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수필 -서부유럽여행기-

[ 프랑스 * 파리 - 7 ]

高 山 芝 2009. 11. 3. 09:29

 베르사이유 궁전 정원  

궁전 아래로 지평선까지 끝없이 내려다보이는 이 광활하고 아름다운 정원은 정원사 앙드레 르 노뜨르 (Andre Le Notre ) 에 의해 조경되었다 .  전형적인 프랑스식 정원인 이곳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반듯하게 맞춰져 잘린 나무들로 인공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 거대한 정원의 좌우에는 라톤의 분수 , 아폴론의 분수 , 넵튠의 분수가 있으며 조경된 정원의 중간부터는 세느강에서 물을 끌어 만들었다는 운하가 있다 . T 자형의 운하는 루이 14 세가 선상파티를 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궁전에서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 정원에 꾸며논 꽃밭 ]

 

 [ 프랑스가 향수가 유명한 이유 ]

게란트(Roger-Henrl Guerrand)가 쓴 <화장실문화사(Les Lieux. Historie des Commdites)>를 보면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에는 화장실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궁전을 출입했던 수많은 귀족들이 그들의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를 상상하면 그저 아찔해질 뿐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건물의 구석 벽이나 바닥 또는 정원의 풀숲이나 나무 밑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일이 비단 베르사이유 궁전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파리의 유명한 샤르르 가르니에의 오페라 하우스도 마찬가지였다. 관람객들은 몇 시간이건 변욕을 스스로 참아내거나 그렇지 않으면 각자가 용기를 지참하는 수밖에 없었다. 루이 14세가 그때까지 살던 파리의 루블 궁전을 버리고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옮긴 이유도 루블 궁전이 오물로 뒤덮여 더 이상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왕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화장실 외에는 베르사이유 궁전 안에 화장실이라고 불릴 만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그 와중에서도 베르사이유 궁전에서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마다 화려한 무도회가 열렸으니 이들은 부득이 정원의 꽃이나 잔디를 밟고 용무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궁중 무도회에 초대된 귀족들은 휴대용 변기를 지참하여 생리적인 응급 대비를 하기도 했으나 오물을 비우는 일은 하인들의 몫이었다. 이들이 오물을 버리는 곳 역시 으슥한 정원 구석이었고 궁에서 생활하는 궁신들의 배설 또한 이러했다고 하니 오물로 덮힌 궁전의 실상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무도회에 참석할 때 여성들은 커다란 모피 주머니에 휴대용 그릇을 넣고 다녔다. 그것은 지름 25센티미터 정도의 길쭉한 도기로서 손잡이가 달린 것이었는데 하이라이스 소스를 담는 그릇같이 생긴 것이였다

 [ 글쎄 냄세 때문에 루불궁을 떠난 것보다는 넓은 정원이 필요해서 베루사이유 궁전으로 옮곘다는

   가이드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

 [ 마차를 타고 중세여행을 떠나고 싶다 ]

 

 

 [ 베르사이유 궁전 정문 앞에서 ]

 

 [ 에펠탑 밑에서 ]

 [ 에펠탑 밑에 있는 노점상이 경상도억양으로  열쇠고리를 팔고 있다 ]

 

 

 [ 에펠탑에서 바라 본 파리시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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