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표작품 ]

연자시편 - < 시(詩) > - 한국문학신문 6월 15일(제549)

高 山 芝 2022. 6. 17. 14:52

< () >

 

슬픔 속

그림 있고

 

기쁨 속

가락 있네

 

그림 속에

있는 가락

 

당신이 찾아와

생기(生氣)를 불어넣자

 

노래가 되네

희망이 되네 - (졸시 ()’)

 

 

인간을 의로운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γινομαι, ginomai, might become), 스스로 죄인이 되어(ποιεω, poieo, make) 십자가에서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는 한 편의 서사시로 인류 최고의 걸작(masterpiece)이다. ()를 뜻하는 영어 포엠(poem)은 헬라어 포이에마(poiema)에서 나왔다. '되게 하다''되도록 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각각 다르다. 되게 하다(make)로 번역된 포이에오(ποιεω, poieo)'만들다, 생산하다, 행하다, 주다, 가져오다, 지키다, 제대로 만들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다' 등의 뜻이 있는 동사형 단어로, 걸작(masterpiece)으로 번역된 중성 명사형 단어 포이에마(ποιημα, poiema)에서 유래되었다. 반면에 되도록 하다(might become)로 번역된 기노마이(γινομαι, ginomai)'마치다, 완성하다, 이루다, 되다'라는 뜻이다. '어떤 존재 안으로 들어와서 이루다'라는 뜻이 그 속에는 함의되어 있다. 기노마이(γινομαι, ginomai)'아내(wife)'라는 뜻의 구네(γυνη, gune)의 어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포이에오(ποιεω, poieo, make)와 기노마이(γινομαι, ginomai, might become)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포이에마(ποιημα, poiema)와 구네(γυνη, gune)를 통해 성찰하게 된다.

 

예수님은 인간을 의()로 기노마이(γινομαι, ginomai, might become) 되게 하려고 죄()로 포이에오(ποιεω, poieo, make)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원죄(原罪)를 지닌 인간이 의인(義人)이 될 수 있도록, 대신 값을 치루는 과정에서, 자신을 죄인(罪人)으로 만든 인류 최고의 걸작품(ποιημα, poiema)이 예수님이다. 원죄(原罪)를 지닌 인류 가운데 흠결이 없는 유일한 존재가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말씀 마다. 한 편의 시()이다. 인류 최고의 걸작 속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언어를 우리는 시(, poem)라고 칭한다. 그러나 신()의 자리를 인간이 잠식해 가는 작금의 시대에서 시()는 점차 그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 ()의 언어를 상실한 시인은 죽은 시인일 뿐이다.

 

시 시() 자는 ()’시경(詩經)’이라는 의미를 가진 글자이다. () 자는 말씀 언() 자에 절 사() 자를 결합했다. () 자는 이나 사찰을 뜻하는 글자이다.

절 사() 자는 흙 토() 자에 마디 촌()자를 결합했다. 금문(金文)에 나온 사() 자를 보면 발 지() 자와 또 우() 자가 그려져 있다. 손으로 발을 받드는 모습을 표현했다. 받든다는 것은 높으신 분을 모신다는 의미이다. 일정(一定)한 법도()에 따라 토지()를 관리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나랏일을 하던 관청을 뜻했다. 외국에서 온 사람을 접대하는 관청을 사()라 칭했다. 일세기 후반(後半)에 인도로부터 중국(中國)에 불교를 전파하러 온 사람들은 홍려사(鴻廬寺), 백마사(白馬寺) 등에 기거했다. 이런 연유로 불교의 사찰에 절 사()를 사용했다. 불교가 전래되기 전에는 사() 자가 나랏일을 하던 관청이었지만,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후에는 부처님을 모시는 장소로 의미가 바뀌었다. ‘()’는 글로도 남기지만 말로 읊조리기도 했다. 말씀 언() 자는 의미요소로 쓰였다. 사찰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불경을 읽었다. 운율에 맞춰 불경을 읽는데, () 자에 쓰인 절 사() 자는 그러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시 시() 자는 절()에서 불경을 읊는 소리()()’에 비유해 만들어진 글자이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망명시절을 그린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면, 시인이 되면 여자들이 좋아하고, 그래서 시를 배우고 싶다는 우편배달부 마리오에게 네루다는 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네루다의 ‘poem’이란 시도 함께 감상해보자.

 

"시란 은유(metaphor)이지.

메타포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른 것과 비교하는 거야.

예를 들어 하늘이 운다.’면 그게 무슨 뜻이지?”

비가 온다는 말 아닌가요?”

맞아. 바로 그런 게 은유이지.”

 

그 나이였다....

시가 내게로 왔다.

모른다.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서인지 강에서 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다.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밤의 가지에서 홀연히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다.

또는 혼자 돌아오는 길에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시는 건드렸다.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다.

 

끓어오르는 열이나 잃어버린 날개

내 나름대로 해보았다.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다.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수한 난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지혜이다.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다.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 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작은 존재는

그 큰 별들의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나부꼈다.” - < 파블로 네루다의 ‘poe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