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전쟁 26. 제1 차 금산성 전투<1592.7.9>
제1 차 금산성 전투<1592.7.9>
고경명은 6월 27일에 여산을 떠나 은진을 거쳐 7월 1일에 연산에 도착하여 충청 의병장인 조헌에게 글을 보내 금산에서 합류하자고 제안하였다. 한편 고바야가와가 지휘하는 일본군 제 7번대는 7월 8일 전주로 진출하려다가 이치에서 권율 군에게 크게 패하고 그날 밤에 금산으로 철수한 상태였다. 고경명의 의병군은 7월 8일에 연산을 출발하여 이치와 금산 사이에 있는 진산에 도착하여 전라도 방어사 곽영과 그 휘하의 영암 군수 김성현이 거느린 관군과 합류하였다. 고경명은 포위를 풀지 않고 경계를 강화하여 적의 야간 기습에 대비하고 있었는데, 일본군이 야음을 틈타 복병을 배치하려고 나왔다가 의병의 경계망에 발각되어 수명의 사상자를 버리고 성 안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밤사이 방어사 곽영이 고경명을 찾아와 공성의 어려움을 내세우며 철수하기를 청하였으나, 고경명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고경명은 금산성 서문을 공격목표로 삼고 의병의 주력을 서문 공격에 투입하였다. 그 때 고바야가와는 조선군의 관군이 허약한 것을 알고 동문으로 출성하여 관군을 먼저 공격하였다. 일본군의 선제 공격을 받은 관군은 차례로 무너지기 시작했고, 방어사 곽영마져 사력을 다해 싸우기를 포기하고 후퇴해 버렸다. 고경명의 차남인 인후 역시 선두에 서서 용감히 싸우다가, 의병군이 무너지자 부하들을 수습하여 끝까지 항전하였으나 중과부족으로 전사하였다. 고종후는 이후 남은 의병군을 수습하여 전국을 누비며 싸웠고, 다음해 제 2차 진주성 전투에 참전하여 순국하니 3부자가 모두 의병으로 순국하였다. |
'나의 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동야승 권36종(大東野乘卷之三十六終)/재조번방지 2(再造藩邦志 二) /신경(申炅) (0) | 2011.07.14 |
---|---|
삼의사행장(三義士行狀) - 녹천공행장(鹿泉公行狀) (0) | 2011.07.14 |
[스크랩] 임진전쟁 34. 제2차 금산성 전투<1592.8.18> (0) | 2011.07.02 |
[스크랩] 2011년 탐매여행 Ⅸ - 대명매(大明梅)는 만개(滿開) 중 (0) | 2011.07.02 |
[스크랩] 안동 金誠一집안 (0) | 2011.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