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문기행

서성 왕희지 - 출처 : 중국상하오천년사

高 山 芝 2015. 7. 2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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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시대에 왕씨 가문은 ‘왕씨와 사마씨가 함께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굉장히 고귀한 가문이었다. 이 왕씨네 가문에서 유명한 서예가 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왕희지()이다.

왕희지

왕희지 왕희지(321~379년 또는 303~361년)의 자는 일소()이다. 오랫동안 회계 산음현에서 살았으며, 관직이 우군장군() 및 회계() 내사()에 이르러 사람들이 ‘왕우군()’이라고 불렀다. 중국 서법사에서 가장 위대한 서예가로 손꼽히며 ‘서성()’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왕희지는 어려서부터 서예를 즐겨했으며, 일곱 살 때부터 붓글씨를 익히기 시작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길을 걸어갈 때나 앉아서 쉴 때나 언제나 손가락으로 붓글씨를 쓰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글자체의 구조와 필법을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면서 손가락으로 옷에다가 한 획 한 획 그려보곤 했는데 나중에는 옷이 닳아서 구멍이 났다고 한다. 그리고 매번 붓글씨 연습을 끝낸 후에 붓과 벼루를 집 앞에 있는 못에서 씻곤 했는데 나중에는 그 못물이 다 검어졌다고 한다. 왕희지는 매일 서재에서 붓글씨 연습에 골몰했으며, 끼니때가 되어도 붓을 놓을 줄 몰랐다. 하루는 부인이 그가 좋아하는 마늘과 떡을 가져왔는데,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붓글씨만 쓰고 있었다. 부인은 음식을 탁상 위에 올려놓고 서재를 나갔다.

얼마 후에 다시 서재로 가보니, 왕희지는 입 언저리가 온통 새까맸으며, 손에는 먹물이 잔뜩 묻은 떡을 쥐고 있었다. 그것을 본 부인은 허리가 아프도록 웃었다고 한다. 동진의 고귀한 사족 가문에서 태어난 왕희지는 벼슬하려는 마음만 있었다면 아주 높은 벼슬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왕희지는 벼슬이 싫었다. 그는 자유로운 생활이 좋았다. 나중에 절친한 사이인 양주 자사 은호()가 하도 권하는 바람에 회계 내사라는 벼슬을 했지만, 그것도 회계라는 곳의 아름다운 산천을 구경하기 위해서이지 벼슬이 좋아서는 아니었다.

왕희지는 사안(), 손작() 등의 이름난 문인 40여 명과 함께 회계 산음현(절강 소흥현)의 난정에서 연회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난정에서 읊은 시 40여 수를 문인들이 엮어 『난정집()』을 만들었다. 왕희지도 주흥에 겨워 이 시집에 일필휘지로 서문을 썼는데, 그 서문이 바로 「난정집서()」이다. 이 서문은 모두 28행 324자인데 그 글 솜씨가 세상에 둘도 없어서, 지금까지 중국 서예의 최고 진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난정초사(蘭亭草舍)

난정초사() 절강성 소흥현 서남쪽에 있다.

왕희지의 「난정집서」

왕희지의 「난정집서」

왕희지의 「우후(雨後)」

왕희지의 「우후()」

장기간의 고심한 노력으로 완성된 왕희지의 서예는 당시 중국 서법의 정상에 이르렀다. 그가 쓴 붓글씨를 가지는 사람들은 마치 금은보화를 가진 것처럼 기뻐했다. 산음에 있는 어느 도사는 왕희지의 서법을 대단히 좋아해서 그에게 『도덕경()』을 써 달라는 청탁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왕희지가 경서를 베끼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말을 감히 입밖에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왕희지가 흰 거위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 왕희지는 붓글씨를 더욱 생동하고 힘차게 표현하기 위해 늘 거위가 물에서 헤엄치는 모양을 본떠서 손목을 단련했다. 그래서 도사는 새끼 거위들을 사서 정성을 다해 기르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자 새끼 거위들은 백설같이 아름다운 거위로 자라났다. 도사는 거위들을 왕희지가 늘 지나다니는 길목에다 가져다 놓았다.

그곳을 지나가던 왕희지는 깃털이 눈같이 희고 자태가 고운 거위들을 보고는 너무나도 욕심이 나서 그 거위를 자기에게 팔라고 도사에게 사정했다. 그러자 도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거위들은 원래 팔지 않는 것인데, 선생님께서 저의 소원대로 『도덕경』 한 책을 필사해 주신다면 선물로 드릴 수는 있습니다.” 왕희지는 두말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응낙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도덕경』을 필사해 주고는 그 거위들을 품에 안고 가던 길을 갔다.

거위를 좋아하는 왕희지 [청나라 임이]

거위를 좋아하는 왕희지 [청나라 임이] 동진의 걸출한 서예가 왕희지는 거위가 물에서 헤엄치는 자세를 관찰하면서 필법의 묘를 깨우쳤기 때문에 거위를 좋아했다. 이 그림은 왕희지가 어느 도사의 거위를 가지기 위해 『도덕경』을 필사해 준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다리 아래의 대나무 잎이 살랑거리는 물에서 흰 거위 두 마리가 놀고 있는데, 난간에 서 있는 왕희지는 거위 구경에 정신이 팔려 부채는 그냥 쥐고만 있다. 곁에 있는 동자도 거위 구경에 여념이 없다.

거위를 좋아하는 그림이 그려진 백보 자단 필통

거위를 좋아하는 그림이 그려진 백보 자단 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