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표작품 ]

< 때여! 나의 때여 동학의 세상이여! > 장편서사시 - 7회 국보문학 2022년 3월호(통권 163호)

高 山 芝 2022. 3. 4. 20:16

 제1부 때여 때여 나의 때여(7)

 

(20)

115일 경상감사慶尙監司 서헌순徐憲淳

상주 도남서원의 동학 배척운동에 관여한

상주목사 조영화趙永和와 지례현감 정기화鄭夔和,

산청현감 이기재李沂在 등을 신문관으로 선임했네.

 

피신 중이던 해월海月

수운水雲이 대구로 환송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옥바라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고을을 찾아다녔네.

 

영덕 유상호劉尙浩100여 금을 선뜻 내놓았네.

 

북도중北道中관내의 영덕·영해 양 접에서 600여 금

흥해·연일접에서 300여 금, 평해·울진접에서 350

안동·양양접에서 500 금을

상주 접주接主 황문규도 많은 비용을 감당했네

 

수운水雲의 옥바라지는

현풍 사람 곽덕원郭德元이 자원했네.

 

곽덕원은 몸에 굵은 새끼 띠를 두르고,

망건을 벗고 얼굴에 검정 칠을 하고,

매일같이 세 때가 되면 음식을 차려 수운水雲을 보살폈네.

 

그는 섬기는 일을 마치더라도

미진함이 없나 둘러보고서야 집으로 돌아갔네.

 

수운水雲의 뒷바라지를 위해 대구로 숨어든 사람은

해월海月을 위시하여 수운의 조카 맹륜,

신령접주 하치욱, 영해접주 박하선, 청하도인 이경여, 최규언,

고성접주 성한서, 신령인 하처일, 대구 청도 기내접주 김주서,

울산접주 서균효, 박여인, 의령인 강선달,

해월海月의 매부 임익서林益瑞, 영덕인 임근조林根祚,

상주인 전덕원全德元, 영덕인 전석문全碩文,

영덕접주 오명철, 곽덕원 등이었네

 

120일 심문을 시작되었네.

 

수운水雲4차례, 이내겸은 3차례

이정화는 3차례 강원보는 2차례

나머지는 한 차례씩 혹독한 심문을 받았네

 

경상감사慶尙監司 서헌순徐憲淳

너는 어찌 당을 모아 풍속을 어지럽히는가?”묻자

 

사람을 가르쳐서 주문呪文을 외게 하면

약을 쓰지 않고도 스스로 효험이 있고

아동들에게 글을 쓰게 하면 스스로 총명해기 때문에

이것으로 업을 삼아 세월을 보내왔습니다.

이것이 풍속을 어지럽게 하는 일입니까수운水雲이 대답했네

 

자신도 초치招致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해월海月은 그날 밤 김춘발金春發과 함께

대구성을 탈출했네.

 

220일 경상감사의 혹독한 문정問呈이 시작되었네.

 

홀연히 벼락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네.

 

곤장 아래서 나는 소리가 어찌 그렇게 큰가?"

죄인의 넓적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경상감사 서현순은 심문을 마쳤네

 

밥상을 들고 찾아온 곽덕원에게

수운水雲은 두 가지를 부탁했네.

 

경상[慶翔=海月]이 성중에 있는가?

오래지 않아 나가서 잡으려 할 것이다.

나의 말을 전하여 이르는 대로 멀리 도망하도록 일러라.

만약에 잡히면 일이 매우 위험스럽게 되니,

번거롭게 하지 말고 신중하게 전하라

 

자신의 연죽煙竹을 경상[慶翔=海月]에게 전하라

 

연죽煙竹을 쪼개보니 심지心紙가 나왔네.

 

심지에 적힌 두 편의 시

수운水雲이 생전에 남긴 마지막 유시遺詩였네

 

燈明水上無嫌隙柱似枯形力有餘

물위에 등불이 환히 밝은 것같이

대도가 밝았으니, [포덕에 대해서는] 의심할 것이 없네.

비록 기둥의 모습은 고목枯木과 같아 보이지만

힘이 남아[대도를 상징] 받치고 있네

 

吾乃順受天命 汝當高飛遠走

나는 천명天命을 받아 곧 따르리니,

너는 마땅히 높이 날고, 멀리 뛰어라.”

 

(21) - [경상감사 서헌순(徐憲淳)의 심문-]

동학죄인 최복술은 경주 백성으로

훈학訓學을 생업生業으로 살고 있었네.

