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 천 서 문 >
고산지 시인의 장편 서사시집《독립없는 해방은 시리도록 아프다》의 추천사를 부탁받고 거절하기 어려웠다. 고산지 시인은 현재 본인이 이사장으로 있는‘국제 PEN 한국본부’의 이사로서, 본인과 함께 활동하고 있다. 고산지 시인의 말에 의하면 1970년대 후반 (주)경방에 재직 중이면서‘시인의 집’에서 시작詩作활동을 시작했으며, 한국청년학교(대림재건학교)에서 불우 청소년을 가르쳤다고 한다. 당시 그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두 번에 걸친 가택 수색 등 안기부와 보안사의 내사를 받았다고 한다. 격동의 1980년대 광주에 내려가 기업가企業家로 변한 그는 1990년대 회사가 도산倒産하자 일본으로 건너가서50개월 동안 불법 체류하면서 잡역부(노가다) 생활을 했던 의지적인물이다. 그의 일본에서의 불법체류 삶은《차명借名의 세월이라는 간증 일기로 출간되었다.
IMF가 나던 해 일본에서 귀국한 고산지 시인은 망우동에서 의정부로 이사하였다. 2000년대 전세유민傳貰流民으로 의정부에 정착한 그는 의정부영락교회에 적籍을 두고 믿음 생활을 계속하였다. 2010년 부도난 지 20여 년만에 신용불량자에서 복권復權된 그는, 마침내 의정부 영락교회의 시무장로로 피택되었다. 이런 그의 삶 때문이어선지 고산지 시인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친구들에게즐겨 고백하였다. 그리고 나에게“대한민국의 건국建國은 하나님의 역사였다.”고 말하곤 하였다.
1882년 9월, 임오군란 당시 명성 황후의 목숨을 지킨 공으로 수신사 박영효의 비공식 수행원이 되어 일본에 간 이수정은“Boys be Ambitious for Christ”로 유명한 클라크 박사의 제자인 농학자農學者 쓰다 센(津田仙)을 만났다. 거실의 벽에 걸린 족자에 쓰인“虛心者福矣以天國乃其國也(마음을 비운 자는 복이 있도다. 천국이 그의 나라가 될 것이니 - 마태복음)”라는 글은 그를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였고, 일본에서 세례받은 첫 한국인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 이수정은 일본 유학 중 마가복음을 한글로 번역하였다. 언더우드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는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을 들고 조선에 입국하였다. 이 후 발간된 한글 성경은 교회뿐만 아니라 일제하에서 문맹퇴치 및 여성의 지위 향상과 민족의 자존심을 일깨우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되었다. 1919년 3·1운동당시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비율중 1.3%인 20만 명에 불과했지만 독립선언 33인의 서명인 중 15명이 기독교인이였다. 또한 3.1운동에 참여하고 투옥된 9,458명중 2,087명이 기독교인이였다.
하지(John Reed Hodge) 장군의 통역관인 윌리엄스(George williams) 중령(한국명: 우광복禹光復)의 등장은 우연이 아닌‘여호와 이레’의 필연이라고 주장하는 고 시인의 주장에 나는 반론을 제기할 수가 없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해방된 대부분의 신생국은 소련의 영향을 받아 공산화 되었지만,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있는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의 뜨거운 감자인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5월 31일까지의 정치적 상황을 사실에 입각해서 서사시로 노래하고 있는시집《독립 없는 해방은 시리도록 아프다》의 마지막 장 이윤영 의원의 기도문은 제헌국회의 속기록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시집이 큰 울림이 되어 수많은 사람을 깨우치는 사명使命을 감당하는 귀한 시집으로 사랑받기를 기도하면서 고산지 시인의 건강,건필을 기원한다.
2018년 10월 22일
국제PEN한국본부 이사장 손 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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