인 2021.04.20. 22:29

高 山 芝 2021. 6. 5. 13:27

역사(History) 

 

그분의 이야기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네

 

그분의 이야기로 역사를 기록하면서

그분에 대한 이야기는 용납하지 않네

 

그분의 탄생을 기준으로

자신의 생년월일 기산하며 살고 있지만

그분의 탄생은 부정을 하네

 

메시아의 탄생과 동정녀 잉태를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사람들

 

약속을 하며 계약을 맺으며

약속과 계약을 신뢰하며 살고 있네

 

확증 편향된 그들의 생각 속에

시간의 매듭이 된 그분의 이야기

 

약속이 성취된 기적으로 나타나

사실이 되었네, 역사가 되었네

 

서양의 역사는 크게 주전(主前)과 주후(主後)로 구분한다. 주전을 나타내는 ‘B.C’‘Before Christ’의 약자이며, 주후를 나타내는 ‘A.D’는 라틴어 ‘Anno Domini’의 약자다. ‘Anno Domini’란 그리스도의 해를 의미한다. 이를 기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새 역사가 시작된다. 역사를 뜻하는 영어 History그분의 이야기(His story)’. 세계 역사뿐 아니라 한 민족, 한 나라, 한 가정, 한 개인의 역사를 모두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12:36). 성경은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로마서에서 밝혔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17:24). 사도 바울도 아레오바고 연설에서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선언했다.

 

솔로몬왕 사후 B.C 926년경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단됐다가 722년경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제국(앗수르)에 의해 멸망했다. 친앗수르정책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남유다 또한 앗수르를 패망시킨 바벨론(신바벨론제국)에 의해 B.C 587년경 멸망,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다. B.C 538년 바벨론을 멸망시킨 바사(페르시아제국)의 고레스(키루스)왕은 이스라엘 포로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명령했다.

 

신구약중간기라고 일컫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여 년은 아시리아와 바벨론제국, 페르시아제국, 알렉산더제국, 로마제국으로 이어지는 고대 열강들의 패권 다툼이 치열하던 격동기였다. 알렉산더 대왕과 로마의 영웅 줄리어스 시이저 같은 위대한 영웅들의 시대였다. B.C 338년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는 그리스를 통일하고 이집트와 페르시아를 정벌했다. B.C 323년 알렉산더가 3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의 제국은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페르시아의 4개 영토로 분할됐다. 이스라엘은 알렉산더의 부하였던 프톨레미우스가 이집트에 세운 프톨레미우스왕조의 식민지가 됐고, B.C 198년 알렉산더의 부하 셀레우코스가 세운 메소포타미아 셀레우코스왕조의 통치를 받았다.

 

B.C 270년경 로마제국은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고, 100년 동안 계속되던 카르타고와의 포에니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지중해를 지배했다. 당시 로마제국은 세 명이 분할 통치하는 삼두정치’(폼페이, 크라수스, 케이사르) 체제였다. 이후 케이사르’(갈리아)폼페이’(지중해와 이집트)크라수스’(페르시아)를 모두 제압하고 로마제국의 유일한 통치자로 군림했다. 율리우스 케이사르가 바로 줄리어스 시저. 하지만 케이사르가 암살당하자 로마제국은 또다시 세 명의 실력자(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통치되는 2차 삼두정치체제로 이어졌다.

 

이들 가운데 케이사르의 후계자를 자처했던 옥타비아누스는 다른 세력을 제압하고 B.C 27년경 아우구스투스’(아구스도, 존엄한 자)로 추앙 받으며 로마제국의 첫 번째 황제 케이사르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로 등극했다. 그가 바로 누가복음에 기록된 가이사 아우구스도.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가이사는 팍스로마나(Pax Romana)로 불리는 로마제국의 전성기를 열었다. 가이사 시대에 로마제국의 속국, 분봉왕 헤롯이 통치하던 유대 땅의 베들레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다. 그 후 로마제국은 약 12명의 황제에 의한 통치됐고, 네로(A.D 53~68도미티안(A.D 70~91) 황제 때 기독교는 가장 극심한 박해를 당했다. A.D 311년경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했다.

 

인류는 주기적으로 변하는 달과 지구의 자전·공전을 관찰한 끝에 달을 중심으로 1년을 360일로 계산한 태음력 체계를 만들어냈다. 이집트 원정에서 이집트식 달력을 알게 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로 귀환하자 새로운 달력 체계를 만들었다. 새 달력은 그의 이름을 따 율리우스력이라 불리게 되고 상당한 정밀성을 가져 1000년 넘게 사용됐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 로마사회에서 부활절 기념일조차 열흘이나 오차가 발생했다는 건 불경스러운 일이었다.

 

A.D 525년 신학·수학·천문학에 능통한 연대사가(年代史家)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에는 그레고리우스 13세 교황이 명을 내려 저술한 부활제의 서()’에서 연대 표시 기준을 B.CA.D로 사용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이 이런 과정을 거처 만들어진 그레고리력이다. 한국은 1948년 정부 수립 후 단군기원(檀君紀元)을 사용하다가 196211일을 기해 서력기원(西曆紀元)으로 고쳐 쓰고 있다.

 

출처 : 금강일보(http://www.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