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내 마음에 관정(管井)을 심어놓고
작두펌프 설치하여 펌프질을 하라 하네


펌프질을 할 때마다 심층수가 올라오고
펌프질을 할 때마다 사랑이 솟아나네


퍼내어도 줄지 않는 상선약수(上善藥水) 아니던가
나눌수록 넘쳐 나는 화수분이 여기 있네


당신은 날 더러
나누라네, 전하라네

 

목마른 사람에게 육각수를 나눠주고
메마른 이웃에게 복된 소식 전하라네


당신이 떠나가자 나른함이 찾아 왔고
나른한 맘 나태해져 편리함만 추구했네

 

편하고 싶어 하니 펌프질은 하기 싫고
이윤을 생각하니 나눠주긴 더욱 싫네


 

잊혀져간 작두펌프

녹이 슬어 멈춰섰네

 

햇볕을 너무 받아 마음밭이 갈라지고
갈기갈기 찢겨져 살이 트고 피 흐른 날.


 

당신은 찾아 와서 나의 두 손 붙들고서
펌프 자루 잡으라네, 펌프질을 하라 하네


겉도는 펌프질에 맥이 빠진 나를 위해
마중물로 오신 당신, 마중물이 되어 주네


 

펌프질을 시작하니 사랑이 넘쳐흘러
찢긴 맘 치유되고 나의 영혼 살아나네


당신은 날 더러
나누라네, 전하라네


 

목마른 사람에게 육각수를 나눠주고
메마른 이웃에게 복된 소식 전하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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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절 예(禮)라는 글자는 국어사전에 ‘사람이 지켜야 할 마지막 도리’라고 설명돼 있지만 ‘자신의 넉넉함을 보여주면서 그 넉넉함 속에서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를 지키는 행위’가 예라는 생각을 해본다. 일찍이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으로 불리었던 조선에 주자학(朱子學)이 들어온 것은 고려 말엽이다. 삼강오륜(三綱五輪) 등으로 지칭된 유교 가치관은 조선 지배계층의 통치윤리로 자리잡고, 600여 년을 흘러오는 동안 우리 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1980년대 필자와 함께 맥심부락(麥心部落)을 이끌던 박재화 시인. 그는 취기가 오르면 본인이 이 시대 남은 마지막 유생(儒生)이라고 호기를 부렸다. 이렇듯 우리네 정서의 끝자락에 남아있는 ‘버릇없는(?)’ 현상에 대한 껄끄러움이 예라는 말로, 율법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찾아와 자신의 넉넉함을 보여주면서 지켜야 할 마지막 도리를 지키라고 속삭이지만 그 도리보다 진한 감정이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다.

설렘과 반가움이 어우러진 감정이 바로 그것이다. ‘마중’이라는 우리말에는 설렘과 반가움이 녹아있다. 귀한 손님일수록 마중이란 말에 녹아있는 설렘과 반가움의 농도는 짙어진다. 전기 사정이 여의치 않고 상수도가 일반화되기 전인 1960년대 대부분의 가정에선 우물물을 식수로 사용했다.

깊은 우물물은 두레박으로 퍼올리고 얕은 샘물은 바가지로 떴던 어린 날의 기억을 떠올리다가 문득 큰집에 있던 작두펌프가 생각났다. 우물과 샘으로는 식수를 감당할 수 없어 발명해낸 문명의 이기가 바로 작두펌프다. 공압의 원리를 이용해 지하에 관정을 묻고 심층수를 끌어올리는 이 수동식 펌프도 패킹이 낡았거나 오래 사용하지 않으면 공기의 압이 빠져 지하수를 끌어올릴 수 없다. 이때 붓는 한 바가지의 물이 바로 마중물이다. 아무리 많은 양의 물이 지하에 저장돼 있다 해도 마중하는 한 바가지의 물이 없다면 퍼올릴 수 없다.

표피수는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도 의미있는 가치임에 틀림없지만 엄청난 양의 심층수가 내재된 영혼의 가치를 모르고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눈이 먼 사람들은 오늘도 목이 마르다며 저자거리를 방황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숨겨진 보물을 끌어내 합력해 선을 만들어가는 마중물로 오신 그분의 사랑이 더욱 절실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고산지
시 인

 

금강일보 2013년11월28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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