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표작품 ]

연자시편 - < 고산지의 신사물잠(新四勿箴) > - 한국문학신문 2021년 10월 6일 (제516호)

高 山 芝 2021. 10. 10. 18:38

< 고산지의 신사물잠(新四勿箴) >

 

(1)

공자(孔子)()’를 극복하고 ()’로 회복하는(克己復禮) 방법을 묻는 제자 안회(顔回)에게 ()에 맞지 많으면 보지 말고(非禮勿視), 예에 아니면 듣지 말며(非禮勿聽), 예에 아니면 말하지 않으며(非禮勿言), 예에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動)”고 말했다. ()나라의 학자 정이(程頤)는 유학의 덕목인 공자의 가르침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기초로 사물잠(四勿箴)을 지어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이란 바늘을 일컫는 것으로, 바늘 끝처럼 날카로움을 가지고 스스로 경계하라는 의미이다. 성리학을 표방한 조선의 사대부들은 선비들이 지녀야 할 몸가짐의 주요 덕목으로 사물잠(四勿箴)을 수행의 지침으로 삼았다.

 

< 신사물잠(新四勿箴) > - 시잠(視箴)

 

시잠(視箴)에 말하기를

비례물시(非禮勿視)

 

형체가 없으니

흔적도 남지 않은 마음은

시각에 따라 움직이네.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탐스럽기까지 한 욕망은

바라봄에서 시작되네.

 

탐심이 생기면

욕망이 눈을 가리네

 

극기복례(克己復禮)하기 위해

비례물시(非禮勿視)하면

 

참된 마음으로 장구함을 누리네 (졸시) -

 

'마음'이란 본래 텅 빈 것이라, 사물에 대한 감응의 흔적과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이러한 마음을 붙잡는 데는 요령이 있다. '보는 것'을 잘 가려서 보아야 한다. 눈앞에 보이는 사물은 곧바로 마음으로 전이된다. 보는 것을 제어할 수 있다면 항심을 유지할 수 있다. ()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 바로 보는 습관을 유지하는 사람은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 신사물잠(新四勿箴) > - 청잠(聽箴)

 

청잠(聽箴)에 말하기를

비례물청(非禮勿聽)이라

 

떳떳한 양심은 천성(天性)이지만

욕망과 유혹으로 올바름이 변질되네

 

백성의 소리, 역사의 소리

진리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세 개의 귀를 가진 현명한 사람

입을 열기 전에 귀부터 여네

 

말하기는 더디 하되 듣기를 속히 하여

간사한 마음을 절제로 이기며

 

()가 아니면 듣지 아니하니

천성(天性)이 보존되네 (졸시) -

 

사람들이 떳떳한 양심를 붙잡는 것은 타고난 본성(天性)에 뿌리를 둔 것이다. 그러나 사물을 알아차리고 그것에 유혹되면 사물에 의해 마음이 변질 되어 마침내 그 올바름을 잃어버리게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칠 줄을 알기 때문에, 예절이 아니면 듣지 아니함으로 사특한 것을 막아서 생명의 뿌리인 마음을 보존한다.

 

< 신사물잠(新四勿箴) > - 언잠(言箴)

 

언잠(言箴)에 말하기를

비례물언(非禮勿言)이라

 

마음의 변화는 말로 표현되니

()를 지키며 항심(恒心)을 유지하며

 

황당(荒唐)한 말과 경솔한 말을 멀리 하네

 

말 한마디에 전쟁이 일어나고

말 한마디로 천량 빚을 갚게 되네

 

길흉화복이 말에서 잉태되니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네

 

재앙(災殃)을 부르는 입과

자해(自害)하는 혀를 잘 관리하면

 

일신이 평안하네, 천수를 누리네 (졸시) -

 

사람들은 마음의 움직임을 ''이란 도구를 사용한다. 말을 할 때는 항심을 유지해야만 조급하고 망령된 말을 하지 않게 된다. 말은 모든 움직임의 시작이다. 길흉화복도 말에서 나온다. 말은 너무 쉽게 하면 허망해지며, 너무 번잡하게 하면 지루해진다. 오만해지면 사물이 내 뜻을 거스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말이 거슬리게 나가면 되돌아오는 말도 거슬리는 법이다.

 

< 신사물잠(新四勿箴) > - 동잠(動箴)

 

동잠(動箴)에 말하기를

비례물동(非禮勿動)이라

 

지혜로운 사람은

근신함으로 정성을 다 하고

 

뜻을 세운 사람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 하네

 

순리를 따르면 마음이 평안하나

욕망을 휩쓸리면 심신이 위태롭네

 

다급한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키는 자

 

()가 아니면 행동하지 않으니

행하는 모든 일 순탄하네. - (졸시) -

 

지혜로운 사람은 기미, 조짐, 낌새를 알기 위해 깨어서 정성을 다 하고, 뜻을 세운 사람은 행동함에 있어 최선을 다한다. 하늘의 뜻을 순종하면 늘 평안하고, 욕망을 따르면 늘 위태롭다. 항상 깨어서 근신하는 삶이 습관이 되면 제2의 천성이 되어 거룩한 삶을 살게 된다.

