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표작품 ]

연자시편 - < 비녀 > - 한국문학신문 7월 27일(제555)

高 山 芝 2022. 8. 5. 19:35

< 비녀 >

 

머리를 빗고

틀어 올리네

 

쪽 찐 머리

풀어지지 않도록 꽂네.

 

쪽을 가로지른 긴 비녀

상투에 꽂은 짧은 비녀

 

천명(天命)

저울질하는 천칭(天秤)이네

 

갓을 쓰고

족두리 드리우네

 

()과 정의(正義) 구현하네

 

관례(冠禮)는 남자의 성인식이고, 계례(笄禮)는 여자의 성인식이다. 남자는 ''을 쓰고, 여자는 '족두리'를 쓰는 것으로 성인식을 치른다. '은 얼나(참나)가 깃든 머리를 감싸는 도구이자 성인들이 쓴다. ''은 상투를 감싸고 있는 '가시'를 의미한다. 갓을 쓰고 있다는 것은 얼나(참나)가 가시에 감싸여 있음을 상징한다. 갓 은 가시 의 준말이다. '족두리'''''이고, 쪽의 짝은 상투이다. '두리''두른 이'의 준말로, 족두리는 상투를 두른 것을 의미한다.

 

비녀는 상투에도 필요하고, 쪽에도 필요하다. 상투의 비녀는 조그마한 짧은 비녀이고, 쪽의 비녀는 크고 긴 비녀이다. 단순히 머리를 여미는 기능만이라면, 굳이 긴 비녀는 불필요한 것이다. 여성의 긴 비녀는 '계례(筓禮)'가 유래되었다. 비녀 계() 자는 대 죽() 자와 평평할 견() 자의 합성문자이다. () 자는 두 개의 장대를 나란히 세워 위가 평평하게 한다는 뜻으로 평평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 자는 비녀를 대나무로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이고 을 나타내기 위한 비유로도 볼 수 있다. 이는 비녀가 쪽을 바로 잡는 역할도 있지만, 저울의 역할도 있었음을 상징한다. 비녀를 천칭(天秤)으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녀가 저울을 상징한다면, ''이나 족두리는 천명(天命)을 담는 천칭(天秤)의 접시를 상징한다. 이는 비녀는 음()인 여성이 천명을 받들어 양()인 남성을 가리고(골라내고) 가도어(가두어 잉태하고) 가꾸는(기르는) 저울의 역할과 같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양에서도 정의와 저울의 신은 여성이다.

 

서양의 황궁 12궁 별자리 중에 천칭자리는 아스트라이아의 별자리이다. 제우스와 율법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 등과 자매 사이다. 혹자는 호라이 중 하나인 정의의 여신 디케와 아스트라이아를 동일인물로 보기도 한다. 이 경우 별 처녀라는 의미의 아스트라이아는 디케의 별명으로 볼 수 있다.

 

기원전 7세기 경 그리스의 서사시인 헤시오도스는 인간 종족을 시대 순으로 황금 종족, 은 종족, 청동 종족, 영웅 종족, 철의 종족 등 다섯 가지로 구분하였다. 황금(黃金)의 시대는 크로노스(혹은 사투르누스)가 다스리는 시기로, 인간들은 전쟁이나 처벌의 고통을 모른 채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누렸다. 대지는 경작하지 않아도 사시사철 먹을 것을 내어주었고, 인간들은 신들처럼 생활하다 멸망했다. ()의 시대는 크로노스가 타르타로스에 유배되고 제우스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도래하였다. 계절이 나뉘어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이 생겨나면서 인간들은 집을 지어 들어가서 살았다. 대지에 씨앗을 뿌려 경작해야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었지만 신에 대한 불경죄로 이들이 멸망하자, 제우스가 물푸레나무에서 청동(靑銅)의 종족을 만든다. 물푸레나무는 고대 그리스에서 주로 창의 자루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청동 종족의 성격을 암시하고도 남는다. 그들은 청동으로 농기구뿐만 아니라 무기도 만들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제우스는 이들을 홍수로 멸한 후, 영웅의 종족을 만든다. 영웅들은 청동의 종족보다는 고상하고 정의로웠지만 청동의 종족 못지않게 폭력을 휘두르다가 결국 멸망한다. 트로이 전쟁도 영웅의 시대에 일어났다. 영웅들이 모두 사라지자 제우스는 최악의 종족인 철()의 종족을 만들어 낸다. ()의 시대 세상은 온갖 불법이 횡횡하고 계략과 음모, 폭력과 저주 받을 탐욕이 판을 쳤다. 사람들은 오직 황금만을 탐하였고, 가족과 친구도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들은 추악한 지상을 외면하고 모두 올림포스 산으로 떠나버렸다.

 

하늘의 신들 중 제일 끝까지 지상에 머물며 정의(正義)를 호소한 아스트라이아는 재앙이 계속되자 탐욕과 살육의 피에 젖은 지상을 떠나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되었다. 그녀는 처녀자리가 되었고 그녀의 손에 들고 있던 저울은 저울자리(천칭자리)가 되었다. 언젠가는 예전의 찬란한 황금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이며, 그때가 되면 아스트라이아는 황금시대를 알리는 전령으로 제일 먼저 지상에 모습을 나타낼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는 전원시 4 목가에서 황금시대와 더불어 처녀 신 아스트라이아가 다시 지상으로 돌아오기를 노래하였다. 베르길리우스가 황금시대와 함께 재림 소망한 처녀 신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비슷한 이야기는 엘리자베스 1세 치하의 영국에서도 일어났다. 황금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처녀 신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고 황금시대는 그녀 치세의 영국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