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륙. 도.(五.六.盜) 영가(靈歌)
나 지금 허허벌판에 서 있네
날은 저물고 찬 기운 옷깃에 스며드네
무거운 짐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데
나 가진 것 보리 떡 다섯 개와 고기 두 마리 뿐이네
떠밀려 광야에 홀로 선 나에게
두려움이 찾아와 속삭이고 있네
“이제는 끝난 것이야
벌써 오학년을 훌쩍 넘긴 걸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 거야.”
검은 구름 몰려와 어둠을 만들고
칼바람 온 몸을 감아올리네
갈라진 구름 장 사이 햇살 내려와
사면을 에워싼 칠흑을 몰아내네
어두움 걷히자 두려움이 사라지네
세미한 음성이 나를 붙드네
보리 떡 다섯 개 고기 두 마리
나 가진 모든 것 나누라 하네
나눌수록 커지는 기쁨을 주리니
나눌수록 커지는 평안을 주리니
무거운 짐 내려놓고 나누라 하네
빛이 된 말씀 화인(火印)이 되어
내 가슴 뜨겁게 달구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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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가 만드신 가장 위대한 조직이 바로 가정이다. 독처하는 것이 선이 아님을 미리 아신 그분은 남자의 갈비뼈 하나를 취해 여자를 만드시고 가정이란 ‘사랑의 태(胎)’ 안에서 ‘서로가 연합해 하나가 되라’고 명한다. 결혼을 하면 가장이 된 남자들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데 책임을 완수하지 못한 데서 오는 자괴감이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겪는 무력감은 남자를 비참하게 만든다. 그것이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다 할지라도 태초의 아담처럼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가 그 나무의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당당하게 남의 탓만으로 돌릴 수 없는 참담함이 서글프다.
필자가 일본에서의 불법체류를 끝내고 돌아온 그해 겨울. 외화 유동성 위기를 겪던 한국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게 된다. IMF에 경제주권을 넘겨준 그 순간부터 우리 사회의 서바이벌 게임은 시작됐고, 완전고용과 평생직장의 대명사였던 은행원들 사이에 ‘조기퇴직’과 ‘명예퇴직’이란 생경한 단어가 회자했다. 월급쟁이를 물고기 이름으로 희화화시켰던 그 시절, 조기퇴직은 ‘조기’, 명예퇴직은 ‘명태’, 이유도 안 되는 황당한 퇴직은 ‘황태’라 했고, 한꺼번에 엮어 당했던 퇴직을 ‘굴비’로 표현하더니 잘리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만 쓰다 퇴직위로금조차 받지 못한 퇴직은 ‘북어’라 불렀다. 퇴직금도 없이 몸만 쫓겨난 퇴직은 ‘생태’, 입사시험에 합격하고도 입사 전 정리해고를 당한 대졸 예정자를 ‘노가리’로 정의했다. 게다가 62세까지 일을 하면 오적(五敵)이라는 ‘육·이·오’ 세대나 56세까지 일을 하면 도적이라는 ‘오·륙·도’ 세대, 45세 정년이라는 ‘사·오·정’ 세대를 거쳐 38세까지 직장에서 버티면 선전한다는 ‘삼·팔·선’ 세대, 삼십대 초반이면 명퇴 대상이라는 ‘삼·초·땡’ 세대까지 등장했다.
명퇴를 당한 중·장년층 가장들이 임시직·비정규직을 찾아 고용시장을 기웃거리는 동안 100만 명을 넘어선 청년실업 문제가 우리의 미래를 더욱 암담하게 한다. 사람의 정상 체온인 36.5도를 상징하는 36년 6개월만의 ‘체온퇴직’을 사치로 생각하는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이·구·백(이십대 90% 백수)’의 젊은이들 중 가뭄에 콩 나듯 취업문을 뚫은 취업생은 ‘낙·바·생’으로 불린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했다는 낙·바·생은 ‘십·장·생(자신들도 장래 백수라고 생각하는 세대)’들에게 선망이 아닌 절망의 언어가 되더니 급기야 ‘사포(연애·결혼·출산·취업을 포기한 세대)’ 젊은이를 양산하고 있다.
국민소득 2만 불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청춘을 불살랐던 세월의 흔적이 사회구성원들로부터 잊혀가고, 일하고 싶은 욕망이 간절한 데도 사회 속에 유기된 채로 일할 곳을 찾지 못하는 중장년 백수의 외로움을 노래한 ‘오·륙·도 영가’. 외로움이란 궁극적으로 나눔을 통해서만이 해소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사내에겐 한 갑자(甲子)의 세월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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