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자시편 - < 젤렌스키의 호소 > - 한국문학신문 4월 27일(제543)
< 젤렌스키의 호소 >
나치스 제거(de-Nazification)를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
바빈 아르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미사일로 공격해 파괴하였네
나치스와 전쟁으로
소련군으로 참전한 젤렌스키 조부 등
800만여 명이 사망한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파쇼 화 된 막시즘에 저항하네
탈 것 보다 탄약 달라고 절규하네
소련이 붕괴되자
자유를 갈망한 우크라이나
드라마 속 자유를 투표로 실현했네
극 중에서 부패를 비판하다
역사 교사에서 대통령이 된 배우를 선택했네
41세에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선출된 젤렌스키
관공서 사무실에 대통령 사진을 대신해서
자녀의 사진을 걸 것을 촉구했네.
그가 지금 우리를 향하여
폭력으로 침묵을 강요하는
우크라이나의 끔찍한 정적
시와 노래로 깨트려 달라고 호소하네
유대인 젤렌스키는 사이버 네트워크 및 컴퓨터 하드웨어학과 교수인 아버지와 엔지니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문법학교에 입학하기 이전에 4년 동안 아버지가 일하던 몽골 에르데네트에 거주했다. 키예프 국립 경제 대학교 크리비리흐 캠퍼스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법률가로 활동하지는 않았다. “친구에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 사람이 친구에게 우유를 건네는 사람보다 낫다”는 탈무드 교훈을 받고 자라난 그는 어려서부터 밝고 긍정적인 기운으로 남을 웃기는 재주가 탁월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TV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한 젤렌스키는 1997년 코미디 경연 대회에서 우승하며 주목받는 코미디언이 되었다. 그는 19세에 ‘크바르탈 95′라는 연예 기획사를 설립해 자신이 주연을 맡아 사회 풍자 드라마와 영화를 여러 편 제작했다. 젤렌스키는 일과 공부도 병행해 명문 키이우(키예프) 국립경제대학에서 경제학 학사와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에는 댄스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2015년부터 방영된 ‘국민의 종’이라는 51부 작 대하드라마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이 드라마는 부패한 우크라이나 사회를 풍자적으로 비판했다. 제작자 겸 주연인 젤렌스키는 드라마에서 고등학교 역사 교사 역할을 맡아 학생들 앞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를 성토했다. 이 장면을 한 학생이 몰래 촬영해 온라인에 올리는 바람에 역사 교사는 국민에게 큰 인기를 얻게 되고,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된 그가 부패 정치인들을 몰아낸다는 게 드라마 줄거리다. 시청자 수가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20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젤렌스키는 ‘국민의 종’ 출연진과 함께 같은 이름의 정당을 2018년 창당해 대권 주자로 부상했다.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높아, 젤렌스키는 새로운 인물이라는 점을 어필하여 현직 대통령을 3배 가까운 차이로 꺾으며 당선되었다. TV 드라마가 현실이 된 것이다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가지며, 돈바스 전쟁에 대한 문제를 의논했다. 독일을 방문해 메르켈 총리와 러시아-독일을 잇는 가스관 문제 등을 논의했다. 이후 유엔 총회에 참석하는 길에 트럼프와도 만났다. 올해 초부터 러시아가 18만 대군을 동원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는 예측이 쏟아지자 그는 서방에 도움을 요청했다. 2월 19일 뮌헨에서 열린 안보회의에 참석해 러시아와 맞서온 우크라이나의 희생, 유럽과 나토(NATO)의 이기적 태도를 비판하며 유럽 안보 구조의 재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대한 서방의 대응이 부족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난해 뉴욕타임스(NYT)는 코미디언 출신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옛 동료들을 중용하여 측근 정치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우크라이나 정치는 마치 코미디 호러 드라마 같다며, 전문가가 없는 정부, 외교관 없는 외교부, 장군 없는 군 지휘부가 언제 붕괴할지 모른다고 전했다. 그러나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그가 한 결연한 행동을 본 외국 언론들은 태도가 일변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러시아의 암살 위협에도 수도에 남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북돋웠다. 찰리 채플린이 처칠로 변모했다. 어떤 의미에서 샤를 드골보다 용감하다. 전쟁 지도자로서 처칠과 동급이다”라고 극찬했다. 또 “일주일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계의 민주주의 국가들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암살 위협을 받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보호하고자 망명을 제안했으나 젤렌스키는 “여기가 (내) 싸움터다. 나는 (도피용) 탈것이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며 거절했다. 타임은 러시아군이 키이우 코앞까지 쳐들어왔음에도 도피하지 않고 수도를 지킨 그의 자세가 “역사의 흐름을 바꾼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