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일보 칼럼 - [고산지의 戀子隨筆] - 승인 2018.05.08 08:21
< 패랭이 꽃 > - 고 산 지
두려움이었네 차거움이었네
밤이면 찾아오는 어둠의 악령
마을사람 시달리자 패랭이 쓴 장사
악령을 퇴치코자 활을 들고 나섰네
장사가 쏜 화살 바위에 꽂혔네
어둠이 사라지고 악령이 달아나자
돌에 박힌 화살대 순 돋아 꽃이 피네
들뜬 지열 감당 못한 패랭이꽃
상모를 돌리네 흥겹게 춤을 추네
상품을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하는 봇짐장수 보상(褓商)과 상품을 지게에 얹어 등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판매하던 등짐장수 부상(負商)을 합해 보부상이라 부른다. 천민 출신인 이들이 주로 쓰고 다닌 모자 평랑자(平凉子)가 바로 ‘패랭이’다. 보상은 정밀한 세공품이나 값비싼 사치품 등을 판매했고, 부상은 주로 일용 잡화를 취급했다. 이들은 대개 하루에 왕복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표준삼아 시장을 돌면서 각지의 물화(物貨)를 유통시켰다. 부상단(負商團)이 조직된 건 조선 초로, 이성계(李成桂)가 조선 개국에 공헌했기 때문에 그 조직을 허용했다는 설과 상류계층과 무뢰한의 탐욕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했다는 설 등이 있다, 보상이 전국적 조직을 갖게 된 건 1879년(고종 19) 발표된 ‘한성부완문(漢城府完文)’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전부터 지역적으로 각기 정해진 규율과 두령인 접장(接長)이 군료(群僚)를 통솔해 왔으며, 산재한 조직을 전국적인 상단(商團)으로 묶어 소규모 자본의 행상을 규합했음을 알 수 있다. 보상단은 동료간의 결속을 다지고 무뢰한과 아전들에 의한 폐해를 금함으로써 상권 확립을 기했다. 한성부에서 8도의 도접장(都接長)을 차출하면 일종의 신분증인 도서(圖書)를 발급해 보상의 신분을 보장했다. 부상과 보상은 각각 별개의 행상조합으로 성장했으나, 1883년 혜상공국(惠商公局)을 설치해 이들을 관장했다. 1885년에는 다시 상리국(商理局)으로 개칭하는 동시에 부상을 좌단(左團), 보상을 우단(右團)으로 구별했지만, 역원(役員)만은 상리국에 통합해 단일화시켰다. 이 같은 정부에 의한 보호와 관리가 시작된 것은 보부상이 강대한 조직체로 발전하면 정치적으로 활용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부상 조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투표에 의해 임원 선거를 했다는 것과 안건을 심의하기 위해 정기적인 총회를 개최했다는 사실이다. 현존하는 충남의 저산팔읍(苧産八邑, 부여·정산·홍산·임천·한산·비인·남포·서천 등 모시를 생산하는 8개 읍)의 보부상단 가운데 보상회인 상무사우사(商務社右社)의 경우 정기총회를 중점(中點) 또는 공사(公事)라고 하는데, 매년 음력 3월 3일부터 수일간 개최하며 모든 회원은 회의에 참석할 의무가 있다. 총회의 회의장은 일정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안건은 임원 선거였다. 보부상은 국가의 일정한 보호를 받는 대신 유사시 국가에 동원돼 정치적 활동을 수행해 온 역사를 갖고 있다. 행주산성전투(임진왜란)에는 수천 명의 부상들이 동원돼 식량과 무기를 운반·보급하고, 직접 전투에도 가담해 왜군을 물리치는 데 공헌했다. 병자호란 당시에는 남한산성에 행행(幸行) 인조와 함께 부상들은 식량을 운반하고 성을 방어했다. 전쟁이 끝난 뒤 부상들에게 벼슬을 주려 했으나 사양하자 인조는 어염·목기·수철 등 다섯 가지 물건에 대한 전매권을 줬다. 정조가 수원성을 축조할 때 삼남도접장(三南都接長)이던 김곽산(金郭山)은 부상을 징발, 석재와 목재를 운반해 다듬고 철기를 제련해 장안문(長安門)을 만들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도 전국의 보부상이 동원돼 문수산전투(文殊山戰鬪)와 정족산전투(鼎足山戰鬪)에서 프랑스군을 무찔렀다.
패랭이꽃은 천민들이 주로 썼던 패랭이 모자를 닮았다. 옛날 어느 마을에 용감하고 힘이 센 장사가 살고 있었다. 장사는 밤만 되면 악령이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악령을 죽이기 위해 산에 올라가 기다리던 장사는 악령이 나타나자 화살을 쐈다. 깜짝 놀란 악령은 달아나고, 화살은 바위에 박혀 빼낼 수가 없었다. 봄이 되자 돌에 박힌 장사의 화살에서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는 예쁜 꽃이 피어났다. 대나무와 비슷하다고 해 ‘석죽화’라고 불렀던 꽃이 바로 패랭이꽃이다. 봉건왕조시대에 투표로 임원 선거를 하고, 안건을 심의하기 위해 정기총회를 개최하며 자생적 민주주의를 실행했던 보부상이 즐겨?던 패랭이꽃에는 서민의 애환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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