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수필 - 앙코르왓 여행기

앙코르 톰 - 자이야와르만 7세(Jayavarman Ⅶ, 1181∼1219)

高 山 芝 2013. 12. 6. 13:44

상세내용
제 22대 왕, 자이야와르만 7세(Jayavarman Ⅶ, 1181∼1219)

수리야와르만 2세의 죽음 후 후계자 다툼으로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시암족과 참파국이 침입하고 참족의 지배를 잠시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 이들을 물리치고 격퇴한 크메르 제국의 가장 위대한 통치자가 자이야와르만 7세다. 그는 톤레삽 해전에서 참족을 모두 격퇴하고 대승을 거두는데 이 장면이 바이욘 사원의 벽면에 생생하게 부조로 묘사되어 있다.

자이야와르만 7세는 자신을 살아있는 부처로 행세하였다. 1186년에는 타 프롬 사원 비문에 어머니를 ‘부처의 어머니’(프라즈나파라미타)로 기록하였고, 자신은 1191년 프레아 칸 사원 비문에 ‘자야붓다마하나타’로 기록해 놓았다. ‘자야’는 자이야와르만 7세를 지칭하며, ‘마하나타’는 위대한 현자를 뜻한다.

그는 참파왕국의 침입으로 국가가 피폐해진 상황에서 왕위에 올라 참파군을 몰아내고 침입을 막기 위한 성벽을 쌓은 다음 바이욘 사원을 건축하는 등 국가혁신을 꾀하면서 국가개조의 이념으로 대승불교를 선택하고 자신을 어려운 백성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신으로 내세우게 된 것이다.

자이야와르만 7세는 이렇듯 캄보디아 역사에서 영웅이며 부처로 받들어지고 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바이욘 사원이 있는 거대한 앙코르 톰의 건설과 주위에 타 프롬, 프레아 칸 등 불교사원을 건립하고 대승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사회사업에도 힘을 기울여 수많은 병원을 전국에 건립하였다.

재임기간 동안 베트남의 해안에서부터 말레이시아 반도와 멀리 미얀마까지 최대의 영토를 구축하여 앙코르 왕조 최후의 번성기를 누렸다. 자이야와르만 7세 이후 크메르 왕국은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14세기 이후 크메르 왕조의 힘은 점점 쇠약해지며 1431년 마침내 서쪽 태국의 아유타야 족에 의해 앙코르는 점령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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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앙코르톰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앙코르와트), 2005,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