 

양학洋學이 세력을 떨치자

한울을 공경하고 천리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위천주 고아정 영세불망 만사의爲天主 顧我定 永世不忘 萬事宜

라는 13자를 지어 동학東學이라 하였네.

 

동학東學에는 동국東國의 뜻을 담았네

양학洋學은 음이고 동학東學은 양이니

이 음을 제어하기 위해서 13자의 주문을 암송하네.

 

풍증風症과 간질癎疾은 물론이고

병에 걸린 사람이 주문을 암송하면 차도가 있었네

 

글씨를 써 달라고 하면

주로 구자나 용자 등을 써 주는데

잡병雜病에 걸린 사람이 최복술이 써준

자를 불살라 마시면 차도가 있었네.

 

원근에서 온 사람이 있어 머물도록 허락하다 보니

도당徒黨이란 이름이 생겼으나

돈과 쌀을 토색討色하는 일은 애초부터 없었네.

사교邪敎와 달라 숨기거나 꺼리지 않았네.

 

최복술崔福述의 글씨는 명필이었네

··· 등의 글자를 써주고

수고하였다는 답례로 약간의 돈과 양식을 받았을 뿐

토색討索질은 하지 않았네.

 

풍담風痰으로 고생하던 종이 장사인 강원보는

주문을 외우면 빠졌던 머리칼도 다시 난다는

소문을 듣고 최복술崔福述을 찾았네

 

병이 다 나은 후에는 주문이 필요치 않아

외우기를 폐하였으므로 더는 할 말이 없다고 진술했네

 

박은환은 병이 생겨 최가崔家를 찾아갔다가

성심을 다하여 한울님을 공경하고

지켜야 할 도리를 돈독하게 한다면

병이 나을 것이라 하기에 머물렀다가 붙잡혔으니

아뢸 것이 없다고 진술했네.

 

최복술과 한 동리에 살고 있는 동몽 김의갑은

복술의 아들 인득이 늘 나무칼을 가지고

춤을 추어 뛰어올랐으며

용천검龍泉劍 드는 칼이라는 노래를 불렀으며

그것이 거짓임을 알게 되자 상종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네

 

잡류雜類들이 모이면 적어도 30인은 되었네.

 

뒷산에서 천제天祭를 올리며 병이 낫기를 축원했으나

효험이 없자 많은 이가 등을 돌렸네.

 

최복술의 출입이 빈번하여

밤길을 나설 때에 자주 횃불을 밝히게 되자

온 동리 사람들이 꾸짖었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웠던 이정화

최가崔家를 찾아가자

위천주爲天主13자를 가르쳐 주며

를 짓고 운을 지어 보라 하기에

와 운을 짓고 유숙하다 붙잡혔네.

 

칼춤을 추면 본심本心이 아니라

광기가 발작하며

나무칼을 들고 혹은 춤추고 혹은 노래하니

시호시호時乎時乎라는 곡이라고

동몽 최인득이 진술했네.

 

경신년庚申年에 서양이 먼저 중국을 점령하고

다음은 우리나라에 오려 한다는 말을 듣고

변란이 있을 것을 예측했다는 최복술崔福述

13자 주문을 지어 사람을 가르치고

한울에 제사 지내는 일에 정성을 다하면

사태가 불리할 것이 없다면서

바다를 왕래하는 서양인을 제압하는 검무劍舞

한울님으로부터 배워서 이에 부와 창을 덧붙었으니

더는 아뢸 것이 없다고 진술했네.

 

이내겸李乃謙을 문초하니

최복술崔福述의 검무劍舞

시호시호時乎時乎 이내 시호時乎.

용천검龍泉劍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만세일지萬世一之 장부丈夫로서

오만년지五萬年之 시호時乎로다.

용천검 드는 칼을 아니 쓰고 무엇하리.

무곡장삼舞曲長衫 떨쳐 입고,

이 칼 저 칼 옆에 짚고 호호망망浩浩茫茫

너를 천지일신天地一身으로 비켜서서,

칼 노래 한 곡조를 시호시호時乎時乎 불러내니

용천검 드는 칼은 번득이며 일월을 희롱하고

게으른 긴 소매는 우주를 덮고 있고

자고自古 명장名將 어디 있나.

장부당전무장사丈夫當前無壯士

이내 시호時乎 좋을시고라 하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