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명(借名)의 세월 - 2 ]

[ 연 단(鍊鍛) ] - 1994년 9월 23일 -

高 山 芝 2010. 5. 21. 14:26

프란시스 A 쉐이퍼의 "고뇌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를 읽고 있다

언어와는 느낌이 다른 고전적인 사랑이 "쉐이퍼의 편지"에 담겨저 있다

- 우리들 대부분은 말을 준비하지않고 마차 만을 준비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우리 서로가 영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 밀접해 진 다음 그에 기초하여(마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먼저 잎이 나고 꽃봉우리가 맺히고 꽃이 피는 것 처럼)조직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조직을 해 놓고  그 다음 무엇을 해보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

준비 하지 못한 체 시작한 일 때문에 실패했던 많은 일들이 이 구절을 읽으면서 떠 올랐다

막무가내로 우선 저질러 놓고 보면 어떻게 되곘지 하는 안이한 생각이 실패의 원인이였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음 일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했던 나의 과거는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떻게 되곘지 하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닌  하나님께 믿고 맡기고 메달리는 적극적인

자세가 부족했다.

세이퍼박사는  하나님은 성경의 말씀을 통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에게 말씀하시지만

분명하게 다른 방법으로도 말씀하신다. 이 방법은 인간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해야 하며

더 이상의 관계는 맺어지지않는다.  기도는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의 말로 드려진다

기도의 응답으로 사람들은 선택에 의해 우주의 기계적작용(?)의 일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떨어지는 컵 하나를 잡으려고 결정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자연의 법칙을

방해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적인 견해로 보면 우리가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들어주시며 우리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우주의 원인과 결과의 속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기도를 했을까....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기도였을까

깊이 빠질수록 더욱 새로워지는 것이 기독교 진리인 것 같다