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수필 -서부유럽여행기-

[ 이탈리아 * 로마 - 11 ]

高 山 芝 2009. 11. 30. 18:53

 [ 쌍무지개의 조명발을  받고 있는  콜로세움의 아름다움 ]

 

 [ 로마장군의 상징인 솔발울(잣나무열매)을 들고 있는 집사람 ]

 [ 철근의 사용없이 돌과 벽돌로 거대한 구조물을 건축하였고 2000년 이상 남아 있다는 것이 당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것 같다. 부서진 벽의 단면을 보면 구조물의 형태를 알기 쉽다.]

 [ 콜로세움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착공하여 서기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 구조물은 내부에 6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이다.거의 2000년전에 그와 같은 거대한 건물을 지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아니한다.

시민들의 유희를 위해 검투가 벌어진 곳으로 '글래디에이터'라는 영화에도 나온 바 있다. 로마가 4세기 이후 기독교로 채택하면서 검투가 금지되었다. 그후 콜로세움은 관리가 안되고 심지어는 성벽의 일부 돌이 성당 등 건축물로 쓰기 위해 훼손되었다. 그나마 전부 파괴되지 아니한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로마 제국은 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이집트, 그리스 문화를 융합한 것을 멀리 영국의 런던, 라인강 지역까지 서로마 제국을 이루면서 법, 건축, 제도 등을 완성하였다.그런데 로마의 창시자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동이 형제는 버려져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 이 전설은 실제 많은 것을 의미한다. 로마의 시조들은 귀족이 아니라 버려진 부랑자였던 것이다. 프랑스 화가인 푸생의 '사비나 여인들의 약탈'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 로마 초기에는 남자 부랑자 집단으로 여자가 없어 사비나라는 부근의 도시국가에서 여인들을 약탈해 왔다는 것을 소재로 한 것이다.이렇게 로마는 바닥에서 시작을 하였다. 그리고 공화적인 전통은 카이사르(시저)가 황제로 오르려고 할 때 암살당한 사건을 보아도 이해가 된다. 양자인 브루트스가 그 암살에 참여하여 후세에도 배반자 중의 유명한 사람으로 남지만 그들은 공화정인 로마의 전통을 지키려는 애국자들은 아니였는지. 그리고 로마가 서양 최대의 제국으로 큰 원동력은 절대권력이 지배하는 왕국 시대에 공화정을 이루면서 피정복 도시도 협조를 할 경우 로마 시민에 준하는 대우를 해준 포용력이 작용한 것이다.그러나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이탈리아는 분열되어 외국의 침입을 받고 지배를 당하는 약소국이었다. 통일 이후에도 상공업이 발전한 북부와 농업 위주인 남부하고의 경제력의 차이가 심각하다.]

 

 

 

'영상수필 -서부유럽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탈리아 * 폼페이 - 2 ]  (0) 2009.12.01
[ 이탈리아 * 폼페이 - 1 ]  (0) 2009.12.01
[ 이탈리아 * 로마 - 10 ]  (0) 2009.11.27
[ 이탈리아 * 로마 - 9 ]  (0) 2009.11.26
[ 이탈리아 * 로마 - 8 ]  (0) 2009.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