 

(2)

예수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활동했던 디다체 데 빤또하(스페인인. 중국명 방적아龐迪我) 선교사가 저술한 칠극(七極)은 천주교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18세기 후반 조선의 실학자들에게는 천주실의(天主實義)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서학 서적이었. 조선 선비 중에서 가장 먼저 이 책을 읽은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이 책의 취지가 유교의 극기(克己)와 같다고 평하면서 내용이 풍부하고 논리적인데다가 비유도 적절하여 유학자의 수양 공부에 도움을 준다고 성호사설(星湖僿說)에 기록하고 있다. 후에 이익의 제자들은 천주교의 교리를 강학하면서 유가의 수행지침인 사물잠(四勿箴)을 외우면서 칠극(七極)을 학습했다.

 

연구회는 10여 일이 걸렸다. 그동안 하늘, 세상, 인성 등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해결을 탐구했다. 예전 학자들의 의견을 모두 끌어내어 하나하나 토의했다. 그다음으로 성현들의 윤리서를 연구했다. 끝으로 서양 선교사들이 한문으로 지은 철학, 수학, 종교에 관한 책들을 검토하고 그 깊은 뜻을 해득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주의를 집중시켰다. (중략) 중국에서 들여온 과학 서적 중에는 종교의 초보적 개론서도 몇 가지 있었다. 그것은 하느님의 존재와 섭리, 영혼의 신령성과 불멸성 및 칠죄종을 그와 반대되는 덕행으로 극복함으로써 행실을 닦는 방법 따위를 다룬 책들이었다. (중략) 완전한 지식을 얻기에는 설명이 부족했지만, 읽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그들의 정신을 비추기에 넉넉하였다.”

- 다산의 조선복음전래사중에서

 

조선의 천주교는 천진암(天眞庵)과 주어사(走魚寺)에 모인 실학파 선비들의 강학회(연구회)를 통해 뿌리를 내렸다. 강학회는 옛 성현의 경전과 윤리서에 대한 토론을 거쳐, 서양 선교사들이 쓴 초보적 종교개론서를 학습했다. 이들은 천주실의(天主實義)를 통하여 하느님의 존재와 섭리를, 영언여작(靈言蠡勺)을 통하여 영혼의 신령성과 불멸성을, 칠극(七極)을 통하여 칠죄종(七罪宗)을 덕행으로 극복함으로써 행실을 닦는 방법을 공부했다. 세 권의 교리서를 열흘간 강학회의 교본으로 삼아 등불을 밝혀 놓고 학습한 이들은 배운 것을 실천했다. 이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엎드려 기도를 드렸다. 7일 중 하루는 하느님 공경에 온전히 바쳐야 한다는 것을 읽은 뒤로는 매월 7, 14, 21, 28일에는 다른 일은 모두 쉬고 묵상에 전념했다. 이 모든 것을 이들은 비밀리에 실천하였다. 다산 정약용은 녹암묘지명(鹿菴墓誌銘)과 선중씨묘지명(先仲氏墓誌銘)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선형(先兄) 정약전이 폐백을 들고 권철신 공을 스승으로 섬겼다. 예전 기해년(1779) 겨울에 천진암과 주어사에서 강학하였는데, 눈 속에 이벽이 한밤중에 도착해 등촉을 밝혀 경전을 담론하였다. 그로부터 7년 뒤에 비방이 생겨났으니, 이것은 이른바 성대한 자리는 두 번 갖기가 어렵다는 것이다.(先兄若銓, 執贄以事公. 昔在己亥冬, 講學于天眞菴走魚寺, 雪中李檗夜至, 張燭談經. 其後七年而謗生, 此所謂盛筵難再也.)” - 녹암묘지명(鹿菴墓誌銘) -

 

둘째 형님이 일찍이 겨울에 주어사에서 머물며 강학하였다. 모인 사람은 김원성(金源星), 권상학(權相學), 이총억(李寵億) 등 몇 사람이었다. 권철신이 직접 규정을 주어, 새벽에 일어나면 언 샘물을 움켜 세수하고 양치한 뒤 숙야잠(夙夜箴)을 외우고, 해가 뜨면 경재잠(敬齋箴)을 외우며, 정오에는 사물잠(四勿箴)을 외우고, 저물녘엔 서명(西銘)을 외우게 했다. 장엄하면서도 공경스러워 법도를 잃지 않았다. 이때 이승훈(李承薰) 또한 담금질해 연마하여 스스로 굳세어져서, 서쪽 교외에 나아가 향사례(鄕射禮)를 행하였다. 심유()를 빈()으로 삼았는데 모인 사람이 100여 명이었다.(嘗於冬月, 寓居走魚寺講學, 會者金源星權相學李寵億等數人. 鹿菴自授規程, 令晨起泉漱, 誦夙夜箴, 日出誦敬齋箴, 正午誦四勿箴, 日入誦西銘, 莊嚴恪恭, 不失規度. 當此時, 李承薰亦礪自, 就西郊行鄕射禮, 沈爲賓, 會者百餘人.)”

- 선중씨묘지명(先仲氏墓誌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