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 >
상처 입은 치유자 예수님 뿐이네
세상사람 자기 의(義)를 드러내며
상처 입은 치유자라 말하고 있지만
상처 입은 치유자 예수님 뿐이네
치유 받은 은혜에 감동된 사람들
받은 은혜 앞세워 공감을 끌어내면
공감 속에 역사하는 치료하는 여호와
상처를 꿰매고 치유를 시작하네
상처 입은 치유자 예수님 뿐이네
세상사람 자기 의(義)를 드러내며
상처 입은 치유자라 말들 하지만
상처 입은 치유자 예수님 뿐이네
(1) 헨리 나우웬
세계적인 영성학자 헨리 나우웬은 1932년 암스테르담에서 동남쪽으로 약 45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도시 나이케르크에서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57년 예수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으며 6년 간 심리학을 공부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2년 간 신학과 심리학을 통합하여 연구하고, 30대에 노틀담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1971년부터는 예일 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풍요를 누리는 자신과 헐벗고 괴로워하는 다른 이들의 아픔과 굶주림이 마음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사랑의 하나님, 선한 일과 축복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이 불평등의 이유는 무엇입니까?'라는 생각이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자로서 부담감을 안고 1981년 강단을 떠났다. 페루의 빈민가에서 민중들과 함께하는 삶을 시작했다. 자신의 풍요로움에 대한 죄책감과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이었다. 후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하버드대학에서 강의했지만 그곳에서도 안식을 느끼지 못한 그는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정신지체장애인 공동체 라르쉬의 캐나다 토론토 공동체인 데이브레이크에서 1996년 9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했다.
정신지체아들과 육신이 불편한 자들을 섬기면서, 그 어느 곳에서 보다 큰 안식을 누리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다 하나님의 품에 안긴 헨리 나우엔은 그의 깊은 통찰력과 해박한 지식, 실제 경험에서 나온 비전과 해결방안이 담긴 「상처 입은 치유자」를 저술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주었다. 「상처 입은 치유자」 란 예수님이 창에 찔리고 피 흘리며 신음하면서도 그 몸으로 오히려 우리를 치유하고 구원한 은혜를 표현한 단어이다.
(2) 엘제아르 부피에
장 지오노가 쓴 작은 책 <나무를 심은 사람>은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이다. ‘프로방스’는 프랑스 남동부의 옛 지방 이름이며 론강 하류에서 알프스산맥에 이르는 지역으로, 카마르그 지방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산악지대이다. 지금은 환상의 숲을 형성하여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가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 되었지만, 1913년의 프로방스는 사람이 별로 살지 않았고, 바위로 뒤덮인 황무지의 땅이었다.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늙고 외로운 양치기로 묘사되는 부피에는 사실 노인이 아니라 실제는 쉰다섯 살의 남자였다. 가족들과 농장을 일구며 살던 부피에는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아내마저 얼마 안 가 세상을 떠났다. 가족 모두와 사별하고 홀로 남게 된 그는 아들과 아내에 대한 기억에 사무친 그 마을을 떠나서 프로방스의 산악지대 언덕배기의 버려진 오두막에서 양을 치면서 살고 있었다.
장 지오노(첫만남:20대)가 보기에는 죽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는 것 같은 쓸모없는 늙은이 ‘엘제아르 부피에’. 그는 52세부터 80세가 훨씬 넘을 때까지 3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서 황량한 산간에 끊임없이 나무를 심어 메마르고 황량한 프로방스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두 차례의 큰 전쟁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무 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심은 씨앗 중에서 약 20%미만의 싹이 나고 그 중 절반도 못 미칠 정도만 자란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무 심기를 쉬지 않았다.
"양치기는 작은 자루를 가지고 와서 그 안에 든 도토리 한 무더기를 탁자 위에 쏟았다. 그는 도토리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로 골랐다. 그리고 굵고 실한 도토리들을 한곳에 모으더니 다시 열 개씩 세어서 한 무더기로 나눴다. 그러면서 도토리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그중에서 작거나 금이 간 것들을 다시 골라냈다. 그렇게 해서 완벽한 상태의 도토리가 열 무더기 모아졌을 때에야 비로소 그는 일손을 멈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는 혼자서 황량하고 메마른 불모지에 3년 동안 매일 도토리 100개를 심었다. 100개를 심으면 20개가 싹이 나고, 그 중 10개만 자랐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3년 동안 꾸준히 10만개의 도토리를 심었다. 그중 2만 개는 싹이 나서 자랐고, 자라면서 또 반이 죽어서 결국 1만개의 큰 떡갈나무가 되었다. 숲이 만들어지면서 말랐던 개울은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1913년 당시 세 사람만이 살던 프로방스는 숲이 만들어지자 1만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왔다. 자신의 상처를 나무를 심음으로 치유 받은 부피에는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가 아니고 치유 받은 치유자(Healded Healer) 임에 틀림이 없다.
(3) 앤 설리번과 헬렌 켈러
1866년 매사추세츠 주 피딩힐스에서 태어난 앤 설리번(Anne Sullivan)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다. 여덟 살의 설리번은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사망하자 친척들은 건강한 그녀의 여동생만 돌보기로 하고 설리번과 남동생은 매사추세츠 주립 병원에 맡겨졌다. 설리번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결핵에 걸린 남동생 지미를 간호하며 보냈다. 의지하던 동생마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자 자살을 시도하고 정신이 이상해져 짐승처럼 괴성을 지르며 공격적으로 변했다. 보호소는 설리번에게 회복불능판결을 내리고 철창 지하 독방에 수용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시력마저 상실한 설리번을 모든 사람이 포기하자 은퇴한 요양보호사 샤론 로라 (Sharon Lora)가 설리번을 돌보겠다고 자청했다. 로라는 정신과 치료보다는 설리번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날마다 과자를 들고 찾아가서 책을 읽어주면서 기도를 했다. 그렇게 사랑을 쏟았지만 설리번의 마음 문이 열리지 않았다. 가져온 특별한 음식도 먹지 않았다.
