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제에 의해 파괴된 비각을 모아 보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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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치 : 충남 금산군 금성면 양전리 산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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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 금산군청 www.geumsan.go.kr
연 락 처 : 금산군청 문화공보관광과 041-750-2391
개 요 : (문화재자료 제28호)
임진왜란 때 금산에 주둔한 왜적을 유인하여 금성면 파초리 눈벌싸움에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제봉 고경명 선생의 순절비이다. 전라도 출신의 의병장인 고경명의 순절비가 여기
에 세워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
<1940년 일본경찰의 만행으로 비가 파괴된 것을 한식비각안에 정리하여 2002년에 복원하였고
1962년 후손들이 여필문의 비문을 다시 새겨 그 비를 1962년에 새워진 석조비각안에 보존하였다.>
본래 고경명선생은 고향인 장흥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더욱이 임금인 선조가 파천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격분함을 참지 못한 선생은, 큰 아들 종후와 여주인 김천일, 담양부학유 유팽
노 등을 찾아 상의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그 후 금산의 왜적을 향하여 적정을 수색하는 한
편, 충청 의병장 조헌에게 서신을 보내서 같이 평강을 건너 금산의 왜적을 칠 것을 약속하
였다. |
| 후손들이 비각의 비문을 다시 새겨 보존하고 있다. |
이 때 진산에 이르자, 왜병이 전주로 진군
하려고 진산에 오는것을 맞아 접전끝에 왜
적을 물리쳤다.이에 왜군은 서서히 후퇴하
여 금산성으로 돌아가 수세를 취하였다.
임진년 7월 9일 새벽에 작전계획을 세우고
곽영의 군은 북문을 담당하여 공격하고 고
경명 군은 서문을 담당하여 공격하였다.북
문에서 승리한 왜군이 후방에서 고경명 군
을 공격하니, 앞 뒤로 적을 대항해 싸우게
된 고경명군은 후방의 왜군을 쫓아 눈벌에
서 왜군에 포위당하고, 전군이 순절하였다.
고경명 군의 거병 보고를들은 선조는 공조
참의라는 관직을 하사하고 초토사라는 겸
관을 전지하였으며,순절한 소식을 듣고 애
통하게 생각하여 사우를 광주에 세워 액호
를m 포충사라 하고 배향케 한 다음 금산의
종용사에도 배향케하여 그 충의를 기억하
도록했다.
조선 17대 효종 27년에 당시 군수 여필관
이 순절비를 세운 것을 일제 때 없애 버렸
으나,해방후 후손들이 다시 세우고 1964년
비각을 건립했다.
교통안내 : (자 가 용) + 경부고속도로 -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 금산IC
+ 호남고속도로 - 대전 남부순환 고속국도 - 대전-통영간 고속국도 - 금산IC
(대중교통) + 서울강남터미널 - 금산(06:30∼18:30, 1시간 30분간격, 2시간 40분 소요)
+ 대전 - 금산(06:00∼22:00, 수시운행, 동부터미널에서 50분 소요)
현지교통 : 금산에서 금성 방면 시내버스 수시운행
현지숙박 :
먹을거리 : 금성면 주변에 한우고기, 삼계탕, 인삼한정식
특 산 품 : 인삼, 약초
정보제공자 : 금산군청 문화공보관광과 (041-750-2419, matthewechae@hanmir.com) | 작성기준일 2006년 06월2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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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사정에 따라 정보가 변경될 수 있으므로 필요한 사항을 사전에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1952년에 일제에의해 훼손된 것을 군민의 성금을 모아 복원된 종용사
출처 : 창평 유천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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