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리에리의 고백 >
모든 것이 은혜였는데
만족하지 못 하였네
그를 바라볼 때 마다
솟구치는 분노
당신의 불공정을
시샘으로는 다스릴 수 없어
스스로를 망가뜨렸네.
가면을 쓰고
익명으로 그를 유혹 했네
병상에 있는 그대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을 완성하지 못했네
불꽃처럼 자신의 재능을 사르다
그대 세상을 떠났지만
나의 영혼은
날마다 지옥 불에 데여
화상(火傷)을 입고 있었네.
나의 기도에는 사랑이 없었네
나의 경건에는 긍휼이 없었네
주변 사람에게 열등감이나 질투, 시기를 심하게 느끼는 심리 상태를 <살리에리 증후군>이라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경쟁자로 알려진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1984년 개봉한 영화 『아마데우스』가 흥행하면서 이 안에 담긴 살리에리의 모습으로 인해 살리에리 증후군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살리에리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상황이나 업계에 있는 상대를 질투하는 양상을 보이며, 심할 경우 자존감이 떨어질 수도 있다.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766년부터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음악가다. 그는 1788년 빈 궁정 음악가로 임명되어 36년 정도 궁정에서 활동했으며 보수적인 스타일 안에서 최선을 다한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다. 살리에리가 열등감과 질투, 시기의 상징이 된 것은 1984년 개봉한 영화 『아마데우스』 때문이다. 이 영화는 같은 시기에 빈에서 활약했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경쟁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질투(嫉妬)는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빼앗기거나 빼앗길 위기에 처했을 때 생기는 두려운 감정이지만, 시기(猜忌)는 자신이 갈망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갖게 되었을 때 생기는 파괴적인 감정이다.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좋아할 때 생기는 감정은 시기(猜忌)이고, 내 애인이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보일 때 생기는 감정은 질투(嫉妬)이다. 질투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상대방처럼 되고 싶은 마음과 의지를 불러일으켜 경쟁심을 유발하여 열심을 내게 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시기는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을 의식하면서, 상대방이 잘되거나 좋은 것을 지니고 있는 상황을 폄훼하고 불편해 한다. 결과적으로 질투는 긍정적인 감정일 수도 있지만, 시기로 인해 자신의 삶이 파괴되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진 것에 대한 불만스런 감정. 다른 사람의 행운에 대해 불편한 감정, 그 사람에 대한 적대감, 자기 자신의 결핍에 대한 억울함과 수치감,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에 대한 시기심은 갈망을 포기한 후,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만 해소되는 감정이다.
밀로스 포만(Milos Forman) 감독의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의 삶을 그린 영화이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모차르트가 아니라 그의 천재성을 시샘한 당대의 작곡가 살리에리이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시기한 나머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살리에리는 죄책감으로 인해 서서히 미쳐간다. 정신병원으로 들어간 그는 마지막 고해성사를 위해 자기를 찾아온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한다. 영화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와 관련된 과거의 행적을 고백하는 방식으로 전개 된다.예술가 중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신으로부터 타고난 재능을 부여받지 못한 사람이다. 예술은 노력만 가지고 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일 중에서 예술 분야만큼 천부적인 재능이 절대적인 조건이 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갖지 못한 사람이 위대한 예술가를 꿈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에 매달리는 것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리에리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신앙심이 누구보다 깊었지만 신으로부터 재능을 물려받지 못한 불행한 음악가였다. 그는 모차르트를 볼 때마다 신의 불공정함에 분노를 느꼈다. 경건한 생활을 하면서 위대한 음악가가 되게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신은 은총을 내리지 않았다. 살리에리는 왜 신은 자기에게 위대한 예술가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만 허락하고,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재능은 허락하지 않았는가 하고 절규한다. 광기에 휩싸인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죽일 계획을 세웠다. 그는 가면을 쓰고 모차르트를 찾아가 레퀴엠의 작곡을 의뢰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작곡료를 많이 주는 대신 작곡가가 누구라는 것은 밝히지 않는 것이다. 모차르트에게 레퀴엠의 악보를 받아낸 다음, 모차르트가 죽으면 그것을 자신의 작품으로 발표해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다는 것이 살리에리의 계획이었다. 그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훔칠 생각을 한 것이다. 작곡을 의뢰받을 당시 모차르트는 건강이 좋지 않아 작곡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돈에 쪼들렸던 그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모차르트는 살리에리가 의뢰한 레퀴엠을 작곡하다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모차르트 독살설은 살리에리 죽은 지 6년 후에 발표된 러시아 문호 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서 공식적으로 제기된다. 푸시킨은 이 작품에서 ‘천재를 질투하다 살인극을 펼치는 범재’로 살리에리를 그려냈다. 러시아 작곡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67년 뒤 이 극을 오페라로 만들었다. 모차르트의 사망 직후 빈 음악계에서 그의 독살설은 풍문으로 떠돌았다. 모차르트의 처가와 친척인 음악가 베버는 1803년 살리에리의 모차르트 독살설을 듣고서 그를 경원시했다고 한다.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한 로시니는 살리에리가 죽기 3년 전 그를 만난 자리에서 반 농담 삼아 이 ‘소문’에 대해 언급했다. 살리에리는 분명 이런 의혹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죽기 2년 전인 1823년 치매로 요양소에 실려 간 그는 종종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는 혼잣말을 뇌까렸고 이 소식은 병원 밖으로 흘러나갔다. 그가 건강했을 때는 명확히 ‘모차르트의 독살 혐의’를 부인했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었다. 푸시킨의 희곡은 당시 유럽 사회에 폭넓게 퍼져나간 이런 의혹을 반영한 작품이다. 이 희곡을 바탕으로 영국 극작가 피터 셰퍼가 1979년 희곡 『아마데우스』를 내놓았고, 체코 영화감독 밀로스 포먼이 1984년 이를 영화로 제작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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