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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지 팀의 앙코르 여행기 - 48 * 롤루오스 유적군 (Roluos)

高 山 芝 2013. 12. 2. 22:26

    롤루오스 유적군 (Roluos)                            지도 위치보기


위치 & 명칭  : 롤루오스는 시엠립 시내에서 프놈펜 방향으로 12km에 위치한 마을이다. 롤루오스는 초기 크메르 왕국의 도읍지였던 하리하랄라야(Hariharalaya)가 섰던 곳으로 당시의 건립된 수많은 유적군이 있으며 그 대표적인 사원 세 군데가 바콩, 프레아 코, 롤레이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롤루오스 유적군이란 이 세군데를 지칭한다.

 
롤루오스의 통치자들 : 서기 802년 첸라국의 왕자인 자야바르만 2세는 프놈 꿀렌(꿀렌산)에서 신성 왕으로서 선서와 함께 크메르 왕조의 문을 연 시조이다. 그는 절대적인 쉬바신 신봉자로서 곳곳에 쉬바 신전을 지어 종교를 통치의 기반으로 삼아 훌륭히 새왕조를 이끌었으나 충분한 농경지 확보가 어려워 새 도읍지를 물색하던 중 롤루스 강을 따라 드넓은 경작지를 가진 이곳을 선택하여 새수도를 지어 천도했다.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이유로 그의 치세에 최소한 3번 이상의 천도가 거듭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며 이곳은 그의 치세에 마지막 도읍지로서 그는 850년에 이곳에서 사망했다.

주)하리하랄라야란 지명은 두 명의 힌두교 주신의 합체인 하리하라(Hari-hara)에서 유래되었다. 하리는 우주 질서 유지의 신인 비쉬누를, 하라는 파괴의 신 쉬바를 뜻하며 비쉬누는 머리에 관을 쓴 모습으로 쉬바는 땋은 머리 모양을 한 채 함께 한다. 즉 쉬바 신과 비쉬누 신을 함께 모시는 성스런 수도이다.

3대 왕인 인드라바르만 1세는 강물 만으로 농업을 원활히 통제하지 못함을 인식하여 롤루오스 강물을 끌어들어 인공적으로 거대한 인드라타타카 바라이(Indratataka Baray, 저수지)를 축조하고 최초로 성소를 가진 신전 프레아 꼬(서기 879년)와 바콩(서기 881년)을 건립하여 하리하랄라야 시대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 후계자인 야소바르만 1세는 부왕이 축조한 바라이 가운데에 롤레이 신전을 건립하여 오늘날 롤루오스 3대 신전이 형성된다. 따라서 이 롤루오스 유적군은 초기 크메르 왕국의 4대왕이 표명하던, 힌두
신전으로 그 구조나 디자인이 서로 흡사하여 프레아 코 스타일의 신전 양식이란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야소바르만 1세는 905년 롤루오스를 버리고 프놈 바켕에 새 도읍지를 지어 천도함으로서 롤루오스 시대는 겨우 70년 도읍지로서의 생명을 마감한다.

롤루오스 건축 양식 : 프레아 코 양식으로 대표되는 롤루오스 건축의 특징은, 정사각형 기단 위에 탑을 높게 세우면서 8각형으로 모양새를 낸다는 것, 장서각(실제로 책을 보관하는 곳이 아닌 설화의 내용을 부조로 새겨 열람케 하는 형태)을 설치 및 대칭적으로 두 개씩 나란히 넣는다는 것, 고푸라 탑문을 세울 때 4방향으로 출입문을 내면서 항상 인간의 출입은 동편으로 정하고 나머지 3방향의 문은 가짜문(벽에다 문처럼 형상만 그린) 형식으로 짓는다는 것 그리고 문의 상인방에 부조를 새겨 장식한다는 것 등이다. 부조는 대체적으로 가루다(독수리)를 탄 비쉬누 신이나 깔라(귀면상), 압사라(천녀), 수문장 등이며 기둥도 탑과 마찬가지로 8각으로 모양을 내면서 아주 섬세한 나뭇잎 고리 문양으로 멋을 내었다. 학자들의 소견에 의하면 상인방의 부조로는 롤루우스 유적군의 것이 크메르 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것으로 칭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