어느 날, 로라는 설리번 앞의 초콜릿 접시에서 초콜릿이 하나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용기를 얻은 로라는 포기하지 않고 183일 동안 책 읽기와 기도를 계속 했다. 설리번은 독방 창살을 통해 조금씩 반응을 보였다. 말하는 빈도수가 차츰 많아졌다. 2년 만에 설리번은 정상인 판정을 받아 파킨스 시각장애인 학교에 입학했다.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심으로 밝은 웃음을 찾은 설리번에게 로라는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앤. 널 만난 건 내게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어. 늙어 쓸모없어진 날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지.”
설리번은 로라가 남긴 희망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으로 시련을 이겨내고 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한 뒤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 수술을 받았다. 어느 날 설리번은 신문를 읽다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돌볼 사람 구함!" 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서리번은 자신이 받은 사랑을 그 아이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했다. 주위 사람들은 못 가르칠 거라고 말렸지만 설리번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해요."
1880년 미국에서 태어난 헬렌 켈러는 세상에 태어난 지 9개월 만에 큰 병을 앓아 시력을 잃었고, 청력을 잃었고, 말마저 할 수 없는 '삼중고'의 장애인이었다. 설리반이 헬렌 켈러에게 갔을 때 7살 난 헬렌 켈러는 반항을 하며 덤벼들어 설리반의 치아가 부러졌다. 7년 만에 헬런 켈러는 집 마당의 펌프가에서 설리반의 도움으로 촉각을 통하여 '물(water)'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설리번은 헬렌 켈러로 하여금 한 손으로는 흐르는 물을 만지게 하고 다른 한 손에 ‘water’라고 썼다. 훗날 헬렌 켈러는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 살아있는 단어는 내 영혼을 깨우고, 빛과 희망을 주었고, 자유롭게 했다.” 이 장면은 헬렌 켈러의 삶을 바꿔내는 상징적 장면으로 남아, 2009년 미국 의회의사당에 동상으로 세워졌다. 1888년 5월 설리번은 헬렌 켈러를 데리고 보스턴으로 향했고, 헬렌 켈러는 퍼킨스 시각장애인 학교에 입학을 한 후, 설리번 선생의 도움을 받으며 각고의 노력 끝에 1904년 레드크리프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에 다닐 때 설리번은 헬렌과 모든 수업에 함께 하면서 그녀의 손에 강의내용을 적어주었다. 헬렌은 이렇게 말했다.
"항상 사랑과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준 앤 설리번 선생님이 없었으면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볼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설리번 선생님을 보고 싶어요.“ 설리반은 헬렌 켈러에게 늘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 하곤 했다. “시작하고 실패하는 것을 계속해서 해야 해. 실패할 때마다 무엇인가 성취할 것이니까. 네가 원하는 것은 성취하지 못할지라도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을 얻게 될 테니까. 시작하는 것과 실패하는 것을 계속해야 해.” 헬렌 켈러는 장애를 극복하고 희랍어, 라틴어, 불어 등 5개 국어에 통달하여 세계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녀는 장애인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장애자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주었다.
헬렌 켈러는 자신의 불행에 꺾이지 않고 극복하여 많은 사람들을 위해 애쓰다가 1968년에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1937년 일제의 식민지였던 한국을 방문하여 <조선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남기었다‘
“나의 유일한 소원은 세계평화와 동포애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앞뒤에 계시니 나 두려울 것이 없고 또한 모든 것이 뜻대로 되어갑니다...여러분의 눈에 광명을 주시고 여러분의 귀에 아름다운 소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데는 어둠과 암흑의 길을 더듬고 있는 그들을 돕는 것이 더없는 고귀한 길입니다. 세상을 향상시키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며, 사랑이 없는 국가와 사회는 퇴보할 뿐입니다”
헬렌 켈러가 남긴 ‘만일 단 3일만이라도 눈을 뜰 수 있다면’ 은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치유의 기도문이다. 치유 받은 사람이 남긴 치유자의 기도문이다.
“첫째 날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아가들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 눈으로 책을 읽고, 숲속의 자연과 노을을 보겠습니다. 둘째 날은 밤이 낮으로 변하는 순간을 보고 미술관, 극장이나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내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셋째 날은 해 뜨는 풍경과 길가에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겠습니다. 빈민가, 공장,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에도 가보겠습니다. 외국인이 사는 지역도 방문 하겠습니다. 그것으로 외국여행을 대신 하겠지요. 볼 수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 발표작품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자시편 - < 꼰대의 눈물 > - 한국문학신문 칼럼 2021년 8월 11일 (0) | 2021.08.13 |
---|---|
연자시편 - < 역사(History) > 한국문학신문 2021년 8월 4일 (0) | 2021.08.13 |
<개판 오분전> 한국장로신문 2021년 7월 24일 - 오피니언 리더-고영표 장로(의정부 영락교회) (0) | 2021.07.31 |
개판오분전 - 고산지의 연자시편, 한국문학신문 2021년 7월 21일 (0) | 2021.07.24 |
[고산지의 戀子隨筆] 개판오분전 - 금강일보 2021년 7월 153일 16:15 (0) | 2021.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