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표작품 ]

< 때여! 나의 때여 동학의 세상이여!> 6회 -장편서사시 연재- 국보문학 2월호(2022 -통권 162호)

高 山 芝 2022. 2. 5. 20:34

< 때여! 나의 때여 동학의 세상이여!> 6회

 

(17)

동구 밖에 사는 장가張家라는 사람이

우리를 사랑으로 안내했네.

 

최복술에게 인사를 하고

공손한 말로 배움을 청했네.

 

흔연히 허락한 최복술은

낮에는 번거로워 짬이 없으니

유숙을 하면 오늘 밤에

가르침을 줄 수 있다고 하였네.

 

두루 살펴보니

3-40여 명의 사람들이

두 칸 방에 가득했네.

 

주문 읽는 사람이 뒤섞여 있었네.

 

어떤 사람은 소매에서 건시乾柿 3꼬치를

어떤 사람은 전문錢文 3~5냥을 예물로 전했네.

 

한 사람이 배움을 청하면서 말하기를

주문을 소리 내어 읽지 않고

속으로 읽으면 안 되느냐고 물었네.

 

최복술은 마음으로만 읽고

입으로 읽지 않으면

배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네.

 

남이 알까 꺼려서

소리 내어 읽을 수 없다고 하자

최복술은 그렇다면

배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네.

 

선약仙藥을 어떻게 복용해야 하느냐고 묻자

정성 드리는 마음을 갖지 않고 선약을 먹으면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고 하였네.

 

최복술의 자리 앞에 쌓아 놓은

육언구문六言句文

와 같은 것이 수십 장이며

한 종이에 십여 구가 쓰여 있었네.

 

최복술은 나의 배움은

이미 이루어졌으며

한울님밖에는 두려울 것이 없다고 말했네.

 

자신 앞에 놓인 서책 중 한 권을 들고

이 서책은 동학의 본지本旨에 매우 타당한

본질만을 뽑아 놓았다고 말 하였네

 

점심 저녁을 드시라 권하면서

자고 가라고 권했지만

배움을 청하려면

먼저 몸을 청결히 해야 하는데

여러 날 오느라 깨끗하지 못한 것이 송구하다면서

숙소를 정하지 못했으니 몸을 깨끗이 하고

모레쯤에 배움을 청하겠다고 하였네.

 

최복술은 남문 밖

최자원과 이내겸을 찾아가라고 권했네.

 

는 나의 수제자이고

도 친숙한 사이라 하기에

·를 만나는 자리에 믿을 물건으로

필적이 그만일 것 같아

익힐 문자를 써달라고 했으나 써주지 않았네.

 

동구 밖 장가張家의 집에 가서

동학의 주문을 자세히 물었네 .

 

장가張家가 세 글귀를

불러 주어 필사를 하였네.

 

13자로 된 두 글귀와

8자로 된 한 글귀였네.

 

(18)

12월에 이르러

팔절八節의 구를 지어

사람들이 남북으로부터 연이어 찾아왔네

 

묵는 사람이 하루에 50~60명이 되었네

 

경주부慶州府 안에 있던

도인道人이 수운水雲에게 전했네.

 

"조정에서 선생님을 해하고자

논의하고 있다 하니

선생님이 잠시 피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는 곧 나에게서 연유하여 나온 것이네

내가 당해야지 도인들에게 미치게 하겠는가?"

 

계해년[1863] 129일 아침

찾아온 해월(海月)에게 수운(水雲)이 당부했네.

 

그대에게 특별히 할 말이 있더니 마침 잘 왔다

이 시간 이후부터 절대로 내 집에 찾아오지 말라

다른 접주들에게도 이 말을 전하여 어김없이 하라

 

그날 밤 수운水雲

홀로 협실에 침소를 정하고

등을 높이 밝히고 글을 읽고 있었네

 

얻기도 어렵고 구하기도 어려우나

실은 이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네

마음이 화하고 기운이 화하여

봄같이 화하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네

得難求難 實是非難 心和氣和 以待春和,

 

본부本府 진영鎭營의 교졸校卒 30명을

동원한 정운구鄭雲龜

양유풍, 장한익, 이은식 등과 함께

달빛 아래 20리를 달려가서

익일 새벽 최제우와 함께 제자 23명을 체포했네.

 

교졸校卒들의 방망이에 피를 흘린

최제우는 박씨 부인과 맏아들

세정[世貞:仁得,士衡]과 함께 체포되었네.

 

1210일은 소한小寒이였네

 

살을 에이는 찬바람으로

형산강이 얼어붙었네.

 

다리는 사다리 양편

대목大木에 묶이고

뒷짐으로 얽어매인 최제우의 육신은

양팔과 상투를 뒤로 풀어

사다리 간목間木에 칭칭 감았네.

 

하늘을 향한 얼굴에는

혈흔이 낭자했네.

 

본주[本州:경주]에서

어사출두를 선포한 정운구는

최복술의 조사에 착수하여

생김새와 흉터를 기록하고

발에 쇠사슬을 채우고

제자들도 부옥府獄에 가두었네

 

최자원과 장가張家

먼저 눈치채고 도망쳤으나

본부 진영에 엄히 명하여

기어이 체포를 하였네.

 

(19)

1211일 최복술과 이내겸 두 사람을

손발에 형쇄刑鎖를 채우고

한성으로 압상押上했네

 

11일 경주를 출발하여 영천을 거처,

대구에 1박을 하고

12일 금호錦湖를 시작으로

매일 60~70리씩 상경했네

 

영남로를 따라 충주로 가려다가

상주 낙동역에 도착[14]한 정운구는

문경 새재에

동학도東學徒 수십 명이 모여 있다는 소문을 듣고

화령 쪽으로 노선을 바꾸었네

 

16일 저녁 보은 역참에 도착하여 1박을 하고

17일 청안, 18일 직산, 19일 오산을 거쳐서

1220일 과천역참果川驛站에 도착하여

왕궁에 통지를 넣었네.

 

철종哲宗이 붕어崩御하자

12세의 고종高宗이 왕위에 올랐네.

 

1213일부터

대원군大院君의 집정이 시작된 조정은

본말과 종적을 조사해서 죄질의 경중을 가려서

묘당廟堂에 품어稟御해 처리하라

는 명령을 비변사備邊司에게 내렸네.

 

최복술崔福述 등 두 놈을 본도[本道 : 경상도]의 감영으로

하송下送시켜 경주에 가두어 둔 죄인들과 함께

그 내력과 소행을 따져 보고

다시 보고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네.

 

1226일 최복술과 이내겸은

대구를 향해 과천을 떠났네.

 

용인 양지역에서 1박을 한 후

27일 충주 달천역을 향했네.

 

수운水雲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동학도東學徒 백여 명은

새재 첫 관문 주흘관主屹關 상초곡 마을에 모였네.

 

눈길 때문에 저녁 7시경

상초곡 마을에 수운水雲이 당도하자

일부 도인들은 관솔불을 켜 들고

압송되는 수운水雲의 뒤를 따르며 눈물을 흘렸네.

 

28일 저녁 늦게 문경읍에서

동쪽으로 2km 떨어진 요성역에 도착했네.

 

29일은 섣달그믐이었네

 

점촌 방향 북쪽으로 4km 지점에 있는

유곡역에서 3일간 체류했네[구정]

 

1864[갑자년] 14[]

상주 낙동역에 이르러 일박하고

5일 선산군 상림을 거쳐서, 6일 대구감영에 도착했네

 

경주에 수감했던 20여 명의 동학도東學徒들도

대구감영으로 이감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